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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즈 Mar 19. 2024

봄의 길목에서 바닷길 따라 풍경 읽기

-시와 영화가 함께 하는 전북 부안여행






    

너, 문득 떠나고 싶을 때 있지? 마른 코딱지 같은 생활 따위 눈 딱 감고 떼어내고 말이야. 비로소 여행이란, 인생의 쓴맛 본 자들이 떠나는 것이니까 세상이 우리를 내버렸다는 생각이 들 때우리 스스로 세상을 한 번쯤 내동댕이쳐 보는 거야. 오른쪽 옆구리에 변산 앞바다를 끼고 모항에 가는 거야. 


안도현 시인의 '모항으로 가는 길'은 이렇게 시작된다. '우리들 생이 그래왔듯이 모항 가는 길은 구불구불하다'라고 시는 이어지는데 구불진 그 길은 평지를 달리다가 오름 언덕길을 지나 밑으로 내려가기도 하면서 모항 해변에 닿았다. 바다를 사이에 두고 든든한 방풍림의 역할을 하는 곧게 뻗은 송림 사이로 윤슬이 눈부시다.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밭을 걸어 바다 앞에 서 본다. 봄의 길목에 부는 모항해변의 바람은 차다. 


-영화 변산의 모항해변과 노을이야기

영화 '변산'(감독 이준익)에서 학수(박정민)와 용대(고준)가 갯벌에서 진흙탕 싸움을 벌이며 학창 시절부터 오랫동안 묵혀온 감정을 풀어내던 곳이 바로 모항 갯벌이었다. 물이 차오른 모항 갯벌은 청춘들이 온몸으로 감정을 분출하던 흔적을 시원한 겨울 파도로 덮어버렸다. 어릴 적 초등학교 친구들이 다 모여서 그 싸움을 즐겁게 구경하는 한 컷도 떠올리게 한다. 영화의 한 장면으로, 한 편의 시로 여행지는 이미 친근하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변산’에서 학수에게 고향이 주는 의미는 복잡하다. 누구라도 따뜻하게 맞아주는 엄마의 품이기를 바라지만 기억하고 싶지 않은 추억들을 되살리게 하는 곳이기도 했다. 영화를 보는 사람들 중에는 문득 마음속으로 향수 어린 분위기가 확 몰려들어와 두근거리게도 할 것이다. 누구나 지나버린 시간 속에 고이 묻어둔 추억들이 있기 마련이다. 



고향을 떠나 서울 변두리 고시촌에 살면서 편의점 알바 등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학수(박정민)는 래퍼의 꿈을 안고 있었다. 어느 날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입원 중이라는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엄마와 자신을 돌보지 않은 아버지는 증오의 대상이었다. 오랜만에 찾은 고향은 변했다. 애증이 뒤얽힌 친구들을 만나고 자신의 흑역사도 만나면서 자신과 맞닥뜨린다.   


영화 속 서투른 청춘들에게는 고향의 노을이 있었다. 비록 '내 고향은 가난해서 보여줄 것은 노을 밖에 없네'라고 했지만 옛 친구(김고은)는 이렇게 위로한다. "학수야 고향에 오믄 저 노을빛이 너한테 비단옷을 입혀주고 있는 거 같지 않어?"      



-부안 변산마실길 3코스 적벽강 노을길과 수성당

모항갯벌이 친구와의 진흙탕 싸움 장소였다면 동창들과 기타 치면서 노래하던 장면의 채석강도 있다. 채석강에서 멀지 않은 곳에 적벽강이 자리했다. 켜켜이 쌓인 화산암과 퇴적암층의 지형으로 이루어진 적벽강은 영화 '밀수'(감독 류승완)에서 춘자(김혜수)와 권상사(조인성)가 밀수를 벌이던 장소이기도 하다.   

