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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향 Sep 18. 2016

내적으로 가장 건강했던 시기

남들과 다를 바 없는 초, 중, 고 시절을 보내온 내가 겪은 호주는 모든 게 너무나 달랐다.


 남들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초, 중, 고 시절을 보내온 내가 겪은 호주는 모든 게 너무나 달랐다.
 그 다른 것들 하나하나 느끼며 찾아가는 사소한 행복이 정말 컸다. 호주 생활에 적응이 되면 될수록 내 몸과 마음은 튼튼해졌다.







 아침에 일어나 새파란 하늘을 보고 기지개를 펴고, 물을 끓여 모닝티나 커피를 마시곤 하루를 시작했다. 블루베리, 바나나를 곁들인 시리얼이나 토스트를 든든한 아침으로 먹으며 '오늘의 파도는 어떨까?' 생각했다. 바닷가에 사는 나는 스마트폰으로 파도 웹카메라를 보는 게 빠질 수 없는 아침 일상이었다. 출근 전에는 나 혼자 먹을 거지만, 나름 정성스럽게 점심 도시락을 쌌다. 오전 일이 끝나자마자 도시락을 재빨리 까먹고는 자투리 시간에 서핑을 가기 위해서였다. 일터는 바닷가에서 직선으로 20m 떨어진 작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이었다.


 룸메이트의 민트화분에서 따낸 잎으로 우린 민트티.           쉬는 날 집에서 흔한 브런치.




 

 외식비도 줄일 겸 런치박스를 싸서 다녔는데,  나중에는 도시락 싸기 선수가 돼 있었다. 늦잠을 자더라도 샐러드, 파스타, 샌드위치 등을 후다닥 만들어냈다. 요리를 좀 하시는 우리 엄마였지만 한국에 있을 때 요리를 가르쳐주시지 않았다. 딸내미를 요리 보조랍시고 종종 써먹을 수도 있었을 텐데 내가 요리에 통 관심이 없는 듯해서 별로 시키지도 않았다. 요리에 대한 수다는 "맛이 있다, 없다"로 그쳤다.

 그랬던 나를 외식값 비싼 호주의 물가가 Sus-chief(뜻:주방장 아래 부주방장/본인이평가한요리실력)로 만들었다. 생활비를 절약하기 위해 시작했던 홈쿠킹. 필요한 재료들을 슈퍼마켓에서 사다가 최대한 레시피와 똑같이 만들어냈다. 먹기 위해 요리를 하는 것은 생각보다 특별한 일이었다. 재료를 마트에서 고르는 것부터 시작했다. 항상 먹던 친근한 식재료가 많았지만 한 상을 차리기 위해 고르고, 또 고르는 '장보기'는 생각보다 신경을 기울여야 했다. 
 요즘 어린아이들이 교육 차원에서 하는 '식재료 가지고 놀기'를 하는 것처럼 다양하고도 싱싱한 식재료를 성인의 입장에서 탐구해봤다. 재료를 고를 때면 그 각각의 냄새를 킁킁 맡아 보았고, 손으로 눌러도 봤다. 이러한 과정이 어색하기 짝이 없던 초짜였지만, 이내 요리에 필요한 재료들의 효능과 궁합에 대해서도 궁금해하는 나를 발견했다. 실시간 검색을 통해 궁금증을 풀어내며 입에 들어가는 식재료에 대한 효능을 알게 되니 먹는 기쁨이 정말로 배가 됐다.
 사실 집에서 부모님이 하는 얘기, 요즘 방영하는 케이블 생활정보프로그램에서 석류는 여자한테 좋데." "당근이 시력에 좋습니다." 등의 이야기를 시시콜콜하다며 귓등으로 듣곤 했는데 직접 요리하는 사람이 돼보니, 음식에 대한 각종 정보에 저절로 관심이 갔다. 상을 직접 차릴 생각을 하니, 이왕이면 좋은 음식들을 먹고 싶었다. 슈퍼마켓에 가서 건강에 좋다는 오가닉 푸드, 슈퍼푸드 코너에서 한참 동안 가격과 시름하다가 한 개 집어오기도 하고, 그냥 저렴한 채소들을 사다가 그 재료들의 효능을 배로 발휘할 수 있는 방법으로 요리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정말 건강한 식단으로 매 끼를 만들어 먹었다. 




