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여왕 효과가 우리에게 던지는 교훈
우리에게도 실사 영화나 동화책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는 6년 후에 거울 나라의 앨리스(Through the Looking-Glass)라는 후속작으로 이어지게 된다.
참고로 디즈니와 팀 버튼의 실사영화에는 앨리스 유니버스(?)라고 볼 정도로 두 가지 작품을 합쳐서 만들었고, 이전에 나온 영화들의 후속같은 느낌이다 보니 소설이나 동화와는 다르게 후속인 두 작품의 퓨전격인 인물로 묘사되게 되는데, 대표적으로 붉은 여왕도 여기에 속한다.
다만, 영화 외에 원작 소설을 기준으로 보면, 전작의 이상한 나라와는 다르게 거울 나라, 거울 속 나라의 경우 전작과 다르게 트럼프가 아닌 체스의 세계로 그려지는데, 그 중 인상적인 장면이자, 이 거울 나라 속의 배경을 제대로 설명하는 장면이 있다. 바로 작중에 나오는 대표적인 인물, 붉은 여왕과의 대화이다.
앨리스가 방에 걸린 거울 속에 들어간 직후, 붉은 여왕(하얀 여왕도 있다)을 만나게 되는데, 현실 세계와 너무 다른 모습때문에 길을 헤메게 된다. 앨리스는 붉은 여왕을 통해서 체스 게임에 참여하게 되고, 이상하게 체스판을 한칸 넘어가는 것도 너무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앨리스는 나무 아래에서 숨을 헐떡이며 뛰어가지만, 결코 나무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붉은 여왕에게 길을 잃은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하다, 상황을 이상하게 생각한 앨리스와 그걸 답해주는 붉은 여왕과의 대화가 나온다.
앨리스 : 여왕님, 여긴 이상해요. 왜 열심히 달려도 주변이 전혀 바뀌지 않는 거죠? 제가 사는 곳에서는 오랫동안 달리고 나면 보통 다른 곳에 도착해요
붉은여왕 : 거긴 정말 느린 나라구나! 여기선 같은 곳에 있으려면 쉬지 않고 힘껏 달려야 해, 그리고 다른 데로 가고 싶으면 적어도 그보다 두 배는 빨리 달려야 하고.
거울 속 세상은 엄청나게 빠르게 흘러가는 세계관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뒤로 밀려나는 세상이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앨리스가 참여한 체스에서 한 칸을 나아가기 위해서는 두 배의 출력(!)을 내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어? 우리 세상도 그런데?
앨리스와 붉은 여왕의 대화 속에서 현실과 거울 속의 차이점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그 와중에 붉은 여왕은 니들 세상은 꿀빠는 세상(?)이고 여긴 그에 비해서 엄청 빡시다는 식으로 평가를 해버린다(...)
의도가 어떤 것인지는 워낙에 은유가 많아서 정확하지 않지만, 묘하게 거울 속의 세상은 점점 빨라지는 우리 세계와도 비슷해진 느낌이 있다. 어쩌면 루이스 캐럴은 수학자적인 사고로 현실에서의 인간 개개인의 발전 속도 대비 세상의 발전 속도를 은유적으로 표현했을지도 모르는 부분이다.
사회적, 경제적으로도 강제로 사람을 움직이게 하거나, 경제를 발전시키려고 하다 보니, 우리 또한 무언가를 계속 해야하고...암튼 피곤하다. 거울 속의 세계나 우리 세상이나 어떻게 보면 둘다 가만히 있으면 빠른 속도로 도태되는 상황이다. 비유를 들자면 지금은 많이 사라진 벨트스크롤(Belt Scroll) 게임과도 같은데, 슈퍼마리오와 같은 게임처럼 가만히 있으면 벽과 벽 사이에 끼어(...) 게임 오버되거나 그 자리에 갇혀서 영원히 그곳에 남아버리게 된다.
이런 표현 때문에 경제학적이나 진화학적으로 붉은 여왕 효과(Red Queen's Hypothesis)는 절찬리에 인용이 되고 있다. 우리 사회 속 세상은 그것 못지않게 빠르게 움직이기 때문에 어느 기업이나, 나 개인 스스로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도태되어 소멸되어버리는 슬픈 상황을 비유하는 것이다.
1950년대 이후로, 전후 경제가 발전해가면서 붉은 여왕 효과는 인류의 경제사 속에서도 매우 밀접하게 적용되는 중이다.
내 로켓은 어디 있지?
세상이 바뀌어 가는 속도는 엄청나게 빨라지고 있다. 20년 전을 기억해보면 필름 카메라가 나오면서 디지털 카메라의 세상으로 전환되었고, 그 여파 속에서 수없이 많은 디지털 이미징 특허를 보유하던 코닥은 그냥저냥 비슷하게 회사를 운영하다 파산해서 껍데기만 남았고, 디지털 카메라로 그렇게 잘 나가던 니콘(Nikon)조차 상시로 부도설이 나도는 중이다.
참고로, 똑같이 디카와 미러리스를 열심히 팔아대던 소니는 동영상 시대로 넘어오면서 이미지센서 점유율과 유튜버들 때문에 부활했고, 올림푸스는 사업 분야를 의료 등으로 변경, 똑같이 필름을 팔던 후지필름은 반도체 장비, 제약, 화장품 등을 팔면서 잘나가는 회사들로 남은 것을 보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위의 얘기만 보면 회사 얘기지만 사실 개개인에 대입해 봐도 같은 원리로 적용되는 내용이다. 근 몇년간 벼락거지라는 이상한 용어가 생겨났다. 하지만, 나도 마찬가지지만 벼락거지라는 자조를 하는 사람들은 잘못한 것이 전혀 없다. 하지만 내가 뭘 잘못했지? 라는 이유 모를 슬픈 죄책감을 가지게 된다.
이 지독한 세상(!) 속에서 매일같이 불평이나 툴툴대며 한숨이나 푹 쉬며 살고 있지만, 사실 그 와중에 나는 남들보다 행복해야겠어, 그리고 풍요롭게 살겠어라는 아름다운 꿈을 꾸며 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번뿐인 인생에서 꿈은 아름답게 꿔야 하는 법 아니겠는가?
나 또한, 최근 들어 불평만 많고 막연하기만 했던 것은 아닌가? 라는 고민을 하곤 한다. 정작 내가 사는 세상조차 이해하려 들지 못하고 정신 못차리고 살았던 것은 아니었을지, 지금이라도 깨달았다면 지금이라도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부스터, 로켓같은 무기를 만들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는 시간을 가져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