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일본여행을 가는 사람들이 제일 많이 가는 곳은 도쿄 도를 끼고 있는 간토, 간사이 지역, 훗카이도, 큐슈 이렇게 네 곳이다. 정작 이 곳들을 둘러보다 보면 숨어있는 보석같은 곳을 지나치는 경우가 있다. 사실 위의 네 곳은 국제공항 접근성도 좋고 교통 및 생활편의성이 뛰어난 도심이라는 것이 선호도가 매우 큰 이유이기 때문이다.
가끔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다면 도시에서 멀리 한번 떠나보자, 여기에서 소개하는 오카야마나 나오시마의 경우도 사실 유명 관광지로 떠오르긴 했지만 어찌 보면 위의 일본 4대 관광지역에 비해서는 모르는 사람이 많은 편이다. 기본적으로 도쿄나 교토같은 곳 위주의 여행을 했다면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조금 더 가보면 어떨까?
그런 의미에서 나 스스로 직접 약간의 불편함을 무릅쓰고 버스를 탄 뒤, 오카야마에 도착한 뒤 일단 빠르게 우노역까지 전철을 타고 갔다. 대학원 시절 박사과정을 하는누님이 현재 오카야마에 있어, 함께 가게 되었는데, 오랜만에 만난 누님은 완도산 자른 미역 세봉지라는 관세(?)를 받으시고 열심히 가이드 해 주셨다.
나오시마를 가는 페리는 매우 조용하다. 예전 못지않게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지만, 우리처럼 힐링을 하러 간다는 생각으로 가는 분들이 대부분이라서 그런지 배에 탄 관광객들도 조용한 것 같았다.
나오시마(Naosima, 直島)는 한자어로는 직도라고 하는데, 한때 구리 제련소가 있던 세토내해의 투박한 섬이었다. 90년대 들어 세토 내해의 섬들을 대상으로 예술 양성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나오시마는 빛을 보게 되었다. 1989년부터 시작된 재생 프로젝트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라고 하니, 기간을 두고 찾아가면 갈수록 좀 더 재밌는 광경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역시나 예상대로, 나오시마에서 나를 반겨주는 것은 점 찍어져 있는 호박이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바로 쿠사마 야요이(くさまやよい)로서, 일본의 설치미술가이다. 그녀의 대표적인 작품인 호박은 다양한 도트 패턴의 반복이 눈에 띠는데, 이는 그녀의 심리적 트라우마이면서 세상에 보여주려고 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그녀의 작업은 자신의 정신세계에 대한 일관된 관심에서 출발한 것이지만 자유로운 발상과 표현은 관람자 개인에 따라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제시하게 해 준다.
역시 마찬가지로 한적한 어촌 마을, 일본의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그런 풍경이 보인다. 전형적인 일본의 어촌 마을이고, 어떤 면에선 한국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평화로움이 묻어나는 광경. 꽤 오래 걷다가 잠시 여기서 쉬었다 가기로 했다.
일본에 왔으면 우동을 한번 먹어야지!! 라고 바로 근처의 우동집에 왔지만 정작 먹은건 기린맥주와 고로케, 그리고 카레라이스, 하지만 뒤늦게 시켜서 곁다리로 먹은 우동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역시 일본 여행에서는 맥주를 빼놓을 수 없다. 오르막길을 오래 걸어서 힘들었는데 갈증을 한번에 날려준다.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은 나오시마 안에 여기저기 많이 보인다. 기념품 뿐 아니라 길거리에도 자그마한 예술작품들이 반겨준다. 나오시마를 세토 내해의 명소로 만드는데 쿠사마 야요이의 노력이 매우 크지 않았을까?
가을을 알려주는 코스모스, 그리고 대문에 초록색의 노끈으로 장식된 모습.
나오시마를 돌아보는 중에 보이는 빵집이 있는데, 토코리라는 빵집이었다. 특이하게도 재료가 떨어지면 그대로 영업 종료. 애초에 수제로 만들고 많이 만들지 않아서 그런지 금방 닫아 버렸다. 운이 좋게도 빵 맛은 보고 왔지만.
위의 사진에도 유독 이륜차가 많이 나왔지만, 작은 섬이다 보니 자동차보다는 자전거나 스쿠터를 많이 이용하는 분위기였다. 물론 너무 힘들어서 중간에 히치하이킹으로 차를 얻어타고 간건 함정.
