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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 깃털 Oct 22. 2021

무심한 듯 애틋한 마음으로

싸복이 남매와 하늘이, 그리고 뒤뜰 냥이들의 근황 토크

# 어멍이 싸복이 남매와 하늘이의 근황을 보고합니다.


대, 중, 소 삼 남매는 아무 탈 없이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싸복이 남매는 벌써 9살이 되었는데요. 행복이가 대형견인지라(대형견이 수명이 좀 짧죠) 여기저기 소소하게 문제가 생기곤 하지만, 아직까지는 잘 버텨주고 있답니다. 싸이는 뭐, 도대체 아홉 살이 맞나 싶을 정도로 건강하고요. 아직 어린 하늘이야 말해 무엇하겠어요. 아주 팔팔합니다. 하늘이는 나이 들수록 자꾸만 시크 도도해져, 어멍을 귀찮게 하는 법이 없어요. 하늘이 같은 고양이라면 열마리라도 거뜬할 걸, 같은 말을 입에 달고 살 정도로요. 


소식을 전한 지 좀 되었어요. 혹시 궁금해하실 분들이 있을까 봐, 근황을 전해봅니다.


행복이는 여전히 행복이스럽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오늘도 많이 졸리운 듯.

엄마가 고가의 겨울 이불을 새로 하나 사주셨는데... 음... 싸이 차지가 됐네요. 어멍 것은 곧 나의 것.



하늘이도 하늘이 답게 우아 고상 시크 도도 하게 잘 지내고 있어요.

매일 저녁 풍경. 행복이 빗질할 때 하늘이가 꼭 옆자리를 지키는 이유는 뭘까요.

# 뒤뜰 냥이 신비의 수술 후 근황입니다.


지난번 발치 수술이 무려 4번째 수술이었지요. 수술 후 3개월이 돼가는데 아직까지는 별 탈 없이 잘 지내고 있어요. 그동안은 수술 후, 반짝(1달 정도) 괜찮았다가 바로 나빠지곤 했었는데요. 삼 개월을 무사한 걸 보니, 이번에는 괜찮으려니 하고 희망을 가지고 있어요. 살도 부쩍 오르고 입 주변도 깨끗해지고, 이렇게 말끔한 모습은 정말 오랜만이에요. 장기 복용하던 항생제도, 이번 참에 끊었답니다. 약 없이도 멀쩡해요. 신비를 볼 때마다 너무 행복합니다. 그간 맘고생이 정말 심했는데요. 모두 보상받는 기분이에요. 부디 이대로 오래오래 건강했으면 하는 바램이에요. 


삐쩍 말라 다 죽어가던 신비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는데, 정말 쌩쌩해졌어요.

건강해지니 외출도 다니고(아파서인지 신비는 완전 집순이였습니다), 다른 뒤뜰 냥이 탄이나 예삐와도 사이가 부쩍 좋아졌어요. 볼 때마다 흐뭇합니다. 날씨가 추워지니 혹 면역력이 떨어지지 않을까 노심초사예요. 아침저녁으로 부지런히 통조림을 진상하고, 영양제도 잘 챙기고 있어요. 월동준비도 부지런히 마쳤답니다. 이쯤 되면 우리 사이 거리가 좀 좁혀질 만도 한데, 여전히 데면데면합니다. 그래도 아침저녁 통조림 주는 시간은 귀신같이 알고, 마중 나와 있어요. 이 정도면 신비가 마음을 내줬다고 봐야겠죠. 신비가 힘들었던 지난날을 모두 잊고, 앞으로는 꽃길만 걸었으면 좋겠네요.


오동통해지니 얼굴도 동그래지고 인상도 많이 순해졌어요. 우리 신비가 원래 이렇게 예뻤던가요.

# 미니를 마지막으로 소금이네 가족은 모두 뒤뜰을 떠났습니다.


엄마냥 소금이는 주니, 미니 남매가 5개월이 됐을 무렵 집을 떠났다. 육 남매를 버리고 집을 떠났어도 여전히 밥을 먹으러 오는 태희와 달리, 소금이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소금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게 아니고, 터를 옮겼을 뿐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직관적으로 그런 느낌이 들었다. 엄마 소금이가 떠난 후에도, 주니와 미니 남매는 둘이 의지하며 잘 지냈다. 나는 매일 아침 통조림을 주었다. 우리 집에 오래오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아침마다 저 자리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곤 했어요. 

