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귤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는 루시드폴의 앨범인 '모든 삶은 작고 크다'를 좋아한다. 꽤나 좋은 가사를 적는 아티스트여서 앨범 제목도 귀에 착 달라붙는다. 그리고 이제 그 말을 이렇게 바꾸고 싶다. 모든 삶은 작고 소중하다. 여행 와서 느낀 점은 결코 원더랜드란 없다는 것이다. 5년인지 6년인지 가물가물할 정도로 오래된 친구를 만나러 왔다. 멀리서 들었을 때의 그의 삶은 꽤나 멋져 보였다. (나의 삶도 그렇게 보였겠지). 그의 친구들과 가족들을 만나면서 느낀 건 모든 삶이 다 소중하다는 거였다.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란 말은 아니다. 그저 모든 삶이 정말 소중하다는 걸 느낀다.
한창 일하고 있는 친구는 커리어를 고민한다. 렌트를 아끼기 위해 불편한 곳에서 생활한다. 그래도 자기가 좋아하는 운동 레슨을 듣는 건 포기하지 않는다. 마트에서 장을 봐 오고 점심 도시락을 싼다. 허투루 돈을 낭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년에 다시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한다. 가보고 싶던 나라와 도시들을 골라서 얘기한다. 무엇을 얻기 위해선 무엇을 아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아하는 일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우리는 스스로를 미니멀리스트라 부른다. 네가 좋아하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 이 모든 게 뚜렷하니, 더 욕심낼 필요도 더 아낄 필요도 없다.
누군가의 일상도 반복이 되다 보면 지루하기 짝이 없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을 해도 결국은 일상에서 해낼 수 있는 부분들은 조금조금씩이어서 그런지, 다시금 매너리즘에 빠지곤 한다. 이런 패턴이 반복되고 반복된다. 그렇게 많은 것들을 놓친다. 그래서 우리는 떠난다. 친구는 가끔 자신을 소개할 때, 직업 외에도 자신을 트레블러라고 소개한다. 자신이 여행가라니 얼마나 멋진 말인가. 여행을 좋아하는 것과 여행가라고 자신을 규정하는 건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자신의 정체성을 넓히는 단어에 속하니까.
여행에 관해서 좋아하는 몇 가지 문장들이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이다혜 작가가 말한 이 문장이다. 여행은 취향을 날카롭게 만드는 과정이라고. 여행에 가면 수많은 선택지가 있다. 그곳에서 무엇을 할 건지는 결국 본인의 취향의 결정에 달려 있다. 여행은 작은 삶의 축소판이다. 결국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지는 것처럼, 여행도 마찬가지다. 몇 시에 일어나고, 오전에는 무엇을 하고, 오후에는 어디에 갈지에 따라 많은 기억이 달라진다. 특히, 여행지에서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그 기억의 스펙트럼은 한 없이 넓어진다.
이번 여행은 안 떠났더라면 더 답답했을 여행이었다. 멀리 떨어져서 많은 관계 그리고 나의 문제가 보였다. 평소에 놓쳤던 것들이 얼마나 많았나. 간결하고 넘치지 않는 1인분의 삶을 살고 싶다. 언제나 나는 나의 삶은 주인공이 되고 싶었으나, 너무 많은 조연들을 신경 쓰느라 나를 돌보지 못했다. 삶에서 받아들이고 포기하고 그렇게 지내다 보면 이쯤이 되는가 싶다. 어렸을 때는 몰랐던 수많은 것들.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들을 받아들이게 되고, 포기하지 못했던 것들을 포기하게 된다. 조금 더 현실적이게 되었지만, 여전히 나에겐 낭만이 남아있다. 그것은 평생 놓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