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기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
이동진 작가를 통해 알게 된 문장. 그때그때 다르지만 자신의 책에 싸인과 문구를 남긴다고 한다. 저 짧은 문장에서 그가 삶을 대하는 태도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여행을 와서 느낀 것들이 여럿 있다. 그중에 하나가 저 문장이다. 이번 해에 많은 것들이 오고 갔다. 나에게 수많은 감정들과 경험들이 왔다. 결론적으론 좋은 감정과 경험은 아니었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 잘못은 나에게도 있었다.
여기 오기 전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다. 현재에 도저히 집중할 수 없을 만큼 고통이 닥쳤다. 나에게 마지막 남은 희망은 가족인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곳에는 나의 잘못도 소수 포함되어 있었다. 내가 일을 그르친 건 아니어도. 가족에게 너무 많은 기대를 했고, 나를 해친 사람에게도 너무 많은 기대를 했다. 사실 사랑하는 사람과 가족에게 기대를 하는 건 나쁜 일이 아니다.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 하지만, 그런 기대가 나를 결국 파괴시켰다. 언제나 자신이 1순위인 삶을 살다가 그렇지 않은 삶을 택하려 했다.
무엇보다 나에겐 신뢰가 있었다. 최소한 사람과 가족에겐 신뢰를 주었다. 나보다 그들을 더 아꼈다. 그렇지만, 신뢰는 서서히 무너져갔다. 그래도 나에 대한 신뢰로 사람들을 지키려 했지만, 그건 너무 어려웠다. 어려웠지만 노력했다. 노력해도 되지 않는 게 있었는 데, 그건 무너지는 신뢰를 버티는 일이었다. 결국, 무너져 내렸고 나는 사람들을 믿었기에 나에게 닥쳐온 파장도 너무나 컸다. 아직도 글을 쓰는 게 어려울 정도로 모든 게 상처로 남았다.
상처에 대해 글을 쓰기엔 아직 아물지 않았다. 글을 더 이상 쓸 수가 없어서 이런저런 리서치를 하다가 돌아왔다. 이 멀리까지 와서 굳이 이런 글을 쓰고 있냐고 물어본다면, 그만큼 나에게 끔찍했던 일이고 그 과정 속에 아직 있다.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기에 여기서 나를 분리시킬 수는 없다. 여행 와서 결심한 몇 가지가 있다. 분명 한국에 돌아가서는 흐지부지 될 테니 여기에 기록을 남겨보려 한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질투는 나의 힘>, 기형도
나의 관심은 언제나 나를 향하면서도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밖에 내가 보지 못하고 갖지 못했던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항상 스스로를 사랑하려고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기형도의 시처럼. 나는 그러지 못했다. 언제나 밖이 멋져 보였고, 내가 갖지 못한 것들을 갈망했다. 스스로를 조절하려고 해도 그러지 못했던 시절이 내 안에 가득하다. 그런 후회와 절망이 넘쳐나는 20대를 보냈다. 누군가를 그리워했지만, 나에게는 사랑을 쏟지 못했다.
올 해가 넘어가면 조금 더 주체적으로 삶을 살려는 여러 계획들을 실행하려고 한다. 가족들에게서 더 이상 방해받지 않고 나답게 사는 법을 배우려고 한다. 혼자 지냈던 시절이 길었지만, 그 시간들 곳곳에는 가족에 대한 의지가 있었다. 너무나 당연한 게 한국 사회의 일이지만, 그 당연함 속에 묻혀 나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 내가 정말 좋아하고 원하는 것을 해나가는 데 너무나 큰 대가를 치렀다.
내가 가진 게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그곳에서 행복하려고 한다. 여기서의 행복은 쾌락이 아니다. 자신이 가진 일상 안에서 최소한 내가 만족하는 일상을 살아내는 힘이다. 내가 가진 것에서 만족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꼭 해내야 하는 일이다.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많은 것들이 정리된다. 그렇게 하나하나 결심하고 버리고 비우고 다시 채우는 일을 반복할 것이다. 이제는 오로지 나를 위해 살아가야 한다. 꼭 그래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