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꺽정 Jan 28. 2018

화폐의 본질

2. 화폐에 대하여, 두번째

금만이 화폐 역할을 한 것은 아니다.  곡물도 화폐 역할을 하였다. 금은 없어도 살아갈 수 있지만 희귀하고 사용처가 광범위했기 때문에 화폐로서의 역할을 담당했지만 곡물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 꼭 필요한 것이기에 그리고 과거에는 산출량이 수요를 충당하기에 충분하지 않았기에 화폐로서의 역할을 해낼 수가 있었다.  부피가 크고 무겁고 부패하기 쉽기에 화폐로서는 적당하지 않지만 곡물을 소유하고 있으면 비단도 살 수 있었고 금으로 교환할 수도 있었고 전답도 살 수가 있었다. 


곡물이 화폐로서 가치가 부여된다면 곡물의 생산업자가 화폐의 발행권을 쥐게 된다.  즉 토지를 보유한 자가 화폐 발행권을 쥐고 있는 셈이다. 만약에 곡물을 오랫동안 저장할 수 있는 수단을 갖게 된다면 그 위력은 배가 된다.  알겠지만 토지를 소유한 사람은 풍년이 들었다고 마냥 좋은 것은 아니다.  풍년의 의미는 곡물이라는 화폐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농업기술이 충분치 않아 대풍년이 들었다 하더라도 곡식이 남아돌 정도는 아니었겠지만 그래도 계속되는 풍년은 서민들에게는 반가운 일이어도 지주 입장은 다를 수가 있는 것이다.  지주 입장에서는 아마도 풍년과 흉년이 반복되는 것이 오히려 자신의 부를 증가시키는데 더 유리했을 것이다.   올해 풍년이 들어 곡식을 창고에 가득 쌓아 놓았는데 다음 해에 또 풍년이 들어버리면 어쩌면 곡식을 저장할 창고가 부족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곡식으로 지대를 받는 것이 의미가 없어지고 곡식을 산출하는 토지를 보유하는 의미도 없어진다.  화폐의 역할을 하는 곡식이 가치가 없어짐으로 해서 곡식을 산출하는 토지도 가치가 없어져 버리기 때문이다.  백성들에게는 좋은 현상이다.  토지값이 떨어지니 헐값으로 토지를 매입하여 소작농 신세를 벗어나 자작농으로 변신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는 것이다.  대지주들은 곡식을 산출하는 토지를 바탕으로 해서 수많은 소작농과 많은 종을 거느릴 수 있지만, 곡식이 흔해져 버리면 이 권력이 사라져 버린다. 


그런데 만약에 풍년-흉년-풍년-흉년이 반복된다면 백성들에게는 최악의 경우가 된다.  어느 해에 풍년이 들어 대지주들은 곡식을 창고에 가득 채울 수 있다고 하자.  백성들도 굶지 않고 배불리 먹고살 수 있으니 행복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백성들에게 자가소비 후 남아돌 정도로 곡식이 배분되지는 않는다.  지주들이 그럴 정도로 너그러운 경우는 없다.  그저 죽지 않을 정도의 곡식만 나누어주고 나머지는 가져가 버리는 것이 다반사이다. 그런데 다음 해에 흉년이 들었다고 하자.  대지주는 작년에 쌓아놓은 곡식도 있고 흉년이라 하더라도 대규모로 소유한 토지에서 기본적으로 거두어들이는 양이 있기에 흉년을 견디기는 어렵지 않지만 소작농이나 소규모 자작농들은 큰 위기에 빠진다.  초근목피로 근근이 버틸 수라도 있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하면 보유하고 있는 자산을 내다 팔아 소량의 곡식이라도 사 와야 한다.  흉년이 들어 화폐로서의 곡식의 가치는 매우 높아졌기에 대지주들의 권력은 강력해진다.  그들은 창고에 쌓아 놓은 곡식을 이용하여 굶어 죽기 않기 위해 가난한 백성들이 내어놓은 금반지 소규모 토지 등을 싹쓸이할 수 있다.  생명유지에 꼭 필요한 곡식을 이용하여 결국 대지주는 더 큰 부자가 되고 일반 가난한 백성들은 더 가난해지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고려말이나 구한말에 실제로 발생되었던 현상이었고 이는 민란으로 이어졌고 결국은 국가의 해체를 불러왔다. 


