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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비 Aug 28. 2024

내가 쓰는 자서전

새 마음으로 출발한 인생의 2막

 남편을 처음 본 날이 기억난다. ‘잘생겼다’. 그 당시 눈이 확 뒤집어졌다. 첫눈에 반했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는 아니지만 첫인상이 참 마음에 들었다. 성격도 비슷했다. 호불호가 확실하고 융통성이 있었다. 남편은 말이 많지도 않아 좋았다. 참으로 말이 많았던 아버지와 반대되었고 , 술을 입에 대지 않는다는 말에 더욱 좋았던 걸까?… 만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결혼식을 올렸다. 무척이나 빠른 전개였다. 그 시절엔 알아가는 단계나 잦은 만남은 필요치 않았던 거다. 나를 잃어버린 이 결혼의 시작이 힘들게 하여 난 이 시기를 ‘지옥’이라고 칭한다.


몹시도 추웠던 겨울밤, 남편은 시어머니와 함께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 밤에 주섬주섬 이불장롱, 화장대 부엌세간살이, 아기장난감, 을 작은 트럭에 대충 실고 신혼의 단기운도 꾹 찔러 넣었다. 남편이 하던 일이 망하면서 시어머니집에 얹어 살게 되었다. 27살의 어린 신부였던 나는 시어머니가 편할 리 만무했다. 그러나 거절할 수 없었다. 남편의 돈이 없음으로 고달픈 나날이 시작되었다.


시어머니는 무섭고 힘이 센 아줌마였다. 다가갈 수 없는 성격에 자기 분노를 내게 퍼부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말은 ‘대학 다녔다면서? ’ 친정에선 뭘 배웠니? 와 같은 모멸감을 주는 말들이었다. 내 마음은 참혹하고 쓴 물이 올라오고 눈물을 참으며 또 참았다. 친구들은 나에게 시대를 잘못 만났다고 말하곤 한다. 지금과 같은 시대에 태어났어야 한다고 말이다. 옛날 그 시절엔 ’ 여자가 시집가서 시부모에게 대들면 친정 욕보이는 거다 ‘라는 유교적 관습에 잘못된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다. 여자에게만 주어지는 강한 억압이었다. 시집간 여자는 뭐든 참아야 했다. 남자에게는 이런 말이 해당되지 않았다. 늘 내가 밟고 사는 이 땅이 여자에게만 차별적이라는 생각을 품고 살았다. 시어머니의 날 선 말들은 나를 주눅 들고 바보로 만들었다. 남편은 시어머니와 내 사이를 중재는커녕 오히려 더 무서운 존재였다. 당시의 남편은 많은 괴로움과 능력껏 활기를 찾지 못함으로 많이 예민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함께 사는 삶은 행복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공유되는 결혼생활이 아닌 원망, 분개한 마음이 쌓이기 시작했다. 서로 마주 보고 찻잔이 식는 줄도 모르고 흐르던 따뜻한 훈기, 그 배경을 흐르던 달콤한 쇼팽의 피아노곡과는 달리 현실은 쓴 약을 삼키고 또 삼켜야만 했다.


지금에서야 그런 상황에 놓인 남편의 심정이 이해가 된다. 하지만 그, 돈암동 꼭대기의 산동네집에서 수많은 밤들은 눈물과 한숨을 엮어 비단을 짜고도 남는다. 생각의 차이가 나를 피폐하고, 딱딱한 막대기로 만들었다. 서운한 기분을 풀며 살고 싶었지만 남편과 소통이 되지 않아 그러지도 못했다. 되돌아 생각해 봐도 행복한 결혼 생활은 아니었다. 다음 생이 온다면 결혼을 선택하지는 않을 것 같다. 결혼이 이런 외로움의 연장이라면 결혼하지 않는 삶이 훨씬 행복했을 것만 같다. (지금은 내가 스스로 행복할 방법을 찾았지만.)


게다가 어린 아기였던 첫째는 예쁜 줄도 모르고 키웠다. 처음이라 모든 게 서툴렀고, 자식이 생겨 좋은 감정보다는 키워내야 한다는 걱정이 앞섰다. 전적으로 아이만 키울 수 없는 열악한 경제사정은 지금 생각해도 몸소리가 쳐진다. 삶의 기반이 없던 당시 태어난 첫째는 커다란 산처럼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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