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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에 Oct 18. 2018

도시의 꿈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도시가 어수선하다. 오래된 것을 부수고 새 것을 쌓아 올린다. 변화를 바라보는 관점은 제각각이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부정적인 단어에 투영된다. 반면에 기대감은 설레발이 되어 없던 가치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항상 서로 다른 목소리가 뒤섞였지만, 대부분 미래에 대한 열망이 과거를 압도해왔다.



Vladivostok

러시아의 동쪽 끝자락에 위치한 블라디보스토크(Vladivostok)는 인천에서 비행기로 2시간 남짓이면 닿을 수 있다. 러시아 영토 중 유일하게 겨울에도 완전히 얼지 않는 항구가 있으며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전반적으로 자본의 손을 덜 탄 도시만의 분위기가 있지만, 최근에는 곳곳에서 변화의 바람을 느낄 수 있다. 또한 한반도와 가깝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한인이 거주했으며, 강제이주의 상처와 항일운동의 역사를 동시에 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WEST

도시의 서쪽 해변에는 작은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멀리 한복 그림이 보인다. 우리가 잊고 살던 또 다른 우리, 북한-러시아 수교 70주년을 기념하는 문이 설치되어 있었다. 가깝지만 먼 이들과 마주하기 시작한 요즘이기 때문일까, 묘한 기분이 든다. 언젠가 비슷한 것이 한반도 어딘가에 세워져 불곰국의 자리에 우리를 그리는 상상을 했다.

해양공원/아무르만


공원과 맞닿아 있는 종합경기장은 과거에 한인이 집단으로 거주하던 지역이다. 다만 강제이주 정책이 시행된 이후 판잣집이 즐비했던 자리가 문화생활공간으로 바뀌었다. 때때로 과거는 의도와 방법이 어땠는지와는 상관없이 미래를 위해 파묻힌다.


관광객은 경기장보다는 중심가에 몰린다. 화려한 서유럽의 건물과 비교해서 단순한 느낌이지만 나름 오래된 거리다. 앉을 공간이 많아 버스킹도 종종 열린다. 러시아 입양아인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이 거주했던 건물도 있다. 지금은 소박한 읍내 같은 느낌이지만 바로 뒷블럭에서는 부동산 거래와 리모델링이 한창이다. 도시는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아르바트 거리



 SOUTH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해서 냉방이 필요 없다는 블라디보스토크 역사. 시베리아 횡단 열차가 출발하는 곳이다. 몇 겹의 선로 너머로 바다가 이어져 있기 때문에 기차와 배를 타고 도시 바깥으로 나가려는 이들이 모여든다. 언젠가는 여기서 기차를 타고 우리 집까지 갈 수 있지 않을까. 또는 반대로 기차로 국경을 넘어 시베리아를 건널 수 있지 않을까.


기차역 뒤편의 금각만에는 국가 행사를 기념하여 여러 나라의 배가 정박 중이었다. 러시아부터, 인도네시아, 일본, 그리고 우리나라까지. 거대한 배에 올라 주변을 둘러보았다. 따가운 햇살을 잊을 만큼 시원한 바람이 분다. 두근두근하다. 펄럭이는 깃발을 보니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다. 언젠가는 북한에 들렀다 집에 갈 수 있을지도 몰라.



EAST

작은 불꽃이 두 개의 숫자를 양 옆에 둔 채 쉼 없이 타오른다. 러시아 곳곳에는 이와 비슷한 불꽃이 있다. 숫자로 짐작할 수 있듯 세계 2차 대전과 관련되어 있다. 전쟁으로 4천만 명이 죽었다. 누구든 가족, 친구, 또는 데면데면한 사이라도 한 명쯤은 전쟁으로 잃지 않았을까. 많은 국가의 역사가 서로 얽혀있다지만 항상 모든 짐은 어떤 악(惡)도 의도하지 않은, 지극히 평범한 이들이 떠안아야 했다.

영원의 불꽃


불꽃의 오른편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장난감 같은 문이 하나 있다. 이름은 개선문이지만 딱히 전쟁과 상관이 없다.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가 방문했을 때 아부성으로 지은 건축물이다. 수많은 목숨의 무게가 실린 불꽃을 생각하면 실소가 난다.


무능한 황제 때문이건 전쟁 때문이건 민중이 신음했다는 측면에서는 공통점이 있다. 생각할수록 괴롭고 울화가 치밀더라도 진짜 좋은 미래를 위한다면 잊지 말아야 할 일들.


한편, 개선문에서 북동쪽으로 올라가면 전망대가 있다. 거쳐왔던 금각만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여기저기 들어선 크레인만 봐도 도시가 꿈틀거리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장밋빛 미래에 대한 열망이 담긴 스카이라인이다.

독수리 전망대



NORTH

세상이 출렁일 때마다 우리의 마음은 더욱 크게 흔들렸기에 어떤 시대에도 기댈 곳이 필요했다. 셀 수 없이 많은 소망이 예배당에 머물렀고, 오늘도 누군가는 교회로 향하고 있다. 그래서 교회는 아주 먼 미래에도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만 같다.

포크롭스키 성당



WEST

모처럼 온 방향으로 누비며 걸었다. 작은 도시는 동북아의 미래가 바뀔 거라는 기대를 품고 있었다. 밖으로 나오니 그들의 미래가 우리와 맞닿아 있음을 잘 알겠다. 커다란 배에 올라탔을 때처럼 설렌다. 어차피 불안은 사라지지 않을 테니 당장의 밤 보다 먼 아침을 상상하기로 했다. 자유롭게 북쪽을 가로질러 여기에 닿는 순간 같은 것들을.

아무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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