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우리는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

로드킬 당하는 동물들이 없는 세상을 꿈꾸며

by 달의 깃털

얼마 전 출근길의 일이다. 왕복 4차선 대로에 강아지가 누워있다.


로드킬 현장이다. 운전을 하다 보면 심심치 않게 만나는 일이다. 아직 어려 보이는 강아지다. 그 넓은 길을 건너려다 그리된 모양이다. 자주 있는 일이지만, 좀처럼 무심해지지 않고, 늘 마음이 저릿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성호를 그으며 그 아이의 명복을 빌어주는 일이다. 잠시잠깐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는 것뿐.


기억나지 않는 언젠가부터 가능하다면 로드킬 당한 아이들을 묻어줘야겠다고 결심했다. 쉽지는 않았다. 로드킬 당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경우는 그나마 형편이 좀 낫다. 대개는 시간이 흐른 경우가 많고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상태가 된 경우도 있다. 처음 묻어줄 때는 어찌나 손과 발과 심장이 떨리던지. 죽은 동물을 마주한다는 두려움이 참 컸다. 몇 번 반복하고 보니, 이제는 처음처럼 그렇게 떨리거나 어렵지는 않은 일이 되었다.


KakaoTalk_20250925_075502839.jpg 마당쇠는 언제나 뒤에서 묵묵히 나를 바라본다

그래도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어서, 나는 종종 함께 일하는 학생들에게(대학도서관에서 일한다) 도움을 청하곤 했다. 이런 식이다. 출근길에 로드킬 당한 아이를 발견한다. 차를 세우기 마득치 않아 일단 출근한다. 출근해서 적당해 보이는(남학생에 동물에 호의적이고 나랑 친한) 알바생을 꼬드긴다. '이건 좋은 일이잖아' 하며. 내가 일하는 대학엔 그렇게 곳곳에 비밀스럽게 잠들어 있는 고양이들이 많다.


언젠가는 출근길에 마주치는 로드킬 당한 고양이가 있었다. 누군가 거둬 주겠지 하는 마음으로 처음엔 그냥 지나쳤다. 이틀이 되고 삼일이 되자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어 학생 하나를 꼬드겨 길을 나섰다. 훼손이 심하고 냄새가 역해 그걸 들고 오는 알바생에게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로 미안했다.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내 차에는 언제나 장갑과 호미가 트렁크에 들어 있다. 언제 어디서 로드킬 당한 아이를 만나게 될지 모르므로.


KakaoTalk_20250925_083635963.jpg 어느 해 겨울, 나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쓰고 있는 마당쇠

그뿐 아니라, 산책길에 자연사한 고양이를 만나게 되는 일도 종종 있다. 이쯤 되면, 신이 내게 묻어주라며, 발견하게 만드시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얼마 전에도 산책길에 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했다. 집에서 제법 떨어진 곳이어서 한 손으로 리드줄을 잡고, 한 손으로는 그 아이를 안고 돌아오는 길이 몸도 맘도 참 힘들었다. 겨울이어서 땅을 팔 도리도, 도구도 없어서 일단 집으로 데려가기로 한 것이다. 우리 집 마당에 묻어주었다.


마당쇠와 연애할 때 일이다. 고속도로 운전 중, 갑자기 창 밖으로 동전을 던진다. 뭐 하는 거냐고 물어봤더니 로드킬 당한 아이를 보았다는 거다. 알고 보니 마당쇠도 나와 같았다. 수습할 수 없으면 동전을 던지며 명복을 빌어주고, 수습이 가능할 땐 직접 묻어 주었다. 도심에서 살 땐, 본인이 수습이 어려운 경우, 전화도 많이 걸었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난 저 때 마당쇠를 신뢰하게 된 것 같다(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이 사람이 나쁜 사람은 아니구나 하는 확신을(나쁜 남자를 많이 만났다) 가졌던 것이 아닐까.


KakaoTalk_20250925_075638627.jpg 발도 얼굴도 맘도 닮은 우리가 되기를...

이제 우리 부부는 2인 1조가 되어 로드킬 당한 아이들을 적극적으로 묻어준다. 대개는 시골길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경우가 많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혼자일 땐 차를 세우고 무단횡단을 하고 땅을 파고 이런 일이 참으로 힘들었다. 이젠 마당쇠가 있어 식은 죽 먹기가 되었다. 아니, 나는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고 그냥 지켜보며 아이의 명복을 빌어주기만 하면 된다.


결혼생활이 참 쉽지 않다. 남과 함께 일상을 공유하고, 삶을 나눈 다는 것이 녹록지 않다. 그래서인지, 이래야, 저래야 부부가 잘 산다는 이야기가 꽤 많다. 개인적으로 그중에 제일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비슷한지'가 아닐까 싶다. 만약에 마당쇠가, '왜 굳이 묻어주기까지 하냐'라고 하는 사람이었다면, 나는 마당쇠와 결혼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우린 성격도 사고방식도 참 많이 다르다), 마당쇠와 나는 생각하는 결이 비슷하다.


KakaoTalk_20250925_080110564.jpg 작고 예쁜 모든 존재들에게 경이로움을 느낀다

로드킬 당한 동물을 안타까워하는 그 마음이 참 좋았다. 그것이 내가 가진 마음이었기 때문에. 마당쇠 또한 그래서 나를 선택했다고 한다. 내가 동물들을 책임감 있게 돌보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에게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나. 가끔씩 잘못 생각했다며 농담을 하는데. 아무래도 약자인 동물들에게 더 마음이 가기 마련이므로 마당쇠가 뒤로 쳐지는 경우가 많아, 마당쇠가 은근슬쩍 불만이 많다. 이제와 스스로 발등을 찍는 수밖에 별다른 수는 없을 것 같다.


어느 생명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하물며 길가에 피어난 꽃 한 송이. 하찮아 보이는 곤충 한 마리 까지도. 적어도 나의 마당쇠가 (부족한 것이 많아도) 생명의 소중한 가치를 아는 사람이라는 것이, 약한 존재를 따뜻하게 바라보는 사람이라는 점이 참 좋다. 아니, 이젠 로드킬 당한 동물을 만났을 때, 발을 동동 구르지 않고, 그저 손쉽게 마당쇠에게 S.O.S를 치면 된다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참 좋다.


KakaoTalk_20250925_080600038.jpg 모든 동물이 평안한 세상을 꿈꾸며

앞으로 이 험난한 세상, 얼마나 많은 동물들을 묻어주게 될는지 모르겠다. 마당쇠덕에 약간은 더 좋은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다. 나는 성호를 긋고 마당쇠는 동전을 던진다. 우리는 마음이 닮았다.


앞으로도 쭉 지금처럼만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걸어갔으면, 그랬으면 좋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행복이가 선물한 행복해지는 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