주니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된 건 9월부터다. 어느 날부터인가 보이지 않았다. 소금이때와 마찬가지로 생각했다. 주니는 그저 우리 집을 떠난 것뿐이라고. 주니 없는 미니가 너무 안쓰러웠지만, 미니는 혼자서도 씩씩하게 잘 지내는 듯싶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아침마다 통조림을 받아먹던 미니의 모습이 종종 보이질 않는다. 그렇게 조금씩 안 보이다 자취를 싹 감춘 지 일주일여가 되어간다. 이제 미니마저 우리 집을 떠난 것일까.


미니는 미니답게 정말 작아요. 3킬로나 되려나요. 저 작은 몸으로 어디서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소금이네 가족은 애초에 터를 잡고 지내던 장소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마당을 가로질러, 문을 넘어 드나드는 것을 여러 번 본 까닭이다. 애초에 살던 곳으로, 엄마와 주니를 찾아 돌아갔을까. 따뜻한 보금자리와 맛있는 식사가 있는 우리 집을 왜 떠났을까. 아니면 모두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것일까. 마음 한 구석이 헛헛하다. 특히 하늘이를 똑 닮은 미니와는 정이 많이 들어,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크다. 하지만 별 수 없는 일임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허전한 마음을 애써 모른 척해 본다. 


사이좋던 주니, 미니 남매의 모습. 이 시절이 참 그립다. 

길냥이들은 자유로운 영혼이다. 맛있는 밥, 따뜻한 잠자리보다 더 소중한 것을 찾아 모험을 떠났을 거라고 믿고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소금이네 가족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뿐이다. 날씨가 많이 추워지면 따뜻한 보금자리를 찾아 다시 뒤뜰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돌아온 탕자를 맞는 기분으로 두 팔 벌려, 그러면서도 무심한 듯 맞아주는 내 모습을 상상해 본다.


# 뒤뜰계의 최고의 빌런, 알몽이가 알콩이와 함께 돌아 왔습니다.


미니의 모습이 안 보이기 시작한 무렵부터 알몽이가 다시 뒤뜰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어느 날 아침, 원래 미니가 즐겨 누워있던 장소에 알콩이와 알몽이가 떡하니 누워있다. 그때, 자리를 뺏긴 미니가 떠날 수도 있다는 예감이 들었다. 알몽이가 작년 겨울에 이어, 올해도 초대박 사고를 치는 셈이다. 봄여름 동안 온 동네를 호령하며 돌아다니던 알몽이가, 찬바람이 불자 커플 냥이 알콩이와 함께 뒤뜰로 컴백했다. 전과 다르게 아주 홀쭉해진 몸매를 하고 선. 알몽이는 우리 집 뒤뜰 냥이계에 최고의 빌런으로 등극했다. 


미니를 위해 월동준비 단단히 했는데ㅠㅠ 알몽이만 좋은 일 시킨 셈이 됐다.

# 뒤뜰냥이 강이, 탄이, 예삐 트리오도 변함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월동준비로 방석 몇 개를 곳곳에 놓았는데, 특히 '강이'가 방석을 엄청 좋아한다. 아예 방석에서 나올 생각이 없다.

풀도 너무 앉고, 자갈보다는 냥이들에게 좋을듯해 '냥이 천국' 뒷마당에 데크를 깔았다. 탄이~ 맘에 드나 봐?

사놓고 별반 앉지 않던 캠핑의자를 뒤뜰에 놓았더니, 예삐가 애용한다. 누구라도 쓰면 됐지.

# 새로운 인연이 계속될 것이다.


얼마 전 휴일 한낮에 집에 들어오는데, 아직 어려 보이는 냥이 두 마리가 우리 집 앞마당에서 놀고 있다가, 나를 보고 놀라 도망간다. 처음 만나는 아이들이었다. 근방에서 여기가 맛집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놀러 온 모양이다. 미니가 떠났을 때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저 바라보는 것이 내 역할이라는 것을. 새로운 아이가 나타나면 그 아이를 두 팔 벌려 환영하고, 정든 아이가 떠나도 그저 묵묵히 내 자리를 지키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일 것이다. 


요 몇 달 사이 뒤뜰 사료 소비량이 다소 줄었다. 우리 집 밥을 먹는 아이들 수가 줄었다는 이야기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아이가 몇 있다. 누군가는 무지개다리를 건넜을 것이다. 내 마음속에 여러 개의 무덤이 생겼다. 무덤이 하나씩 늘어가고, 나의 삶도 그만큼 깊어져 간다. 


나는 오늘도 무심한 듯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저 길 위의 아이들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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