요즘은 시대가 바뀌었으니까 고려말이나 조선말에 발생한 일이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지금도 겉모습만 바뀌었지 실질은 똑같은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부의 편중되는 현실을 막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국가인데 국가가 이를 시정하지 못하면 역사는 반복될 뿐이다. 


지금은 곡식이 화폐 역할을 하지 못하기에 토지의 중요도가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만약에 어떤 중대한 사건이 발생하여 현대사회를 유지시켜주는 시스템이 붕괴된다면 곡물을 산출할 수 있는 토지의 중요성은 다시 부각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주요 재벌 중의 하나인 삼성에서 에버랜드라는 이름으로 용인에 대규모 토지를 보유한 것이 그냥 놀이공원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아닐 것이다.  그들은 아마도 최악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서 에버랜드를 만들었을 것이다.  에버랜드의 이름도 애초에는 용인 자연농원(自然農園)이었다.  즉 농장이었던 것이다. 화폐 가무 용지 물이 되어 버리고 사회가 혼란에 빠져 물물교환 시대에 버금가는 상황에 빠져버렸을 때를 대비하여 그들은 에버랜드에 곡식을 산출할 수 있고 신선한 물을 공급받을 수 있고 외부 칩입자를 막을 수 있는 그런 시설들을 만들어 놓았을 것이다.  삼성말고 현대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서산에 대규모 농장을 보유하고 있다.  그 농장에서 생산되는 한우는 최고등급의 한우로 매우 비싼 값이 팔리고 있다.  그들이 한국의 축산업을 위하여 거대한 규모의 농장을 운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도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을 때를 대비하기 위한 용도로 서산에 거대한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셈이다.  


그들은 삶의 근본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삶의 근본은 화폐(돈)도 아니고 초고층 빌딩도 아니고 최고급 자동차도 아니다.  그것들은 겉으로만 보이는 것들이다.  곡식을 산출해 내는 토지가 근본이고 마실수 있는 물, 안전한 주거공간, 추위를 막을 수 있는 의복이 삶의 원초적인 근본이라는 것을 그들은 매우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만약에 1천만 인구가 살고 있는 서울에 어떤 중대한 이유로 인하여 전기가 공급되지 않는다고 가정해 보자.  먼저 아파트가 주거공간으로서 기능을 상실한다. 빌딩도 마찬가지다. 엘리베이터가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전기로 움직이는 것들은 모두 움직이지 않는다.  통신망 두절, 교통시스템 마비, 지하철 운행중단, 금융거래 불가 등으로 인하여 도시의 기능은 일시에 마비되어 버린다.  그다음은 물과 식량이다.  수도꼭지에서는 물이 나오지 않는다.  서울에 우물이 있을 리 없다.  식량도 곧 사라진다.  비축된 식량이 있어도 배송되는 시스템이 망가지기에 무용지물이다.  이쯤 되면 마지막 남은 수단은 서울 탈출이다.  일시에 천만의 사람들이 서울을 탈출하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비극의 서막은 오른다.  예측컨데 그 정도 인구가 일시에 움직인다면 그들은 약탈자로 변모할 수밖에 없다.  서로가 뺏고 서로를 죽이는 아비규환이 벌어질 것이다.  이때 삼성이나 현대 등의 재벌들은 그들만의 요새인 용인으로 서산으로 헬리콥터를 타고 조용히 들어가 칩거하고 있을 것이다.   그 모든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말이다. 


3편에서 계속

작가의 이전글 화폐의 본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