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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에 May 18. 2018

간절한 소망

일본 오키나와 평화기념공원

여름이면 일기예보에서 자주 호명되는 섬이 일본이면서도 일본이 아니라는 데, 무슨 뜻일까. 사연을 듣기 전까지는 그저 맑고 밝은 이미지로 가득했다. 동양의 하와이, 산호섬, 옥빛으로 푸른 바다. 소문대로 자연은 투명하고 마을은 한산했다. 다만 아주 무겁고 소중한 평화가 있었다.



일본 오키나와

본토보다 대만이 훨씬 가까운 오키나와에는 일본 정부가 지우고 싶어 하는 흉터가 있다. 원래 본토와 오키나와는 물리적 거리만큼이나 먼 사이였다. 일찍부터 군침을 흘리며 찝쩍대던 일본은,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결국 평화로운 섬나라 류큐‘왕국’을 오키나와‘현’으로 전락시킨다. 이후 섬사람들은 고유 언어부터 고기를 잡으러 갈 자유까지 빼앗긴 채 탈탈 털렸다.



2차 대전이 끝난 후에 조선은 해방됐지만 류큐는 영원히 오키나와로 남았고, 섬 전체는 쑥대밭이 되었다. 1945년에 미군이 상륙하면서 일본군과 지상전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여기서 자작을 의심할 만큼 잔인한 ‘집단자살’이 등장한다. 일본군은 주민에게 미군의 포로가 되면 끔찍한 대우를 받을 거라고 협박하며 자살을 강요했다. 그렇게 섬사람의 1/3, 꽃 같은 목숨이 우수수 떨어졌다.



말쑥하게 푸른 섬에서 끔찍한 과거를 누가 상상할 수 있을까. 그때의 이야기는 오키나와 평화기념공원(沖縄戦跡国定公園)에 담겨 있다. 공원에는 어린이날을 맞이하여 잉어 모양의 연이 펄럭이고 있었다. 이들이 지키고 싶은 삶이란 지금처럼 공원에서 온 가족이 여유로운 휴일을 즐기는 소박한 일상이 아닐까. 쉬운 것처럼 보여도 사실 그렇지 않다. 지금도 지구 어딘가에서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으니까.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적힌 위령비가 바다를 향해 띠처럼 줄을 서 있다. 어림잡아 수십 명의 이름이 한 면에 적혀있는데, 아직도 찾지 못한 이들을 위한 자리가 남아있었다. 매년 몇 명씩 추가로 밝혀지면서 여백이 채워지고 있다고. 강제 징용되어 목숨을 잃은 한국인의 이름도 많다. 다만 그때는 하나의 조선인이었을 텐데, 현재의 기준에 따라 남과 북으로 나뉘어 있었다.



평화기원자료관에서는 전쟁이 시작되기 전부터 끝날 때까지의 과정을 보여준다. 죄 없는 이들이 얼마나 덧없이 사라졌는지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전시의 후반부에 이르면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몇 줄의 문장을 만나게 된다. 진실을 기록하고 지키려는 이들의 마음이 담겨 있다. 전쟁이 너무 싫은 사람들이 괴로운 기억을 꺼낸 이유는 단 하나. 과거를 잊지 않아야 평화롭게 살 수 있다는 것.




따뜻한 봄바람이 부는 아름다운 섬, 오키나와. 사탕수수밭을 보면 수탈에 시달린 농부의 모습이 떠오른다. 타의로 끌려간 우리네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까. 그런데 오키나와는 지금도 역사를 감추려는 이들과 총성 없는 전쟁 중이다. 언젠가 그토록 애타게 지킨 진실이 모두 사라져 버릴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힘든 현실에 마음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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