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간 국회도서관>, 2022년 5월호.
음악, 영화, 드라마 등 다양한 문화 분야에서 불고 있는 한류의 열풍이 글로벌 전역을 휩쓸고 있다. 최근 다수 국가들이 포스트 코로나(Post COVID-19, 코로나19 극복 이후 다가올 새로운 시대 상황)로 접어들면서 오프라인 기반의 활동이 늘어나고, 기존의 국제 행사들도 국경의 제한을 풀고 있다. 국내 출판계도 한류의 열풍과 포스트 코로나 현상을 실감하고 있다. 거의 2년 동안 비대면과 디지털 프로그램 방식으로 운영되던 유명 국제도서전 행사가 오프라인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과 함께 해외 출판계는 한국 출판물과 작가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특히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서 관련 수상 소식이 이러한 분위기를 증명하고 있다.
이탈리아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는 이수지 작가의 『여름이 온다』가 픽션 부문 스페셜 멘션에, 최덕규 작가의 『커다란 손』이 논픽션 부문 스페셜 멘션에 선정된 소식이 전해졌다. 볼로냐 라가치상은 픽션, 논픽션, 코믹스, 시 분야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픽션과 논픽션 부문에서는 ‘위너’ 작품과 ‘스페셜 멘션’ 작품이 최종 선정된다. 3월에 현지에서 개막한 볼로냐 도서전에서는 두 작가에 대한 볼로냐 라가치상 시상식이 있었다.
당시 라가치상 시상과 함께 한국 문학계에 또 하나의 경사가 있었다. 바로 이수지 작가가 ‘아동문학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의 2022년 일러스트레이터 부문 수상자가 된 것이다. 안데르센상은 19세기 덴마크 출신 동화작가인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을 기념하고자 1956년 만들어진 상으로, 아동문학계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2년마다 아동문학 발전에 지속해서 공헌한 글·그림 작가를 한 명씩 선정해 상을 수여한다. 이수지 작가는 지난 2016년 한국 작가 최초로 같은 부분 최종 후보이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최초의 한국 작가로 수상자 반열에 이름을 올렸다.
이수지 작가, 한국 작가 최초의 안데르센상 수상
이수지 작가의 작품인 『여름이 온다』는 물놀이와 비발디의 '사계' 중 '여름 1~3악장'을 연결한 아름다운 그림책이다. 이수지 작가는 이미 보스턴글로브 혼 북 명예상 수상, 뉴욕타임스 우수 그림책 선정 등 국제 무대에서 주목받았고, 어른들이 더 좋아하는 작가로 유명하다. 총 16개 국가에서 출간된 『파도야 놀자』, 『그림자놀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강이』 등 예술성 높은 그림책으로 한국 그림책 작가를 대표하고 있다.
이번에 이수지 작가의 안데르센상 수상 소식이 전해지면서 국내 서점가에서는 작가의 책들이 빠르게 판매되고 있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 따르면(3월 23일 기준), 작가의 수상 소식 직후 도서 판매량이 전주 대비 154배 정도 증가했다. 최신작인 『여름이 온다』는 일일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고, 주 구매층은 40대가 전체의 48.1%를 차지하는 등 어린이와 청소년보다 성인들이 그림책을 더 선호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수지 작가의 다른 책인 『파도야 놀자』도 알라딘 일일 베스트셀러 10위에 올랐다. 이 책은 2008년 뉴욕타임스 우수 그림책에 선정되었는데, 바닷가에 놀러 온 소녀가 파도와 노는 장면을 자유로운 먹선과 파란색, 흰색만을 사용해 역동적으로 그려낸 책이다. 이외에도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경계 그림책’ 3부작인 『거울속으로』, 『파도야 놀자』, 『그림자놀이』의 작업노트인 『이수지의 그림책』도 일일 베스트셀러 39위에 오르는 등 이수지 작가의 거의 모든 책이 독자들의 인기를 크게 얻고 있다.
지난 2020년에 『구름빵』의 백희나 작가가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추모상을 수상했고, 여러 한국 작가들이 창의성과 예술성을 인정받으며 주요 국제 그림책 부문에서 수상하고 있다. 이러한 한국 아동문학의 인기는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2020 출판산업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도서저작권 수출 건수(2019년 기준)는 총 2천142건이며, 아동 분야가 1천158건으로 전체의 54.1%를 차지했다. 아동 분야 그림책의 경우, 대부분 언어의 장벽이 없고 만국 공통어인 그림으로 스토리의 이해와 메시지 전달이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이다.
