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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빛 May 18. 2021

도덕성의 40프로는 버리세요

그래야 굶어 죽지 않습니다

신점을 보았다. 이미 ‘버릴 것 없는 사주라더라’는 엄마의 말을 평생 듣고 자란 뒤였지만, 부모 된 사람에게는 이제 갓 태어난 아기의 운명 중 좋은 부분만 편집해서 전달했을 것이란 의심이 가시지 않았다. 게다가 흠잡을 데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기엔 나 딴에는 스물아홉 해를 버티기까지가 꽤나 힘들었다.


대학 친구 중에서도 셋이서 모여 술을 마셨다 하면 눈물로 끝나는 조합이 있다. 결국엔 모두 버젓이 그럴듯한 직장에 다니고 있음에도 미량의 고난에 배로 고통받는 예민한 성격들을 가졌다고 해야 할까. 2011년 밝은 미래를 기다리며 캠퍼스에 입성했던 셋은, 2020년 갓 대리 직급을 달고도 인생은 고난의 연속임에 입을 모아 공감을 표했다. 그러곤 이내 답이 안 나오는 미래를 점치기 위해 출장 신점을 예약했다.  


장소가 마땅치 않은 관계로 신이 행차하기에는 다소 맞지 않아 보이는 스터디룸을 예약했다. 재판을 선고받기 전의 마음으로 앉아 있던 셋 사이로 우리의 고민 해결사는 형형색색의 부채 대신 자개장 빛깔의 양복을 걸치고 등장했다. 복장만으로도 면학 분위기에 방해가 되어 공간에서 내쫓길까 내심 걱정했던 나의 우려는 한 차례 꺾였다. 방역 철칙에도 엄격했던 해결사는 우리에게 마스크 착용을 권고하고 태어난 연도와 이름 석자만을 물어왔다. 최소한의 정보 제공으로 얻은 나의 결과는 제법 뜻밖이었다.


"법과 체제를 옹호하는 보수 성향이에요. 이런 사람 때문에 사회가 안 바뀌어."

'가장 재미있게 들은 수업이 시민사회와 사회운동이었던 제가요?' 싶었지만 사실 나는 변화를 두려워하는 편이다. 어려서부터 선생님 말씀을 거역해본 적도 내 기억상으로는 한 번을 빼놓고는 없다. 반기를 들었던 경험조차도 기존에 학교에서 고지했던 절차가 말없이 변경되어 결과적으로 불이익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도덕성 때문에 삶이 힘들어요. 도덕성의 40프로는 버려야 굶어 죽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아, 이것은 사실 무릎을 탁 칠 수밖에 없는 포인트였다. 나의 기준에 맞지 않는 행동은 꼿꼿하게 용납할 줄 모르는 성격이다. 하지만 먹고살자고 들다 보니 옳지 못하다고 느끼는 상황에서도 반기를 들 수 없는 입장에 직면한 적이 있었다. 앞에 나설 수 없는 힘없는 위치에 있다는 핑계로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대응에만 나섰지만, 마음속으로 후유증은 제법 컸나 보다. 그 잘난 도덕성을 버리지 못해 생전 처음 여드름을 달고 몇 달을 살았다. 생전 처음 가보는 피부과에서 세 번의 시술을 거쳐서야 그 자국을 지울 수 있었다.


"그럼 저는 조직 생활에는 맞지 않는 성격인가요?"

"아니, 조직 생활은 잘해요. 본인이 힘들어서 그렇지."

참고 참는 것이 미덕이라 여기며 살아온 탓일까. 나에 관한 많은 해석을 들었음에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이 말들이었다. 고집을 꺾어야 어엿한 사회인으로 살아갈 수 있지만, 결국엔 그만큼의 고통도 같이 겪어야 한다는 것. 비단 나에게만 적용되는 운명은 아닐 것이란 의심은 또 맴돌지만, 한 가지는 명료해졌다. 잔가지를 굽히더라도 뿌리는 흔들리지 말아야겠다는 다짐 정도라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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