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에 Jul 31. 2019

내 안의 누구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아르세니예프 생가

수많은 이들이 내 안에 있다.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어느 작가에서부터 당장 가까이 있는 누구까지, 다양한 이들의 이야기를 삼켰다. 대부분 내 안의 다른 것들과 섞여 나의 일부가 되었다. 때때로 내가 차갑거나 정반대로 따뜻해지는 건 그 때문일 거란 생각을 한다. 그래서 내일의 나를 확신할 수 없다. 오늘도 알게 모르게 덮어쓰는 중이다.



블라디보스토크

배부르게 킹크랩을 맛보거나 아이젠을 신고 빙판 마라톤을 즐길 수 있는 도시. 웃프게도 이색 체험이 가능한 이유는 혹독한 기후에 있다. 사실 극동지방은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데다 거친 환경 때문에 오랫동안 관심받지 못했다. 오늘의 여행은 누군가 애써 지도의 여백을 채워준 덕분이다.



탐험가 아르세니예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난 한 소년의 곁에 쥘 베른이 있었다. 그는 80일간의 세계일주나 해저 2만 리와 같은 작품을 즐기며 성장했다. 군입대 후 블라보스토크로 건너와 시베리아 극동 지방 탐사를 시작한다. 상상 속에서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던 어린이는 그렇게 진짜 탐험가가 되었다.

아르세니예프 생가


블라디보스토크 시내를 비롯하여 극동지방 곳곳에서 ‘블라디미르 클라우디에비치 아르세니예프’을 발견할 수 있다. 유명인의 과거를 마주할 때면 그에 대한 인상과 정보를 섞어 절대로 만날 수 없는 ‘그 시절’을 떠올려본다. 깨끗하게 정리된 작업실을 보며 요란한 장면을 상상했다. 서류 뭉치 앞에서 고래를 절레절레 젓는다거나 물건을 아무렇게나 널브러뜨리는 모습 같은 것들. 두려움을 밀어낼 만큼 강한 기대에 취한 표정이나 몸짓도.

작업실



소설과 다른 현실에는 데르수가 있었다. 1923년에 출간된 극동지방 탐사기의 제목이 ‘데르수 우잘라’였다는 사실만으로도 영향력을 짐작할 만하다. 데르수는 아르세니예프의 탐사에 참여한 현지인이다. 시베리아 극동지방에 사는 소수 부족민으로, 보통 숲에서 사냥한 것들을 팔아 생계를 유지한다. 여러 차례 탐사에 동행했을 정도로 둘은 사이가 좋았다. 아르세니예프는 데르수와 함께하며 소수민족의 문화와 지혜를 경험하게 된다.



데르수는 특별했다. 우주의 모든 존재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을 몸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숲 속의 자원을 ‘적당히’ 취해야 한다는 사고방식도 함께 산다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그래서 숲 속의 모든 존재를 ‘사람’이라 불렀다. 임의로 분류해서 서열을 매기지 않는다. 동등한 존재로 여기고 배려하는 삶. 다른 부족의 문화를 존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결국 아르세니예프는 현지인을 미개하다고 말하는 도시인들,  스스로를  문명인이라 칭하며 우쭐대는 사람들의 생각에 의문을 품게 된다. 데르수는 조력자이자 스승이었던 셈이다.


아르세니예프 안에는 쥘 베른과 데르수 우잘라가 있지 않을까. 극적이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쥘 베른이 떠올랐다. 한편 아르세니예프의 탐험기에는 쥘 베른의 작품에서 느꼈던 냉소적인 무엇이 없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데르수도 그중 하나일 거라고 생각했다. 아르세니예프의 세계를 확장시켜준, 다정하고 지혜로운 친구였기에.




매거진의 이전글 아무렇게 특별하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