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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비 Aug 26. 2024

내가 쓰는 자서전

어린 시절의 나는(1)

 어린 시절의 나의 기억은 엄마의 없음으로부터 시작된다. 내게 엄마라는 이름은 부르지 못하는 단어였다. 순희언니, 이모 특히 막내고모가 내 입에서 쉼 없이 나오는 말이었다. 그 누구도 내 앞에서는 내 엄마에 대한 기를 꺼내지 않았다. 내가 그에 대한 질문으로 입을 열면 모두 쉬쉬하고 모른다고 뚝 잡아뗐다. 결국 내가 새엄마 아래서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달아야 했다.

 하지만 어머니의 부재로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을 수 있었다. 아마 내가 안쓰러웠던 것 같다. 새엄마한테의 곱지 않은 시선, 퉁퉁거림의 표시 나는 차별은 아버지의 눈에도 보였을 것 같다. 아버지는 내게 많은 것을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사랑의 눈빛만큼은 끝없는 바닷물이었다.


 한 가지 슬픈 건 엄마에게 받는 사랑이 어떤 느낌인지 평생 알 수가 없어 엄마의 없음이 아쉬움이나 원망을 느끼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엄마의 빈자리는 아버지와 집안일을 도와주는 언니들, 막내고모, 삼촌 그리고 도서관의 책들이 채웠다. 내 어릴 적에는 유치원이랄 게 없었다. 그저 동네에 친구나 골목을 사이에 둔 오빠들이 전부였다. 선생님이었던 아버지는 늘 나를 동네 도서관에 데려다 놓았다. 빨간 벽돌사이로 이어진 회반죽의 풀처럼 언제나 붙어 있었다. 특별한 날을 빼고는 일삼아 다녔던 도서관은 지금도 자주 찾는 곳이다. 새롭게 단장된 등걸이 의자가 자유로이 자리하고 앙증한 꽃밭이 어우러진 풍경은 나를 아직도 여전히 안전한 집으로 들어가게 했다.


 집에서 일을 돌보던 언니들은 학교에 다니는 나를 살뜰하게 챙겨주었다. 언니들은 내 머리를 묶어주고, 도시락을 챙겨주고, 숙제검사와 책가방을 싸주고, 깔끔하게 옷도 세탁해 줬다. 겉으로는 엄마처럼 나를 길러준 것이다. 언니들도 공민학교에 다녔다.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는 우리들은 서로의 학교생활에 쓸쓸함 같은 것은 없었다. 이들 말고도 사랑을 주는 사람들이 내 곁에는 많았다. 바로 나와 함께 대학생활을 하기 위해 서울 우리 집에서 함께 지내던 막내고모다. 나를 안쓰럽게 생각했던 건지 귀한 벨벳 원피스, 머리핀, 토끼인형을 안겨다 주며 나를 꼭 공주가 된 것처럼 만들어줬다. 좋은 일이 있으면 챙겨주며 나를 예뻐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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