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 이런 길고양이는 없었다
요 몇 개월간 우리 집 뒤뜰은 여유로움 그 자체다.
소금이네 가족은 아예 우리 집을 떠났고, 알몽이와 알콩이 커플도 봄이 오자 다시 거처를 옮겼다. 간혹 뉴페이스 냥이가 발견되곤 했지만, 터를 잡는 일은 드물었다. 신비, 예삐, 탄이, 강이만이 여전히 뒤뜰을 지키고 있는 중이다. 한가하고 여유롭기 그지없었다. '요미'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한두 달 전부터 새로운 냥이가 눈에 띄기 시작한다. 36계 줄행랑을 치는 통에 제대로 확인하진 못했지만, 아직은 어린 냥이(7~8개월)로 보였다. 36계 냥이임에도 불구하고 눈에 띈 건, 주야장천 울어대는 탓이었다. 아주 작고 가녀린 어린냥이 특유의 목소리로 늘 울고 있다. 엄마에게 내쳐지고 대숲에 숨어 내내 울던 알콩이를 떠올리게 하는 목소리였다. 유심히 지켜보니, 우리 집 뒤뜰 냥이들과 어떻게 친해져 보고싶은 모양새다. 강이도 탄이도 예삐도 그다지 관심이 없고, 심지어 신비는 요미를 공격하기까지 한다.
딱 봐도 엄마에게 내쳐진지 얼마 안 된 어린냥이로 보였다(얼치기 캣맘이지만 나름 경력이 쌓이니 대충 견적이 나온다). 우리 집 뒤뜰 냥이들이 좀 곁을 내어주면 좋으련만, 지들끼리 똘똘 뭉쳐 요미를 받아줄 생각은 없어 보였다. 나를 좀 덜 피하기라도 하면 내가 무언가를 더 해줄 수도 있으련만, 어린 길냥이 답게 겁이 엄청 많아, 얼굴 보기도 쉽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던 어느 날.
열린 부엌 창문으로 고양이가 얼굴을 슬며시 내민다. 요미다. 뒤뜰에 고양이 밥을 주기 시작한 지 어언 6년 차다. 뒤뜰에 사는 애들도 제법 많고, 밥을 먹으러 오는 냥이들은 더더욱 많은데, 아직까지 한 번도 과감하게 부엌 창문으로 얼굴을 내밀고 집안을 염탐하는(?) 고양이는 없었다. 저 아이는 도대체 무슨 캐릭터인가 싶어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직 어려서 호기심이 많은 걸까. 아니면 부엌 창틀에 자주 올라가 있는 우리 하늘이한테 꽂힌 걸까.
창 아래에서 요미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곧이어 요미가 얼굴을 내민다. 하늘이가 다가간다. 둘이 열심히 대화를 나눈다(서로 냐옹거린다는 이야기다). 서로 주먹질을 하기도 한다(아마도 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둘을 지켜보는 나는 어이가 없다. 재네 도대체 뭐 하고 있는 걸까. 요미가 하늘이를 좋아하는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창문에 아주 온몸을 비비적거린다. 시시때때로 창문에 얼굴을 들이댄다. 스토커가 따로 없다. 궁금한 건 하늘이의 속마음이다. '너 누군데 우리 집을 알짱거려~ 썩 꺼져' 쯤일까. 아니면 '넌 누구니, 들어와서 나랑 같이 놀자~' 쯤일까. 나도 잘 모르겠다.
처음엔 걱정도 많았다. 고양이라면 흥분해서 쫓아가고 보는 싸복이 남매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기한 건, 요미 울음소리가 작아서인지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 같고, 요미 얼굴도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요미와 하늘이가 꽤 시끄럽게 대화를 나누거나 방충망이 들썩이도록 주먹을 주고받아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더 신기한 건 요미의 반응이다. 나를 보면 36계 줄행랑을 치면서 싸복이 남매는 그다지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사실. 이건 또 무슨 경우일까.
요미는 부엌 창문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어느 날 한밤중에 싸복이 남매가 미친 듯이 짖어 잠을 깼는데, 요미가 거실 창문에서 빤히 들여다보고 있다. 대체로 우리 집 냥이들은 행복이가 집안에서만 짖어도 혼비백산하기 마련인데(소리가 좀 커야 말이지), 요미는 어찌 된 일인지 미동조차 없다. 안 들리는 건지, 강아지란 존재의 무서움을 모르는 건지. 이뿐 아니다. 가끔 한낮에 앞마당에 나와 놀곤 하는데, 이때도 행복이가 짖어도 아무 반응이 없다. 요미는 실로 보기 드물게 간 큰 냥이임이 틀림없다(요미가 간 큰 냥이란 증거는 또 있다. 똥도 주로 앞마당에 묻는다. 오랜시간 동안 길냥이들과 살았지만, 앞마당에 똥싸는 냥이는 요미가 처음이다).
요미 때문에 매일 입가에 미소가 떠나질 않긴 해도, 요미를 바라보는 내 눈길엔 안쓰러움이 가득하다. 아직 어린냥이가 엄마를 떠나 우리 집까지 어찌해서 흘러들어오게 됐을까. 엄마 없이 맞이한 세상이 얼마나 무서울까. 하늘이를 저렇게 좋아하는데 방충망을 사이에 두고 얼마나 안타까울까. 나를 따르면 참 좋을 텐데. 그렇게 부럽게 쳐다보는 우리 집에서 하늘이와 함께 지낼 수도 있으련만.
엄마 잃고 대숲에서 울기만 했던 알콩이는 수년이 지난 지금은 근방을 호령하는 우리 동네 메인(?) 길냥이로 늠름하게 거듭났다. 언젠가 한 번은 다른 냥이를 공격하는 것도 본 적이 있는데, 대숲에 숨어 울던 코찔찔이 냥이 시절을 생각하면 정말 놀라운 변화다. 시간이 흐르면 요미도 아가냥 티를 벗고 제법 늠름한 뒤뜰 냥이로 거듭날 수 있겠지 하고 생각해본다. 그럴 때까지 쭉 오래오래 우리 집 뒤뜰에서 함께했으면 좋겠다. 다소 심난한 건 사실이지만, 언제까지나 부엌 창문을 통해 요미의 얼굴을 볼 수 있었으면, 그랬으면 좋겠다.
요미는 '귀요미'에서 따온 이름이다. 이름 때문인지 보면 볼수록 진짜 귀엽다.
에필로그
너무 오랫동안 소식을 전하지 못해 죄송한 마음입니다. 싸복이 남매와 하늘이, 뒤뜰 냥이들도 모두 별 탈 없이 잘 지내고 있어요. 아이들 사진을 몇 장 올립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