독자들의 역주행 반응, 부커상 후보 작품과 소설 『파친코』
일반적으로 세계 3대 문학상으로 노벨 문학상, 프랑스 공쿠르상, 영국 부커상을 이름에 올린다. 노벨 문학상은 1901년에 첫 시상을 하면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고 있다. 이어서 1903년 시작한 공쿠르상은 상금은 10유로인데 돈으로 권위를 살 수 없다는 상징적 의미를 보여준다. 부커상은 1969년부터 영연방 국가에서 출판된 영어 소설에 대해 시상해왔다. 2005년부터는 비영어권 작가의 번역작품을 대상으로 한 인터내셔널 부문도 추가했다. 2016년 작가 한강이 『채식주의자』로 한국인 최초의 수상자(당시 명칭은 ‘맨부커상’)가 되면서 세계 문학 독자들에게 큰 한국 소설의 위상을 드높이는 계기가 됐다.
최근 해외에서 번역 출간된 한국 문학이 연속해서 좋은 소식을 전하고 있다. 부커상에는 소설가 박상영과 정보라의 작품이 인터내셔널 부문 후보에 나란히 올랐다. 박상영 작의 『대도시의 사랑법』(Love in the Big City), 정보라 작가의 『저주토끼』(Cursed Bunny)가 후보에 오른 책이다. 두 작품을 번역한 한국인 번역가 안톤 허(본명 허정범)도 함께 후보에 들었다. 안톤 허 번역가는 황석영의 『수인』, 신경숙의 『리진』과 『바이올렛』 등을 번역한 전문 번역가로 한국 문학번역원에서 강의하는 등 번역 인력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한국인 두 작가와 함께 한국인 번역가가 후보에 오른 경우는 역대 처음이다. 이후 발표된 최종 후보 6편에는 『저주토끼』가 포함되었는데, 수상작은 5월에 발표될 예정이다.
이번에 '부커상’ 후보에 오른 책들도 서점계에서 높은 판매 효과를 누리고 있다. 두 책 모두 신간이 아닌 몇 해 전 출간된 작품이라는 점에서 부커상 후보 선정 이후 높아진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2019년 출간된 소설로 그 해 ‘젊은작가상’ 수상작이다. 『저주토끼』도 2017년 출간된 작품이다. 두 책은 교보문고에서 '지금 이 책'에 선정되었고, 부커상 후보 선정 이후 알라딘에서 '실시간 클릭 톱 10'에 오르기도 했다. 『저주토끼』를 출간한 아작출판사는 최근 관심에 힘입어 리커버 에디션을 제작했다.
이렇게 이어지는 한국 작가들의 도서 분야 수상과 부커상 후보 선정 소식은 한국 문학에 대한 해외의 지대한 관심을 의미한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 문학번역원에 따르면, 한국 문학의 해외 출판은 꾸준히 늘어 작년에 총 29개 언어권의 186종이 추진됐다. 교보생명의 대산문화재단 등 민간 지원까지 더하면 총 200여 종에 달하고 있다. 이렇게 지리역학적 상황속에서 겪는 한국어의 한계에도 해외 번역 출간 수요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그만큼 해외 출판 시장과 독자들의 반응도 좋다.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은 10개 언어권에서 30만 부, 『채식주의자』는 13개 언어권에서 16만 부 이상 판매됐다. 손원평 작가의 『아몬드』, 정유정 작가의 『종의 기원』, 김영하 작가의 『살인자의 기억법』 등도 1만 부 이상 판매되는 등 한국의 유명 작가들의 소설은 ‘K-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지평을 넓히고 있다. 여러모로 힘든 여건 속에서도 한국 작가들은 인류의 보편적인 주제에 대해 치열한 고민과 자유로운 필력으로 자신만의 개성을 글로 만들어냈다. 세계인들의 공감과 감동을 불러일으킨 것은 한국 문학의 위상이 오랫동안 축적된 결과이자,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포함된 결과로 볼 수 있다.
지난 4월 초에는 일본에서 좋은 소식이 전해졌다. 2021년 일본 쇼덴사에서 출간된 손원평 작가의 『서른의 반격』이 ’서점대상‘ 번역 소설 부문을 수상했다. 2004년 제정된 ‘서점대상’은 인터넷 서점을 포함한 일본 전국의 주요 서점 직원들이 직접 투표하고 선정한다. 2012년에 신설된 번역소설 부문에서 아시아 소설로는 처음으로 손원평 작가의 『아몬드』가 2020년에 수상했다. 2022년에 『서른의 반격』이 수상하면서 손원평 작가의 인기가 얼마만큼 높은지 확인해주었다. 『서른의 반격』을 번역한 야지마 아키코 번역가는 『아몬드』와 조남주 작가의 『귤의 맛 등을 번역하는 등 한국 소설의 멋을 일본 독자들에게 제대로 전달해주고 있다.