  가끔 지인들을 집에 초대해 내가 먹던 대로 요리해서 같이 식사를 하다 보면 그들은 항상 하나같이 말한다.
 "와, 어쩜 집에서도 이렇게 잘 먹을 수가 있어? 넌 정말 셰프야!
 "집에서 잘 먹어야지 그럼!"



 내 몸을 위해 좋은 것들만 먹으려고 하니 몸과 마음이 건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풍족하지 못한 상황이 나의 몸과 마음을 더 건강하게 만들었다. 비싼 대중교통비는 두 다리를 쉴 새 없이 걷게 만들었다. 혼자 쉴 새 없이 걷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발길 닿는 곳 어디든 멋진 풍경이 여기저기 펼쳐져 있으니까.



석양과 함께 집으로 가는 길 Manly Sydney, NSW





 혼자 온 워홀.
 초기엔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내 소리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남들이 하던대로가 아닌, 내가 원하는 것들을 찾아 시도해보게 됐다. 서핑*, 요리, 조깅 등. 호주 라이프에서 더더 호주 라이프답게 만들어준, 고마운 나의 취미 서핑. 건강한 마음으로 실컷 즐기기만 했던 취미는 별 기대하지 않았던 탄탄한 근육들을 내 몸둥 아리에 붙여줬다.



항상 즐기느라 바빠서 서핑 사진이 진짜 없다. 같이 타는 친구들도 자기 탈 것 바쁨!



 서핑을 하면서, 그리고 근교 여행을 하면서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그 크나큰 즐거움을 알게 됐다. 즐거움을 주는 자연에게 좀 더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연과 좀 더 가까워지고 싶었던 나는 초, 중학교 과학시간에 배웠지만 까마득해진 자연의 이치가 저절로 더 궁금해졌다. 지식인에게, 네이버에게 많이 물어봤다. 디너타임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몇몇 가로등을 빼면 되게 깜깜했다. 어두운 밤하늘에서 나는 빨갛게 빛나는 화성을 찾았고, 전갈자리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스마트폰에 저장된 별자리 어플리케이션은 어느새 '자주' 쓰는 폴더로 옮겨져있었다. 문득 이렇게까지 자연에 관심을 갖는 내가 신기해졌다. 알면 알수록 나의 감각으로 직접 느끼는 자연은 경이로웠다. 별과 달을 좀 더 선명하게 보고 싶어서 주변이 밝아지지 않도록 바랬던 적도 많다. 토끼가 10마리는 들어있을 듯 그렇게 큰 달을 내 두 눈으로 볼 수 있는 것, 저렇게 큰 태양이 동쪽에서 뜨겁게 떠오를 수 있는 지도 호주에 와서 처음 알게 됐다.







 한국에 있을 때는 하늘을 쳐다볼 여유가 없었고, 그래서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몰랐던 것이다. 지구는 둥그니까, 우리나라에서도 그렇게 크고 밝은 쟁반 같은 둥근 달을 볼 수 있었을 텐데 나는 저쪽 지구 반대편에 가서야 마침내 그 사실을 두 눈으로 확인했다. 


 눈에 띄게 정말 건강했던 점은 그동안 스트레스로 인한 질병을 단 한 번도 앓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여성들이 스트레스성으로 가끔 걸리는 부인과 질병들, 생리통, 복통 등.. 정말 감사하게도 크게 병원 갈 일도 없고 잔병치레도 거의 없었다. 이게 다 그동안 마음이 건강했던 까닭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매일 아침 화장실도 너무 잘 가서 친한 친구와 진지하게 고민 아닌 고민했던 적도 있다. 
 마음이 건강하니 몸은 저절로 건강해지는 것을 몸소 체험하고선 '사람살기는 마음먹기에 달렸다'라는 말을 속으로 달고 지낸다. 그런데 귀국하고 며칠 후 한포진이라는 피부병이 도졌다. 정말 왜 때문인지 모르겠다. 물 때문인가? 



 지난 1년간 튼튼하게 지켰던 소중한 나의 마음, 이곳 한국에서도 잘 지켜나가고 싶다.














- 영어가 재밌어서 전공 삼았지만 지금은 휴학생입니다.

- 다양한 나라에서 나고 자란 친구들과 소통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가까운 미래의 꿈:

1. 운전 연습 좀 해서 빈티지 콘셉으로 벤을 꾸민 후 서핑보드를 루프렉에 얹고 대한민국 로드트립 하기.

2. 인도, 네팔 여행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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