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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에 Aug 17. 2018

네버엔딩 뮤직시티

미국 내슈빌

세계가 전쟁에 휩쓸린 시기에도 누군가는 여행을 떠났다. 날이 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이방인을 자처했고, 자연스럽게 관광은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여행자가 소모하는 자원과 쏟아내는 쓰레기, 소음 문제가 있지만 다른 산업에 비해 친환경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미래산업으로 각광받은 지 오래다. 그런데 조상의 은총, 즉 빼어난 자연환경이나 고대 유적 없이도 돈을 벌 수 있을까.  


Nashville

미국 동남부 테네시주(Tennessee)의 주도인 내슈빌(Nashville)은 ‘Music City’라는 말을 내걸고 이방인을 부른다. 그중에서도 컨트리(Country Music)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컨트리 음악을 생각하면 기타, 카우보이 모자, 화려한 롱부츠와 같은 이미지가 떠오른다. 요즘 세대에게는 그다지 인기가 없는 장르라 흑백 사진처럼 오래된 듯한 느낌도 있다.


Home of Country Music

이민자의 노동요에서 출발한 컨트리 음악은 자본주의와 만나 상업화되면서 전국구로 빵 터졌고, 그 중심에 있던 내슈빌에는 수많은 녹음실이 들어섰다. 예술가와 사업가가 몰려들고 새로운 음악이 솟아났다. 물론 세상 모든 유행이 그렇듯 컨트리 음악의 인기도 점차 사그라들었고, 다양한 장르와 섞이며 변해갔다. 이제 내슈빌에서는 컨트리뿐만 아니라 여러 장르의 음악이 울려 퍼지고 있다. 실제로 음악 도시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밤낮을 가리지 않고 라이브 연주가 펼쳐지며 해마다 수많은 음악 축제가 열린다. 더불어 화려했던 시절을 상품으로 만들어 여행자의 주머니를 털고 있다.  



컨트리 음악이 잘 나갔을 때의 추억을 가진 이들이 주로 방문하는 걸까? 관광객의 평균 연령이 제법 높아 보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피부색이 짙은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동양인의 수도 손가락으로 헤아릴 수 있을 만큼 적었고, 한 때는 노예가 많았을 법한 지역인데도 아프리카계 사람은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컨트리 음악을 ‘미국 백인의 민요’라 일컫는 것과 관련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분명한 사실은 거리가 온통 하얀 얼굴로 북적인다는 것.



관광의 중심지는 낡고 오래된 저층 건물이 주를 이룬다. 바깥으로는 배트맨 빌딩이라 불리는 고층 빌딩이 우뚝 서 있고 신축 건물이 즐비하다. 관광객은 낮시간 동안 특정 가수나 컨트리 음악을 기념하는 박물관과 유명한 스튜디오를 돌면서 비슷한 의상과 장신구, 악기를 반복해서 마주한다. 온 세상이 컨트리구나 느낄 법한 수준으로. 전시관의 안내판이나 가이드의 설명도 친절하고 상세하다. 적당히 쉬어가는 타이밍에서는 기타, 카우보이 모자, 부츠 등을 테마로 한 굿즈가 기다리고 있다. 음악에 몰입했던 열정을 기념품에도 담아낸 걸까? 보통 가성비가 제일 떨어지는 품목인 기념 티셔츠의 품질이 놀라울 정도로 좋았다.

Country Music Hall of Fame
RCA Studio



거리에 늘어선 펍과 레스토랑에서는 온갖 밴드가 바통을 이어받는지 계속해서 음악이 들린다. 얇은 벽 하나를 맞대고 있는 가게에서는 각각의 밴드가 결투하듯 음악을 뿜고 있었다. 물론 컨트리 음악만 들리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다른 장르의 연주가 더 많은 것처럼 느껴졌다. 사실 뿌리를 찾다 보면 서로 닿아있는데 딱 잘라 남인 듯 말하는 게 우스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랩까지 나아가진 않았지만 적어도 컨트리로 명명할 음악으로 가득 찬 것은 아니었다. 물론 관객은 음악의 장르와 상관없이 몸을 흔들어대며 불타는 밤을 보내고 있었다.



소란스러운 거리를 벗어나면 조명이 화려한 보행자 다리가 나온다. 노약자도 도시의 야경을 볼 수 있게 배려한 친절한 다리다. 다리 위에서 빌딩 풍경을 바라보면, 화려한 음악이 흐르는 낡은 거리보다 빼곡한 빌딩 숲이 현실에 가깝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길은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린 듯, 일부러 만들어 낸 환상처럼 느껴진다.

John Seigenthaler Pedestrian Bridge
Korean War Veterans Memorial Bridge



내슈빌은 컨트리 음악에 젊음을 녹인 이들, 그냥 컨트리가 좋은 이들, 또는 세상의 모든 음악이 좋은 이들, 어쩌다 보니 여행하게 된 모든 이들을 음악 속으로 몰아넣는다. 그리고 속삭인다. 우리 동네 음악을 잘 아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필요하면 글자로든 사람을 통해서든 자세히 설명해 주겠다. 그저 원하는 방식으로 마음껏 즐기시라. 더불어 추억을 간직할 수 있도록 기념품도 다양하게 준비했습니다. 취향대로 골라잡아 계산대에 올리면 됩니다. 우리 안에서 마음을 열고 지갑을 열면 행복해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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