  

부안 변산 마실길 3코스인 적벽강 노을길은 늦은 오후에 가야만 제 맛이다. 수천만 년 전 중생대 백악기에 생성된 해안 절경은 고즈넉한 저녁 무렵에 더 빛난다. 이곳의 주상절리는 바닷물이 빠지면 가까이 다가가서 그 신비함을 볼 수도 있다. 다만 풍화작용으로 인한 지질보호 차원에서 적당한 거리에서 바라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변산마실길 3구간에 해당하는 적벽강 노을길은 대략 7km 구간인데 모든 길을 걷기가 버겁다면 한 두 구간만 선택해서 걸어도 좋고 자동차를 이용해도 된다.       

    

차분히 가라앉은 저녁 무렵 적벽강 뒤편의 수성당에 오르면 소나무 숲 사이로 변산반도가 내려다보인다. 수성당은 서해를 다스리는 해신(海神) 개양할머니와 그의 딸 여덟 자매를 모신 제당이다. 절벽 밑으로는 여울굴과 대마골 등 토속신앙의 흔적도 엿볼 수 있다. 


개양할머니는 서해바다를 걸어 다니며 깊은 곳은 메우고 위험한 곳은 표시하여 어부를 보호하고 풍랑을 다스려 고기가 잘 잡히게 바다를 다스렸다는 설화의 주인공이다. 지금도 매년 음력 1월이면 이 지역 어민들이 정성껏 제사를 모실정도로 개양할머니에 대한 믿음이 깊다. 특히 무속인들 사이에서 굿발이 잘 받는다는 소문이 나서 일반인들도 찾아와 기도한다는 소문이 있다. 지방유형문화재 제58호다.    


수성당 옆으로 내려가면 무성한 대나무밭이 터널을 이루었다. 조선 시대에 나라에서 관리하는 화살밭이었다고 하는데 지명도 대막골(竹幕洞)이다. 봄가을이면 대숲 앞으로 유채와 코스모스가 밭 언덕을 가득 채운다.     

 


수성당에 왔으면 바다로 떨어지는 일몰을 아니 볼 수 없다. 제당 옆 절벽 앞에 서서 바라보는 노을은 가슴속 저 밑까지 뜨겁게 하는 기운이 있다. 하늘과 바다가 동시에 불타오른다. 바다 건너편 섬을 달구며 내리는 노을은 바라보는 이에게 이곳만의 독특한 느낌의 신묘함을 안긴다. 우르르 사람들이 몰려드는 일몰 명소와는 달리 한없이 고적하면서도 충만한 일몰이다.    

           


-줄포만 갯벌생태공원

부안의 줄포리 일대로 달리다 보면 갈대와 삘기가 바람에 살랑이는 들판을 보게 된다. 저지대 침수방지로 쌓은 제방 덕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담수 습지와 생태습지가 오늘날의 줄포만 갯벌생태늪지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총면적 20여 만평의 살아있는 갯벌에는 염생 식물이나 갯벌 생물들이 공생한다. 야생화 단지에는 계절 따라 갖가지 들꽃들이 피어나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붉은 칠면초가 군락을 이룬다.    

  

생태공원 안에서는 방문자들에게 제공하는 갯벌체험이나 소금체험 등의 다양한 체험프로그램도 생겨났다. 여행객들의 편의를 위한 캠핑장과 예쁜 모양의 펜션도 준비되어 있어서 자유롭게 머물 수도 있다. 그동안 해마다 봄이면 유채꽃의 노란 꽃물결이 일렁이며 생태공원의 봄을 알려왔다. 이곳 생태공원에서는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이 촬영되었다고 한다.               



-곰소항 젓갈단지의 곰삭은 맛

곰소항으로 접어들기도 전에 짭조름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항구 주변으로는 갯배가 묶여있고 한가롭다. 젓갈단지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오가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부안 지역 여행자들이라면 젓갈이나 건어물을 구입하려고 꼭 들르는 코스다. 부안 곰소항에서 만나는 밥도둑 젓갈은 곰소만의 풍부한 미네랄을 포함한 바닷물로 생산되는 질 좋은 소금과 함께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청어알과 낙지젓 등과 견과류가 더해져 고소하게 씹히는 맛이 일품인 씨앗젓갈이 인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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