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편집을 통해 완성된 의미 있는 텍스트의 결합으로 만들어진다. 여기에 텍스트를 설명하는 이미지가 더해진 종이책은 여전히 출판과 독서의 중심 매체로 자리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이 접목된 전자책의 경우 텍스트에 오디오와 비디오가 더해지면서 풍부한 읽기 경험을 제공한다. 이렇게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넘나드는 출판 콘텐츠 확장은 텍스트에서 시작된다. 콘텐츠 산업의 발전과 미디어 채널의 다양성으로 인해 출판 콘텐츠의 생산력은 높아졌지만, 상대적으로 소비량은 줄어들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성인 독서율은 수년간 감소했고, 2022년부터 2030년까지 세계 출판 시장의 연평균성장률(CAGR)은 1% 정도로 전망된다. 전반적인 시장 정체 상황에서 독서 인구의 핵심층이 40대 이상으로 집중되고 10~20대의 독서 기피 현상도 심해지고 있다.
독서보다 더 재미있는 활동들이 많아서 그쪽으로 쏠리는 취향과 선택을 부정적으로 볼 수는 없다. 독서의 효능감이 크지만, 젊은 세대들에게 강제적으로 주입할 수 있는 시대도 아니다. 책 이외에 지식과 문화, 감동을 얻을 수 있는 매체가 많아졌고, 언제 어디에서든 콘텐츠를 만들고 사용할 수 있는 기술과 플랫폼 환경도 빠르게 발전했다. 세계적인 인구 감소와 고령화 현상은 출판 시장과 독서 문화 전반에도 많은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출판 시장에서 소비자인 독자들의 니즈(needs)를 지금보다 더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시장의 쇠퇴는 불가피할 수 있다.
출처: https://tribune.cnumedia.jnu.ac.kr/news/articleView.html?idxno=20741
그렇다면, 왜 젊은 세대들은 기성세대보다 책을 멀리하고 있을까? 독서에 활용할 수 있는 콘텐츠가 부족하거나 독서 교육 정책과 열의 등이 부족해서 발생한 것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외부 환경적인 측면보다는 책을 이루는 텍스트를 대하는 느낌과 방식이 세대 차이와 함께 변화를 겪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지금 젊은 세대들은 수백 페이지에 이르는 텍스트를 읽고 이해하는 일련의 독서 과정이 힘들거나 재미가 없는 활동으로 인식하는 비율이 높다. 즉각적이고 흥미 요소가 많은 엔터테인먼트 콘텐츠의 대부분이 오디오와 비디오 포맷이라는 점은 그러한 차이를 이해하게 한다. 종이로 텍스트를 쓰고 읽었던 기성세대보다 디지털 환경에 더 익숙해진 젊은 세대에게 텍스트의 힘이 줄어든 것도 우리의 현실이다. 하지만, 최근 소셜 미디어를 활용해서 출판과 독서의 새로운 길을 찾고 문화를 만들어가는 노력도 일어나고 있다.
Z세대가 만든 새로운 독서 문화
지난 2월에 영국의 유력 일간지 가디언은 <Z세대가 책과 도서관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라는 기사를 올렸다. 1997년에서 2012년 사이에 태어난 이들이 종이책을 선호하고 있고, 2023년 영국 내 도서 판매량이 역대 최고 수준인 총 6억 6,900만 권을 기록했다. Z세대를 대표하는 모델 카이아 거버(Kaia Gerber)가 최근 독서 클럽을 만들면서 “독서는 정말 섹시하다!(Reading is so sexy!)”고 말한 인터뷰를 인용했다. 그녀는 라이브러리 사이언스(Library Science)라는 독서 클럽 사이트를 개설하면서 “책을 공유하고, 새로운 작가를 소개하고, 선망하는 예술가들과의 대화 시간을 만들고, 나처럼 문학에 흥미를 갖고 있는 사람들과의 커뮤니티를 구축하기 위한 플랫폼이다. 책은 항상 내 인생의 큰 사랑이었다.”라고 말하면서 책과 독서를 대하는 솔직한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출판 전문 조사업체 닐슨 북데이터(Nielsen BookData)의 발표에 따르면, Z세대가 선호하는 인쇄 도서는 2021년 11월부터 2022년까지의 기간 동안 발생한 구매의 80%를 차지했다. 시끄러운 커피숍보다 조용한 곳을 선호하는 Z세대의 도서관 방문도 증가해 영국에서의 도서관 직접 방문율은 전체적으로 71% 늘어났다. 