나오시마의 많은 여행자는 시원하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자전거로 트래킹을 많이 하는 편이다.
한바퀴 돌고 나니 이번에도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이 또 기다리고 있었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저 배치도 나름 규칙이 있지 않을까?
내가 일본에서 사시는 친한 누님께 정통 이자카야가 가고 싶다고 했더니 이런 사람냄새(?)나는 곳으로 데려가 주셨다. 늘 그렇듯이 일본은 정갈한 해산물 음식과 맥주 딱 한잔, 이게 정석이 아닌가 싶다.
이자카야 안에 있던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는 벽시계...
공교롭게도 이 여행은 내 생일에 맞춰졌었다. 누님은 잠시 나가시더니 뭔가를 준비해서 들고 오셨다. 바로 케이크!! 이국에서 맞는 생일은 이런 느낌이구나...싶기도 하고 잊지않고 챙겨준 동생과 누님께 감사할뿐.
한잔씩 하고 돌아가는 길이 매우 즐겁게 느껴졌다.
술먹고 난 다음날 아침, 숙취를 이기고 일본의 3대 정원이라고 하는 고라쿠엔(後樂園)을 찾았다. 공사하는데 무려 14년이나 걸렸다고 하는데, 꽤 넓은 면적이다 보니 돌아보는 시간도 꽤 걸린 것 같다.
맑고 넓은 연못에 비단잉어들이 엄청나게 많이 있었다. 관리를 이렇게 하기도 힘들텐데... 사실 일본의 문화재 관리에 대해서는 세계적인 수준이라, 여러 국가에서도 와서 참고한다고 한다.
다음날 아침, 오카야마에서 30~40분 정도 전철을 타고 구라시키(倉敷)에 도착했다. 구라시키는 오카야마 현의 도시인데, 관광지로 유명한 미관지구가 있는 곳이다.
사실 구라시키 미관지구(くらしき びかんちく·倉敷 美観地区)는 일본에서도 은근 알려진 곳인데, 한국에서는 오카야마까지 갈 일이 없다 보니 다른 관광지에 밀릴 뿐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하게 하는 이곳의 경치 덕분에 이곳은 유명한 관광지로 계속 입소문을 타고 있다.
사실 첫인상은 대단히 잘 다듬어진 인사동이나 전주한옥마을 느낌, 하지만 인사동 같은 경우 상당히 상업화되어가는 느낌 때문에 비교하긴 힘들고, 북촌한옥마을이나 전주한옥마을의 경기전 근처 길과 비슷한 느낌일 수 있겠다.
다만, 여기서도 일본이 나름 열정을 가지고 관리를 열심히 한다고 느낄 정도로 깔끔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돌출이나 튀는 느낌 없이 거리에서 일관성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중간중간의 가게에 들어가면 일본의 전통 음식이나 공방 제품 등을 살 수 있다. 이곳은 특히 공예 제품, 전통 완구 등을 볼 수 있는 상점이 즐비하니, 그런 것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대도시를 빼고, 일본의 어느 관광지를 가건 저 인력거는 항상 존재하는 것 같다. 가본 곳 대부분이 그랬는데, 교토의 청수사 근처나 아라시야마에서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김없이 여기도 인력거가 열심히 활동하고 있었다.
미관지구에 오는 사실상 제일 큰 목적은 에도 시대의 느낌이 나는 거리도 있지만, 고풍스러운 이 운하를 보기 위한 것이 제일 클 것이다. 버드나무 밑의 나룻배는 풍경화로 당장 그리면 이쁠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미관지구의 제일 좋은 포토스팟은 보통 이 위치인데, 가로지르는 큰 다리 위에서 사진을 한방 찍으면 그냥 바로 그림이 나온다. 특히 위 사진처럼 나룻배가 하나 지나간다면 금상첨화.
도쿄, 오사카와 같은 도시의 느낌도 좋지만 가끔은 카메라 하나를 들고, 오카야마와 세토 내해에 방문해서 또다른 일본을 만나보는 것이 어떨까? 새로운 것을 만나는 것 그것 자체로도 당신에겐 인생의 즐거움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