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갬성태 Nov 25. 2019

여행 왔는 데 할 게 없어요.
어떡하죠? 너무 좋아요.

아무것도 할 필요도 볼 필요도 없다

여행 왔는 데 할 게 없어요. 어떡하죠? 너무 좋아요


비앤비 근처 카페로 향하는 길. 너무나 오르건 스러운 풍경.


포틀랜드에 며칠 째지. 도착한 일을 포함해서 벌써 4일째다. 유명한 맛집과 커피는 다녀간 지 오래. 그렇다면 이제 어디를 가야 할까. 어디가 필요도 없다. 때마침 오늘 비 온다는 소식을 들었고, 그 덕분에 나는 더욱 게을러질 수 있었다. 어제는 혼자 외로운 마음을 느꼈다. 사실 요 며칠 포틀랜드에 와서 계속 너를 앓고 있었다. 거리는 가까워졌지만, 여전히 못 봐서 힘든 건 마찬가지니까. 왜 좋은 풍경 안에 있어도 사람은 그 속에 온전히 속하지 못하는 걸까. 그것은 타인의 공간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겠지. 아무리 좋은 걸로 채우려 해도 결코 차지 않을 테니까.


여행지에서 스며들 때, 나는 비로소 온전함을 느낀다


어제는 하루 종일 너를 앓다가 잠에 들었다. 도무지 뭐 재밌는 것도 없고, 그리움에 가득 찬 밤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할까. 그리움의 수치가 정상 이상을 찍고, 손 쓸 방법이 없었다. 여행에서는 오만가지 감정을 다 느낀다. 구글맵을 보면서도 길을 못 찾는 나에 대한 실망, 더 많이 돌아다녀야 하나 싶은 조바심, 하지만 그래도 쉬고 싶은 마음이 더 클 때가 많다. 그리고 타인에 대한 그리움과 보고 싶음 마음은 넘쳐서 방을 한 가득 채운다. 어제는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들어와 가장 익숙한 패스트푸드인 맥도널드를 사 와서 방 안에서 혼자 영화를 봤다. 그렇게, 혼자 내버려 두지 말았어야 했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나에겐 있었고, 너를 그리워하는 일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감정이 무장해제가 돼버리는 걸


여기는 너무 마음에 드는 데, 어디서든 찾아 볼 수 없다. 나만 알아야지 히힛.


여행에서는 너무 많은 감정이 나를 통과한다. 그만큼 나를 돌아보고(이제는 그만 좀 돌아봐도 되는데), 생각할 시간이 많다는 얘기겠지만, 가끔씩은 이런 내가 버거울 때도 많다. 어쩌자고 혼자 여행을 했을까. 그동안은 혼자 여행한 기억들이 대부분이다. 많은 밤을 호스텔에서 지내고, 언제나 해가 지면 바로 향했다. 그렇게 친구들을 만나고 때로는 온전한 나만의 시간을 가졌다. 너무나 포근한 도시에서 생각지도 못한 외로움을 느낀다. 이 당황스럽고 당혹한 감정을 어찌할 바 모르겠다. 


평온함 속 놀라움의 연속 


영상을 잘 보면 비누 방울이 흩날린다


그럴 때면 가장 좋은 방법은 글을 쓰고 읽는 일이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글을 쓰고 싶었다. 나에게 온전한 시간을 쏟고 싶었다. 숙소에서 노트북을 들고 나와 근처 마음에 드는 동네로 향했다. 그곳에서 지금 글을 쓴다. 정말 거짓말처럼 카페에 앉아 있는 데, 밖에서 계속 누가 비눗방울을 분다. 너무 한 거 아니야. 이렇게 아름다우면 어떡해. 지금 기분이 너무 가라앉았는데, 비누 방울로 순식간에 녹아버리면, 어떡해. 여행 때 나는 너무 쉽게 도취되고 쉽게 무너져 내린다. 


너를 본다는 기쁨과 보지 못하는 슬픔 속에서


감정의 여지를 마련해 두는 일


세상에는 너무 많은 아름다움과 기쁨이 잊지만, 우리는 대부분 잊고 지낸다. 바빠 죽겠는데, 언제 창 밖을 쳐다보면서 여유를 즐기겠어. 하지만, 때로는 이런 작은 놀라움이 당신을 찾아온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오늘 이 방울로 모든 게 녹아내렸다. 힘들었던 기억들과 그리움, 30분이 넘게 돌아다니는 방울을 보면서 (심지어 지금도), 너무 큰 기쁨과 슬픔을 느낀다. 곧 너를 본다는 기쁨 그리고 지금 너와 함께 보내지 못하는 슬픔. 그 속에서 방울을 영상으로 담아 너에게 보낸다. 슬픔에서 조금이라도 기쁨으로 기울어지기 위한 나의 작은 노력. 그렇게 우리는 여전히 슬픔 속에서도 기쁨을 느낄 수 있다. 그런 여지를 감정 곳곳에 마련해 두자. 

매거진의 이전글 험난한 포틀랜드 힙스터가 되기 위한 여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