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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 깃털 May 06. 2024

나의 늙은 개, 행복이 이야기

싸복이 남매의 빛나는 우정

싸이와 행복이는 12년을 함께 살았다.


행복이는 순둥순둥한 성격에 어울리지 않게 다른 개들에게 무척 호전적이다. 세상 모든 개들이 다 싫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어렸을 때 (싸이 빼고) 다른 개들을 본 적이 없어서 인 것도 같고, 일 년도 채 되지 않았을 때 목줄 없는 진도 2마리에게 공격당한 기억 때문인 듯도 싶다. 어쨌든 사람을 그렇게 좋아하는 명랑 쾌활한 성격임을 감안할 때 무척 이례적인 일이긴 하다.


어릴때부터 사고뭉치였던 싸복이 남매

그래서인지 나는 늘 행복이가 싸이에게 무심하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개들에게 가지는 호전성을 생각해 보면, 그 정도면 싸이를 무척이나 좋아했던 셈이지 싶다. 언제나 싸이보다 어멍이 우선이긴 했으나, 생각해 보면 늘 치대고 귀찮게 굴던 싸이에게 으르렁 거린 일 한 번이 없기 때문이다. 


아직 애기애기한 행복이

개 두 마리를 함께 키울 때, (인간이 가지는 기대만큼) 그 두 마리가 사이가 좋을 확률은 높지 않다. 주변의 개 키우는 집 이야기를 들어봐도 그렇고, 실제 두 마리를 함께 키워 본 내 경험도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퍽이나 운이 좋았던 셈이다. 내가 특별히 애쓴 것이 없음에도, 아시다시피 싸이와 행복이는 무척이나 다정한 남매였기 때문이다.


방석은 자고로 함께쓰는 것이렷다

싸이는 행복이를 질투하면서도 늘 다정했다. 먼저 몸을 기대거나 붙이는 것도 늘 싸이 쪽이었다. 매 번 정성스럽게 핥아주는 것도 싸이몫이었다. 둘이 다정하게 붙어 있는 모습이 참으로 흐뭇했다. 사진첩에는 함께 붙어있는 싸복이 남매 커플(?) 사진이 정말 많다.


행복이 팔짱끼는 것도 좋아했던 싸이

싸복이 남매 우정이 이렇듯 하늘을 찌르니, 집을 오래 비운대도 걱정이 덜했다. 둘 사이 우정은 예뻤고 빛이 났다. 우리 셋은 (때론 뭉치가, 또 나중에 하늘이가 끼어들긴 했으나) 아슬아슬하게 멋진 균형을 유지하는 트라이앵글 같았다. 누구 하나라도 빠지면 완전해질 수 없는 삼각형. 그중 싸복이 남매의 관계는 특별했다. 서로 은근히 경쟁하면서도 챙기는 관계. 하나를 빼놓고 생각할 수 없는 운명공동체. 누구 하나 병원에 가야 할 때도 언제나 다른 한 마리도 같이, 산책도 언제나 같이, 하나가 아파서 밥을 굶어야 할 때도 같이, 늘 모든 것을 공평하게 같이하는 의 좋은 남매.


방석이 아무리 많아도 언제나 같은 방석에

생각해 보면 싸이 입장에선, 또 행복이 입장에서 때론 억울하기도 했겠지만, 내 입장에서 둘이 함께여서, 또 우리 셋이 함께여서 더욱더 좋았다. 두 마리를 감당하기가 분명 힘든 순간들도 있었겠지만, 언제나 함께여서 그 힘든 순간들도 잘 이겨낼 수 있었던 것 같다.


행복이는 싸이의 개편한 베개

늘 혼자가 익숙해서, 함께하는 즐거움을 잘 몰랐던 나는, 싸복이 남매와 함께하며 다른 대상과 마음을 주고받는 법을 배웠다. 어쩌면 마당쇠를 만난 것도, 싸복이 남매를 만나, 함께하는 것의 의미를 깨닫고, 좀 더 성숙해졌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언제나 다정했던 싸복이 남매

신기하고 또 속상한 것은 한 이 년 전쯤부터 싸이가 예전만큼 행복이에게 다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괴롭히거나 싫어했던 것은 전혀 아니지만, 전만큼 붙어있는 경우가 드물었다. 나도 그 사실을 행복이를 떠나보낸 후에야 구체적으로 깨달았다. 이전에 보여주었던 애정을 생각해 보면 고개를 갸우뚱 할 만한 일이다.


창밖을 볼때도 다정히 함께

행복이가 떠난 후, 나에게 싸이를 걱정하는 안부를 묻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 우려와는 다르게, 싸이는 (슬프게도) 오히려 행복이가 없는 지금이 더 편안해 보인다. 처음엔 괘씸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지만, 오히려 지금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싸이까지 행복이의 부재를 느낀다면, 아마도 나는 더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행복이 곁에 붙어 자는 걸 좋아했던 싸이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아마도 싸이는 행복이에게 정을 떼기 위해 서서히 마음을 거둔 것이 아닐까 하고 혼자서 추측해 본다. 어쩌면 싸이는 이별할 것은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이것이 싸이가 행복이와 이별하는 방법이 아니었을까. 이별조차도 그렇게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닐까.


싸복이 남매의 우정이 강아지별에서도 영원하기를

사진첩에 둘이 다정한 사진이 너무도 많다. 사진을 보면서, 최근에 정말 싸이가 예전같이 않았구나 하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다. 말없는 싸이의 속내를 알 길이 없다. 싸이는 행복이의 부재를 알고는 있을까. 질투할 대상이 없어져서 마음이 편한 것일까. 혼자 남은 싸이가 안쓰럽기도, 편해 보이는 싸이가 얄밉기도 하다. 삼각형의 한 축은 허물어졌다. 마음이 헛헛하다. 그래도 저 멀리 무지개다리 너머에서, 행복이가 삼각형의 한 축의 끝을 슬그머니 잡고 있을 거라는 상상을 해 본다. 


내가 제일 사랑하는 사진이다

싸복이 남매와 어멍, 우리 셋은 정말 잘 어울리는 삼각편대였다. 셋이 함께했던 12년 간의 세월을, 그 깊이를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우리가 함께 쌓아 올린 시간들, 웃고 울며 지냈던 많은 날들, 그 모두가 이제 저기 저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두어야 할 추억이 되었다. 나는 매일 순간순간 행복이를 떠올릴 것이고, 내 마음속 추억들도 오랫동안 살아 숨 쉴 것이다. 행복이가 내게 선물한 소중하고 귀하고 예쁜 추억들이 참 좋다. 


행복이가 없으니 세상 편해 보이는 싸이군

싸복이 남매의 빛이 나던 우정은 지구별 어딘가에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싸복이 남매가 강아지별에서 다시 만나는 날,
그때는 싸이가 행복이를 좀 반겨줄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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