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라도 괜찮아.
인턴이라는 단어는 꽤나 쓰리다. 사회 생활 연습이라던가 정규직으로의 발판 같은 것으로 추측했던 인턴 생활은 나의 경험상으로는 지옥불과 같은 시간이었다. 이전까지 인턴이라는 개념은 특정 직장과 내가 서로 윈윈할 수 있는 관계일지 진단할 수 있는 연습장 같은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겪어온 인생에서 무언가를 연습할 기회는 사실상 없었다. 매 학기 치러지는 시험 성적은 그대로 생활기록부에 쌓여 왔고, 이제 막 입학사정관제도라는 것이 도입된 해에 대입을 치른 ‘수능 세대’에게 자신의 장래를 위한 선택지 중 시험 공부 외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회사 또한 마찬가지였다. 회사의 존폐 여부조차 불투명한 곳에선 더했다. 사전적인 정의의 인턴 제도를 실행하기엔 역부족이었고 그저 최저시급으로 회사에는 과분한 젊은 인력을 마음껏 활용할 수 있는 기회로 남용되었을 뿐이다.
현실에서의 충돌을 야기하는 데는 항상 이상적인 동화 속 세상만을 그려주는 영화들이 한 몫 한다. 영화 <인턴>에서 평생 몸 담은 직장 생활을 마무리하고 나이 70에 온라인 쇼핑몰 회사에서 인턴 생활을 시작한 ‘벤(로버트 드 니로)’은 신분만 인턴일 뿐, 직원들과 CEO인 ‘줄스(앤 헤서웨이)’에게까지 교훈을 주는 인물이다. ‘아니 저렇게까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모두가 그를 동료로 인정하고 존경하며 가르침을 받아들인다. 철저하게 2016년도 기준 최저 시급 기준을 지킨 세전 130만원의 월급을 받으며 ‘그 정도 고스펙에 아직 대기업에 못 들어간 걸 보면 결점이 있는 게 분명하다’는 취급을 받던 나와는 다르게 말이다.
반드시 ‘벤’처럼 나이가 많고 인생 경험이 많은 인턴에게서만 배울 점이 있는 것일까. 오히려 사회 경험에서만 보면 직원들보다 우위에 있는 ‘벤’조차 새로운 조직 문화를 배우고 수용하려는 태도를 가지고 겸허하게 다가갔고, 직원들 또한 동등한 구성원으로 그를 대했기에 서로 성장하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현실에선 수평적인 조직 문화를 지향한다고 홍보하는 젊은 회사에서조차 눈에 보이지 않는 위계 질서와 사회 초년생에 대한 무시는 팽배해 있다. 서비스 타겟에 가까운 내가 줄 수 있는 인사이트와 그를 활용할 수 있는 회사 구성원 간의 시너지를 기대했지만, 사회 생활을 배우기 위해 온 인턴에게 날아온 것은 공짜로 배워가려고만 하지 말라는 냉대였다. 내 자리 이후에 일하게 된 후임 인턴은 ‘월급 100만원을 받는다면 최소 그만큼의 효율은 내야 하지 않겠냐’는 발언마저 감수해야 했다. 구성원의 수가 적을수록 한 사람이 해내야 하는 몫은 그만큼 엄청난 무게로 다가왔고, 일개 인턴조차 자신의 최저 시급 값만큼은 꼬박 꼬박 해내야 하는 팍팍한 조직 문화가 그 자리를 대체했다.
꼰대가 되어간다는 것은 내가 겪었던 불합리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다는 것의 다른 표현일 것 같다. 인턴 생활을 했던 회사는 수평적인 문화를 외치는 스타트업이었으나, 대부분의 시니어급 구성원은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기업 출신들이었고 그 DNA를 완전히 없애기는 어려웠다. 오전 10시 전까지는 자소서를 쓰다 출근하고, 퇴근 이후 면접 준비를 해야 했던 나의 형편을 그들은 이해해줄 여유가 없었다. 나에게 안정된 고용이나 생활하기에 충분한 월급을 제공하지 않는 회사의 성장에 몸바칠 여력이 없었던 나 또한 그들의 바람대로 새벽까지 야근을 할 수는 없었다. 수익 모델이 없는 회사의 형편을 개선해야 하는 사측의 절박함과 하루 빨리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는 데 주력해야 했던 나의 절박함은 서로에게 칼을 꽂기에 충분했다.
이제는 내가 그토록 비난을 쏟아냈던 대기업형 DNA를 탑재한 인간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나의 시선에서 보았을 때 일정 수준 이상의 업무를 하지 않으며 보상을 받는 사람들을 보면 불합리하다는 생각을 함부로 하게 된다. 아마도 인턴 생활 중 내가 겪었던 기분 나쁜 충고도 그의 이전 직장에서 편하게 돈을 버는(그 액수는 그들에게 고려사항은 아니었겠지만) 사람들에게 쌓였던 불만에서 나온 것이었을지 모른다. 당시에는 자신이 속한 조직에서 실패해 나온 낙오자들로 그들을 취급하며 내가 겪은 불합리를 합리화했지만, 이젠 그들이 안정적인 미래를 포기하게 만들 만큼 참담했을지 모르는 상황들을 이해해보려 노력하게 된다. 물론 정규직 면접을 위해 반차를 낸 전날 퇴근하려는 나에게 자신의 업무를 미루는 직원을 상대로 일정 조정을 요청했다 ‘집에서 애 키울 거면 상관 없지만 앞으로 계속 일하려면 이런 태도는 고치라’는 충고를 들은 사건은 용서할 수 없지만.
약효가 있는 약이 꼭 입에 써야 할 필요는 없다. 아직 성장하지 못한 아이들에게 입에 단 약을 처방해주는 것처럼 꼭 사회 초년생을 위한 배움의 맛이 써야만 할 필요는 없다. 시간이 흘러 이해의 폭이 넓어져도 아직 이해하지 못할 순간에 대한 기억들이 더 많고 그들과는 다른 결의 사람으로 남기 위해 경계를 늦추지 않으려 한다. 공짜로 배워 가려는 태도도 없어야 하지만 공짜로 써먹으려는 태도도 없어야 한다.
배움이 남지 않는 경험은 없다. 아무 것도 모르는 학생 신분에서 바로 입사했다면 몇 배의 충격으로 다가왔을 현 직장에서의 경험들도 이전에 구비해둔 완충제 덕분에 무사히 넘겨가고 있다. 그 맛이 달았다면 더할 나위 없었겠지만, 쓴 맛이 한 움큼이었던 네 달여 간의 인턴 생활조차 내 가치관을 변화시키는 데 도움을 준 것만큼은 분명하다. 좋아하는 일이라면 월 100만원을 받아도 살 수 있다던 사람이 이렇게 외칠만큼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돈을 안겨줄 자원봉사자는 없다.
자아 실현은
회사 출입문을 나오는 순간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