최근 한국적 정서와 역사를 고스란히 담은 소설 『파친코』의 인기도 주목된다. 애플TV+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의 세계적인 흥행 소식으로 이민진 작가가 쓴 동명의 원작 소설도 국내 서점가를 점령했다. 예스24에 따르면 장편소설 『파친코』 시리즈 1, 2권은 4월 둘째주 종합 베스트셀러 1위와 2위에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2018년 국내 출간된 이 소설은 3월 25일 애플TV+에 드라마가 공개되면서 서점가에서 역주행하고 있다. 드라마의 흥행이 원작 소설에 대한 높은 관심으로 연결되는 미디어셀러 또는 드라마셀러의 흐름을 그대로 타고 있다.
전문가들의 평가에 따르면, 한국적 소재 속에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여성 서사’와 이민사를 함께 다루면서 국가 경계를 넘어 공감과 호평을 받고 있다. 『파친코』는 재미교포 작가 이민진의 소설로 2017년 미국에서 출간돼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작에 오르고 뉴욕타임스, USA투데이, BBC 등에서 ‘올해의 책’으로 꼽히는 등 큰 화제를 모은 책이다. 일제강점기 부산 영도에서 오사카로 건너가 4대를 걸쳐 살아온 재일 한국인들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담았다. 작가는 이 작품의 완성을 위해 구상부터 탈고까지 30년이 걸린 것으로 알려졌다.
소설 『파친코』는 내국인이면서 끝내 이방인일 수밖에 없었던 자이니치(재일동포)들의 처절한 생애를 깊이 있는 필체로 담아낸 수작이다. 한국계 1.5세인 이민진 작가가 자이니치의 존재를 처음 접한 것은 대학생이었던 1989년이었다. 신분 상승 욕구가 강한 재미동포들과 달리 많은 자이니치들이 일본의 사회경제적 사다리 아래에서 고통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민진은 그때부터 자이니치에 관해 관심을 가지게 됐다. 인간의 정체성과 가치에 관한 작가의 치열한 고민은 일제강점기부터 1980년대까지 이르는 시대적 배경으로 부산 영도에서 살아가는 장애를 가진 훈이, 그의 딸 선자, 선자가 일본으로 건너가 낳은 아들 노아와 모자수, 그리고 모자수의 아들인 솔로몬에 이르기까지 4대에 걸친 집안의 역사를 담담하게 풀어냈다.
한국 문학 발전을 위한 전문 번역가 양성 필요
한국 문학의 세계화에 대한 기대는 과거와는 다른 국면을 경험하고 있다. 문화적 다양성이 각종 미디어 플랫폼과 글로벌 유통 환경을 통해 빠르게 확산하고, 콘텐츠 구매와 활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국어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언어 학습에 대한 외국인들의 참여도 적극적이다. 출판계에도 문학 분야를 중심으로 한국 출판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회복될수록 한국 출판 저작권 거래와 영상화 제작 관련 투자도 더욱 활성화될 전망이다.
한국 문학의 세계화를 이야기할 때 번역 문제는 빠짐없이 거론된다. 직역이 맞는지, 의역이 맞는지에 대한 논란도 여전하다. 문학 번역의 경우에는 단어와 문장 모두 충실한 번역이 해당 국가와 언어권에서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의견과 문화를 먼저 고려해서 독자들에게 쉽게 읽히는 번역이 중요하다는 의견이 양립한다. 이에 대해 무엇이 정답인지에 대해서 단정할 수 없다. 작품의 스타일과 번역의 수준에 따라 직역과 의역의 성패는 결국 독자들의 반응에 따라 엇갈릴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 문학의 세계화를 위해 중요한 과제로 ‘전문 번역가 양성’을 들 수 있다. 한국 문학이 진정한 세계 문학의 길을 걷기 위해서는 한국어로 쓴 한국의 정서를 세계 속으로 있는 그대로 확산시킬 때에 가능하다. 출판을 중심으로 한 번역 지원과 교육 부문의 정책적 지원은 계속되고 있지만, 산학 협력을 통한 보다 실전적인 전문 번역가 교육과 수준 향상도 병행되어야 한다. 나아가 ‘K-콘텐츠'의 수출을 증대하고, 출판 콘텐츠 산업의 부가가치 확대를 위해 웹소설, 웹툰, 영상물 등으로 전문 번역의 범위 확장도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정부 기관과 산업 현장의 긴밀한 협조를 통해 양질의 프로그램 개발과 실행이 추진되길 바란다.
[참고자료]
· 이수지·백희나…세계 독자들에 성큼 다가선 한국 아동문학, 연합뉴스, 2022.03.22.
· 드라마 인기에…원작 소설 '파친코'도 돌풍, 매일경제, 2022.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