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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브런치, 전두엽 리부트 선언

Hope Beyond the Road

by 시에

4년 전에 카메라를 팔았다. 코로나로 1년 남짓, 더 이상 낯선 풍경을 찍지 않고 있던 참이다. 한국 사업을 철수한다는 말까지 들려 결국 "당근이세요?"를 외치고 말았다. 퇴근 시간이라 붐비던 광장에서 비밀 임무를 마쳐야 하는 사람처럼 다급해 보이는 아저씨가 내 손에 현금다발을 쥐여주고 떠났다.


Get your kicks on Route 66

언제나 모험을 동경했지만 겁이 많아 어중간한 삶을 살았기에 가끔 내가 머무는 곳을 떠나는 게 좋았다. 누구보다 안전한 여행을 추구하지만 일상을 벗어난다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모험에 가까워졌다고 느꼈던 걸까. 미처 실행하지 못한 상상이나 썩 유쾌하지 못한 잔상 같은 것들도 함께 쓸려나갔을지도 모른다.


그 좋았던 여행을 내가 좋아하는 글자로 남기고 싶었다. 낯선 곳에서 떠오른 생각을 늘어놓고 '일기'를 썼다고 표현하곤 했다. "길 위의 어중이"라는 매거진 이름은 여행과 삶을 모두 의미하는 "길" 위에서 어중간한 채로 어떻게든 걸어가고 있는 나를 기록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URL은 좋아하는 노래 제목으로 Route 66.


Nocturne

운이 좋았다. 여러 번 브런치 메인에 내 글이 걸렸고, 또 몇 번은 여행 잡지에 글을 실었다. 사진이 좀 더 있으면 좋겠다는 편집자의 말에 적극적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서 생각을 펼치는 것도 더 수월해졌다. 하지만 언제나 모든 것은 흐름이 바뀌는 순간이 온다. 코로나로 멈춤의 시대가 열렸고, 동시에 아팠다. 몇 분만 걸어도 덜컥 겁이 났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애쓴 하루의 마지막에는 살기 위해 매트 위에서 몸을 이리저리 비트느라 숨이 찼다. 카메라도 그렇게 버렸다.


이따금 바람을 쐬러 나가기도 했지만 글은 떠오르지 않았다. 마스크 덕분에 공기가 달라지는 모든 순간을 온전히 느낄 수 없으면 아무 의미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브런치에 기약 없는 인사의 글을 남긴 지 5년, 마스크는 벗었고, 긴 비행을 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쓸 수 없었다. 그대로 길을 잃었다.


너는 어디서 너는 멀리서

이제 하루 이틀쯤은 스트레칭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 하지만 아직은 좀처럼 카페에서 멍때리는 것 이상으로 무엇을 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버튼이 꺼진 것 같다. 전두엽이 녹아내렸다거나 주의력이 박살 났다며 자조하는 현대인의 표본으로서 부족함이 없다. 쇼츠와 릴스를 끊임없이 넘기고,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쉴 새 없이 건너뛴다. 꾸준히 글을 쓰는 내가 존재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이따금 지난 글을 열어보곤 했다. 3년 반 남짓 80여 개의 글을 발행했다니, 2주에 한 번꼴이다. 제법 성실했는데? 여행 판타지를 부추긴 소설가의 고향에 갔던 글을 언제쯤 발행할까 두근대던 기억도 떠올랐다. 하지만 아직 나의 마지막 글은 "다음 여행은"이라는 질문에 머물러 있다.


백야

좋았던 기억도 버거웠던 마음도 글자에 담아 스스로를 보듬던 나는 어디에 있을까. 답답함이 목구멍까지 차오르기 시작했다. 미래의 삶에 대한 불안이 커져서일까. 바로잡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GPT를 붙들고 고민한 끝에 써 보기로 했다. 일단, 그냥. 결국 나는 쓰는 것으로밖에 나를 구원할 수 없을 것 같아서. '4년 전에 카메라를 팔았다'는 첫 문장을 품고 열흘이 지나서야 끝을 맺기 위해 창을 열었다.


불나방처럼 살다 화끈하게 세상을 떠나고 싶다고 외치던 어린이는 겁 많은 어른이 되었다. 이제는 어중이라는 사실에 고민하지 않는다. 삶은 여전히 어렵지만 항상 어떤 식으로든 결핍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공포든 불안이든 희망이든 더 이상 망가지고 싶지 않은 마음을 담아 길 위에 서는 꿈을 꾼다. 다시 브런치에서. 조금 느리더라도 얼레벌레 살아가는 이야기를 기록하다 보면 새로운 길 위에 설 수 있지 않을까 희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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