그리고, Z세대 독서 습관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인기 있는 틱톡 계정 침대 옆 책들(Books on the Bedside)의 공동 창립자인 할리 브라운(Hali Brown)은 “Z세대의 독서 영역은 상당히 광범위하며 특히 문학 소설, 회고록, 번역 소설, 고전들이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인터넷과 디지털에 가장 익숙한 Z세대의 책과 독서에 대한 변화는 신선하다. Z세대의 소셜 미디어로 통하는 틱톡에서 해시태그 북톡(booktok)을 검색하면 수많은 검색 결과가 등장한다. 주로 자신이 읽은 책을 소개하거나 추천하는 짧은 영상으로 소셜 미디어 공간에서 자유롭게 책과 독서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Z세대의 독서 열기는 거의 모든 유행처럼 셀러브리티(Celebrity)와 소셜 미디어를 통해 확산하고 있다. 단순한 지적 과시를 위한 모습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Z세대에게 종이책은 디지털이 주지 못하는 물성과 희소성을 갖게 하는 것이다. 독서는 오롯이 나의 내면을 위한 시간을 가지게 하고, 타인에게 자랑하거나 공유할 수 있는 활동으로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고 보았다.
텍스트 힙의 시작과 출판계의 변화
최근 출판계는 텍스트 힙(Text Hip) 현상이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활자를 의미하는 ‘텍스트’와 ‘힙하다’(멋지다)를 합친 신조어로 요즘 젊은 세대의 독서 열풍을 상징한다. 출판 마케팅에도 이런 변화를 감지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젊은 세대들이 선호하는 팝업 스토어(Pop-up store)를 활용해서 도서를 홍보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출판사 창비는 지난 4월에 서울시 망원동 디콜라보에서 팝업 스토어 시크닉(詩+picnic)을 운영했다. 창비시선 500호 기념시선집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 출간을 기념해 한정판 굿즈와 전시 행사를 선보였다. 시에 어울리는 향기와 음악을 추천하고, 시 구절의 뒷부분을 연결해서 자신만의 시를 추가로 써보는 등 소풍 가듯이 시를 체험할 수 있어서 젊은 독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출처: https://www.donga.com/news/Culture/article/all/20240429/124696641/1
인터넷에 익숙한 젊은 세대를 위한 온라인 독서 모임도 인기를 얻고 있다. 온라인 독서 모임 플랫폼으로 유명한 '그믐'을 비롯한 '민음 북클럽', '마음산책 북클럽', '북클럽 문학동네', 문학과지성사의 북클럽 '문지기' 등 문학 전문 출판사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최근 짧고 자극적인 단어들에 익숙해진 숏폼(short form)의 시대에 한 줄씩 천천히 글씨를 쓰면서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필사(筆寫)가 젊은 세대들에게 통하면서 관련 책과 필기류의 판매량이 증가하고 있다.
지난 6월 서울국제도서전은 국내 젊은 세대들의 '텍스트 힙' 현상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던 자리였다. 20~30대 젊은 여성 독자들이 많이 방문하면서 역대급 흥행을 기록했다. 일부 독자들은 도서전을 여러 차례 방문했으며, 여러 출판사의 전시 공간을 찾아서 전용 굿즈(사은품)를 받고 인증샷을 찍고 소셜 미디어에 공유하는 등 도서전의 경험을 자유롭게 기록했다. 종합 금융 플랫폼을 제공하는 스타트업 토스(toss)에서 ‘더 머니 북 스토어’라는 이름으로 만든 전시 공간에는 다이어리 형식으로 자신만의 머니 북(Money book)을 만들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했다. 이렇게 도서전에서 다양한 책과 독서의 방향을 발견하고, 저자와 출판사 관계자들을 만나고, 책을 통해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는 느낌이 들게 했다. 이러한 문화적 경험은 텍스트 힙 현상의 지속성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상생하는 출판과 독서 문화 생태계의 기반은 젊은 세대들의 활발한 참여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참고자료]
Reading is so sexy’: gen Z turns to physical books and libraries, The Guardian, 2024.2.9
- 류영호 | 월간 국회도서관, 출판가 길라잡이, 2024년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