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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에 Jun 28. 2019

아무렇게 특별하게

이탈리아 아레초


Arezzo

이탈리아 중부 거점인 피렌체에서 기차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소도시, 아레초(Arezzo). 정기적으로 커다란 벼룩시장이 열린다.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후기가 퍼져 장날이면 관광객이 몰려드는 곳. 덕분에 관광 인프라가 나쁘지 않다. 그럼 다른 때는 짜게 식어 있을까. 소란스러운 도시에 물렸지만 외곽이 조심스러운 쫄보에게는 꽤 괜찮은 선택지였다. 느긋하게 어슬렁댈 수 있을 것 같아.



기차에서 내리는 사람이 드물다. 거리도 한산하겠지. 상점 곳곳에는 시에스타를 알리는 팻말이 붙어있었다. 역시 도시에서 멀어질수록 한낮의 휴식을 살뜰하게 챙기는구나. 부산한 곳은 그 시간에 돈을 벌어야 하는 식당 정도. 텅 빈 듯 텅 비지 않은 채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골목마다 휘날리는 깃발, 아기자기하게 꾸민 상점, 과거의 위세를 보여주는 성당 사이를 어정거렸다. 무작정 끌리는 식당에 들어가 처음 보는 메뉴로 배를 채운 후에는 더욱 느리게 걸었다.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른 각도로 꺾이는 골목, 인파에 묻히지 않은 소실점, 바닥의 무늬 같은 것들을 무심하게 훑으며 걸음을 옮겼다.



인연이 있다는 영화는 생각도 못했다. 영화에 담긴 커다란 사랑과 그만큼 큰 슬픔은 오래도록 여운을 남겼지만 배경이 어땠는지는 잊어버렸으니까. 자전거에 아이를 태우고 가는 할아버지를 본 순간에서야 불현듯 포스터가 떠올랐다. 인생은 아름다워.



불쑥, 공원이다. 우리는 서로 다른 의자로 향했다. 나는 앉았고 친구는 누웠다.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아담한 마을을 바라보다 산책 나온 사람들을 구경하기도 하고, 그냥 시원하고 조용하다는 말을 읊조리며 멍하니 있기도 했다. 여느 휴일에 한강공원에서 그랬던 것처럼 아무렇게나.



고요하다. 풍경은 그에 어울릴 만큼 평화로웠다. 친구는 오랜만에 낮잠을 푹 잤다고 말했다. 아무렇게나 보낸 오늘이 너무 특별하다고. 언제부터 정처 없이 걷다 벤치에 누워 나뭇잎사귀를 올려다보며 뭉개는 게 특별한 일이 돼버린 걸까. 어깨가 아프기 시작하면서부터인가. 어느 순간부터는 스스로 얹은 것과 남이 올린 것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다. 덕분에 오늘이 특별해지는 아이러니. 얼마간은 다시 혐생을 견딜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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