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본 옥외 광고가 걸리는 순간까지
월요일 아침은 유달리 새로운 시작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1년차 때 처음 받은 리프레시 휴가를 마치고 일주일 만에 돌아온 월요일 아침도 그랬다. 그 예감은 생각보다 혹독한 것이었다.
당시 나의 사수였던 부장님이 출산휴가를 들어가기 전 마지막 근무일은 하필 나의 휴가 기간과 겹쳐 있었다. 하지만 베테랑인 부장님의 주요 업무가 이제 신입사원 티를 벗을까 말까 한 나에게 떨어지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무것도 모른 채 베트남의 따뜻한 열기를 즐기고 있을 때 팀의 업무 분장은 새롭게 이루어졌고, 옥외에서는 꽤나 크고 주요한 백화점 광고주를 내가 맡게 되었다.
흔히들 종대사* 미디어 부서는 스트레스와 업무 강도가 덜하다고들 한다. 으레 ‘갑’이라 칭하는 광고주와의 커뮤니케이션을 감당해야 하는 AE**에 비해, 매체 바잉팀은 매체사 영업사원과 협상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을'의 입장에서 일하게 될 일이 덜하다. 하지만 흔치 않게 매체 담당자가 광고주와 직접 커뮤니케이션할 일들이 생기고, 내가 맡게 된 백화점 광고주가 그러한 특이 케이스 중 하나였다.
학생 시절 문득 지나치며 눈길을 끌었던 지하철 역사 광고며 버스 정류장 광고 같은 것이 이렇게 많은 사람의 손을 거쳐 붙게 될 것이라곤 생각해본 적이 없다. 옥외는 장소마다 지면 사이즈와 소재들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실제 사이즈로 최종 출력하기 전 색감을 보기 위한 교정지 확인 절차부터 출력물 배송과 시공까지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는 과정이 꽤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문제는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만큼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백화점 세일 기간이 확정되면 서울 시내부터 수도권까지 뻗어 있는 지점 인근에 연간으로 바잉 해둔 매체별로 세일 문안이 대문짝만하게 적힌 소재가 걸려야 한다. 사실 걸리는 시점은 일찍 알려질수록 좋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다. 다만 종료될 때가 문제다. 세일은 보통 일요일에 종료되었고 융통성이 있을 연차가 아니었던 광고주는 월요일 새벽까지 소재가 교체되어야 한다는 요청을 해왔다. 월요일 아침 출근길 이미 끝나버린 세일 광고가 보여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매체사 영업사원부터 시공팀까지 수많은 당부 전화를 매일 돌려야만 했다. 어쩔 수 없이 그 요구사항을 전달할 때마다 나는 주말 밤까지 어두운 차고지에 앉아 광고물이 붙은 전동차를 기다리거나, 동이 트지 않은 버스 정류장에서 작업을 하고 있을 인부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서울 전역의 시공 스케줄이 짜 맞추어져 있는 곳에 무조건 우리 시공부터 진행해달라 독촉 내지는 당부의 전화를 해대는 것은, 목소리만 들어도 어린 티가 났던 사원에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광고주의 요구도 이유는 충분했다. 화려한 본사 입성을 꿈꾸었던 초반과 달리 본인보다 몇 직급은 높은 영업점으로부터의 압박은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고, '세일 광고를 분명 오늘 보고 왔는데 왜 할인이 적용되지 않냐'는 고객들의 클레임도 분명 존재하는 일이었다.
대행사 매체 담당자는 항상 양가적인 감정 사이에서 싸워야 한다. 광고주의 과제와 매체사의 어려움 사이에서 양쪽 입장을 모두 이해하고 조율해야 하는 업무 특성상, 감정 이입을 쉽게 하는 나와 같은 성격이 버티기는 쉽지 않았다. 옥외에서 디지털로 처음 업무가 변경되었을 때는 작업 방식이 시스템화 되면 일이 훨씬 수월해질 것이라 기대했었다. 간과한 것은 광고주의 요구 정도도 함께 높아진다는 점이었고, 컴퓨터만 있다면 24시간 조작 가능한 시스템에 사람도 함께 맞추어 가게 된다. 오늘도 사람이 계획하고, 사람이 보는 일을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싸우고 있을 것이다. 비단 월요일 아침만이 아니라도.
*종대사: 종합광고대행사
**AE: Account Executive. 광고 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