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우리 싸이를 모범 강아지라고 했던가
싸이는 나의 지인들에게 모범 강아지로 통한다. 아니 통했었다.
지금까지 나는 우리 싸이를 이런 식으로 소개하곤 했다. 우리 싸이는 자식으로 치면, 말 잘 듣고 의젓한 장남이고, 손갈데 없이 완벽한 반려견이라고. 이를 인정하는 나의 친구들은 싸이를 일러 '초보자 입문자용 강아지'라고 했다. 이렇듯 기특하던 싸이가 요즘 들어 요상하게 삐딱선을 타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정리 정돈되어 있는 이부자리를 자꾸 들쑤셔 일거리를 만든다든지, 휴대폰 충전 케이블을 끊어놓는다든지, 현관몰딩을 갈아댄다는지 하는 것. 여기까지는 뭐 그렇다고 치자. 까지것 이불은 정리하면 되고, 케이블은 다시 사면 되고, 뭐 현관몰딩은 언제 우리 집에 성한 물건이 있었나 치면 된다. 가장 큰 문제는 지금부터다.
싸복이 남매는 기본이 실외 배변이다. 내가 집에 없을 땐, 실내에서 똥오줌을 잘 못 가리는 행복이를 위해, 초대형 배변패드(담요)를 깔아 놓는다. 막상 써보니, 일반 패드보다 흡수력 좋고, 샐 일도 없어, 빨래를 해야 하는 수고스러움만 빼고는 오히려 더 편리하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행복이가 배변패드(담요) 똥을 싸면, 싸이가 이불을 돌돌 말기 시작했다. 아니 지가 무슨 말똥구리도 아니고 도대체 왜?
행복이가 똥을 조금 싸는 것도 아니니, 싸이가 담요를 말았을 때 생기는 참상(?)은 참으로 더럽다. 담요는 담요대로 똥 범벅이 되고, 똥 범벅인 담요를 내 옷을 빠는 세탁기에 같이 돌리는 것도 찝찝하다. 모든 일은 내가 집에 없을 때 일어나는 일이니, 하지 말랄 수도 말릴 수도 없다(이 와중에도 단 한번도 지 몸뚱이에 똥을 묻힌 적은 없다. 이걸 기술이 좋다고 해야할까). 문제는 가끔씩은 행복이가 똥을 싸지 않았는데도 이불을 만다는 사실이다. 어떨 땐 진짜 담요를 삼각형으로 세울 때도 있는데 그 작은 몸으로(6킬로)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을까 싶다.
담요를 세웠을 때는 심각한 부작용이 있다. 그렇게 되면 행복이가 담요를 배변패드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것. 그냥 올라가서 싸면 될 것 같은데, 둔한 행복이 답지 않게 그건 싫은 모양이다. 그런 날은 거실이 행복이 오줌으로 홍수가 나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행복이 답지 않게, 가구 밑으로 들어가게는 싸지 않는다는 것. 행복이의 평소 성품을 생각할 때, 결코 일부러 그러는 것은 아닐 텐데,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참 신비한 일이다.
어느 날엔가 그런 일도 있었다. 집에 들어가 보니, 담요에 핏자국이 여기저기 선명하게, 너무도 많이 찍혀있었다. 그 양이 많아 당연히 행복이가 어디 다친 줄 알고 면밀히 살폈으나 아무리 봐도 상처가 없다. 그날은 범인(?)을 찾지 못한 채 그냥 지나갔으나, 다음 날 알게 되었다. 담요를 어찌나 열심히(?) 말았던지 싸이 코가 그만 까지고 말았던 것. 꽤 오랫동안 상처가 아물지 않은 코로 담요며 내 이불을 열심히 밀어대, 아주 집안 여기저기에 핏자국이 가실날이 없었다. 참고로 엄마가 얼마 전에 사주신 고가의 이불도 피범벅이 되었다.
나이 아홉 살에 안 하던 개춘기 짓을 하는 것도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데, 잘생긴 우리 아들 얼굴에 상처까지 나니 속상함과 안타까움은 배가 되었다. 이런 때에 담요를 세워놓은 현장을 카메라로 보여주니 우리 알바가 하는 말, "쌤~ 이 정도면 강형욱한테 가봐야 되는 거 아니에요?" 아, 나 어멍 그동안 개휼륭에 출연하는 반려인들을 은근슬쩍 비웃으며, 싸복이 남매에게 커다란 자부심을 가져왔었는데, 나의 자부심이 바닥으로 급 추락하는 순간이었다.
안 하던 짓을 하니, 무언가 어멍한테 불만이 있는 것도 같은데, 둔한 어멍은 짐작조차 가는 것이 없으니 그저 답답할 노릇이다.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어, 담요를 두 개 까는 전략을 써보았는데 그나마 좀 효과가 있다. 요새는 나가기 전 개껌을 주고 가는데, 이것도 제법 효과가 있다. 아무래도 예전보다는 담요를 덜 세운다. 요즘은 지켜보는 내가 스트레스를 받아 아예 웹캠을 확인하지 않는데, 현관문을 열기 전에 언제나 심장이 쫄깃쫄깃하다. 오늘은 도대체 무슨 사고를 쳤을까 하고.
이런 싸이와 저녁마다 눈을 맞추며 '특별면담'을 한다. '너 도대체 왜 그러니, 니가 그러면 그동안 자랑한 어멍 얼굴이 뭐가 되니' 하고. 우리 사이에 말은 통하지 않으니, 그저 나의 마음의 십 분의 일이라도 전달되기를 바랄 뿐이다.
싸이야. 나이 아홉에 개춘기라니 이 무슨 황당한 일이냐. 내년에는 다시 예전의 모범 강아지로 돌아와 다오.
<독자들에게 보내는 연하장>
올해도 이렇게 흘러가네요. 2017년도부터 여기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으니, 벌써 햇수로 5년 차, 내년이면 6년이 됩니다. 시간이 이렇게 지났다는 것도, 제가 쓴 글이 이백 편 가까이 된다는 것도 놀랍습니다만, 무엇보다 가장 놀라운 것은, 싸복이 남매와 하늘이, 그리고 뒤뜰 냥이들에게 관심을 가져주시는 독자분들의 존재입니다. 독자분들이 있어, 별 것 아닌 우리들 이야기가 더욱더 특별해졌어요. 우리의 삶에 특별한 무늬를 입혀주신 독자분들 언제나 고맙습니다. 개춘기가 왔다며 싸이를 흉보긴 했어도^^ 여전히 싸복이 남매와 하늘이는 큰 말썽 없이 잘 지내고 있어요. 뒤뜰 냥이들도 모두 건강하고요. 올해는 그다지 많은 소식을 전하지 못했어요. 특별한 일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인데, 어쩌면 제가 삶을 충실히 잘 살아내고 있지 못한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네요. 내년에는 우리 집에 또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요. 또 어떤 길 위의 고양이와 새로운 인연을 맺게 될까요.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생길 테지만, 언제나처럼 나에게 닥쳐올 순간순간을 온몸과 맘으로 잘 받아들이며 씩씩하게 살아보겠습니다. 독자분들도 올 한 해 수고 많으셨고요. 내년 한 해도 행복하세요. 싸복이 남매와 하늘이, 뒤뜰 냥이들을 대표해서, 제가 다시 한번 감사인사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