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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se Apr 26. 2020

나의 품사

규정되지 않는 존재의 역동성

 류시화 시인의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에서 '나'에게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점을 이해하게 되면 허무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존재의 역동성에 눈뜨게 된다고 한다. 

 나는 계속 변화했던 직무들(디자이너, 기획자, PM)의 다양한 명사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힘들어했다. 다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닌, 어느 하나에 스페셜하지 못하다며 스스로를 타박하기 일수였다. 류시화 시인의 글을 읽고 나니 특성도 직업도 고정된 하나로 묶여있을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그리고 나는 직업으로 정의되는 명사가 아닌 호기심이 많고,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동사 그 자체인데 말이다.


# 발명가와 미술가, 그 사이

 어릴 적 일기장을 보면 끊임없이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던 흔적들로 가득하다.

내가 하고 싶은 건 '발명가'였다. 하지만 잘하는 건 '미술, 공예'였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 새로운 아이디어로 문제를 해결하는 걸 좋아했다. 중학생 때 '발명가'라는 꿈을 위해선 고등학교에서 이과를 선택해야 하고, '미술'을 하려면 예체능을 선택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때부터 '발명가와 미술가' 둘 중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고민이 시작되었다. 그런 고민의 시기에 잡지책을 보러 간 도서관(그림책 보러 도서관에 자주 갔다.)에서 우연히 책 하나를 보게 되었다. <12억짜리 냅킨 한 장>이라는 제목을 가진 책이었는데, '냅킨이 황금인가? 냅킨 발명을 어떻게 했길래 12억이야'라며 단순한 호기심에 펼쳐보게 되었다. 이 책은 산업디자이너 김영세 님의 자서전이었다. 방금 잡지책에서 보며 재미있는 아이디어라 생각했던 '가재모양 가스레인지', '아이리버 MP3' 제품을 디자인한 사람이었고 그의 디자인 과정을 볼수록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생활 속 불편함을 제품 디자인으로 해결했던 사례들을 보며, 문제를 해결하는 발명과 창의적인 예술이 함께하는 것이 산업디자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게 바로 이건대! 내가 잘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거야." 이때부터 내 꿈은 산업디자이너가 되었다. 


# 에너지 넘쳤던 산업디자인 전공자 

 산업디자인과를 입학하고 대학교 생활은 너무 재밌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들만 할 수 있었으니까-

나는 제품 디자인 과정 중 미적 형태에 대한 섬세함과 디테일보다는, 문제점을 형태적 아이디어로 해결하고 디자인 선 하나도 꼭 필요한 디자인으로 뽑아내는 장점이 있었다. 그래서 서울시의 도시디자인 제안을 하는 서포터즈 활동도 했었고, HCI학회 캡스톤 대회, 대만 국제 발명대회 등 디자인상을 받는 동기들과 다르게 발명상을 받곤 했다. 학교에는 '디자인 공학'이라는 융합전공과정이 있었다. 융합전공을 통해 인간공학 수업을 들으며 나만의 디자인 색깔을 기르기 위해 노력했다. 수액걸이, 의자, 변기 등의 디자인을 하면서 인체에 대한 연구를 통해 왜 이런 형태가 나오게 됐는지 설명하는 과정이 즐거웠고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논리적인 디자인을 좋아했는데, 그 분야가 UX(User Experience) 디자인이 걸 알게 되었다. 제품 디자인 기획의 아이디어를 내고 연구하는 일을 생각하며 UX 디자인으로 진로를 정하게 되었다. 


# 모르면 일단 가보자

 UX 디자인에 대해 잘 알지 못했고 관련 포트폴리오도 없었다. 대학원을 고민하였지만 실무에서 배우자는 생각으로 바로 UX 디자인 에이전시에 입사하였다. 그 에이전시는 대기업의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주받고 있었다. 스마트폰 홈런처 UX, 앱 서비스 UX설계 등 대기업의 다양한 프로젝트들을 경험해 볼 수 있었던 건 에이전시의 장점이었다. 특히 자동차 계기판 UX 프로젝트 맡게 되면서 안전이 1순위로 고려되는 논리적인 UX 디자인의 매력에 빠져 모빌리티 분야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매일 새벽까지 야근하기 일쑤였고, 모빌리티 분야로 깊게 성장하는데 한계가 느껴졌다. 

 곧 자동차 부품 회사의 자동차 계기판 UX 디자이너로 이직하게 되었다. 회사는 3D 디자인까지 할 줄 아는 사람을 찾고 있었고, 나는 자동차 UX 디자인에 대해 익숙한 산업디자인 전공자였기에 적합했다. 새로운 회사에서는 자동차 기능 사양서를 보고 Menu tree부터 UX 디자인, GUI기획을 하는 업무를 맡았다. 내가 주체적으로 제품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보람을 느꼈다. 하지만 국제적 이슈가 터지면서 입사한 지 2달째부터 월급이 밀리기 시작했다. 일이 너무 재밌었고 동료들이 좋았기에 마이너스 통장에서 생활비를 쓰면서까지 회사를 다닌 지 1년 6개월... 더 이상 빚을 지면서 회사를 다닐 수 없는 노릇이었다. 사수가 먼저 이직을 하면서 나도 그 사수의 추천으로 자동차 IT분야의 기획자로 이직하게 되었다. 자동차 업계에 종사하면서 자동차의 속도나 RPM의 기본 정보보다 내비게이션이나 멀티미디어 기능이 확장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게다가 UX 디자인을 하면서 서비스 기획에 대한 아이디어가 나오곤 하였고, 기획과 디자인을 함께 한다면 시너지가 크겠다는 생각이 들곤 하였다. 직무 전환에 대한 고민 끝에 일단 경험해보고 판단하자라는 생각에 기획자의 길을 선택하게 되었다.


# 기획팀에서 네가 할 수 있는 건 뭐니?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의 SW개발부 소속 기획팀에 입사하게 되면서 매일 실수와 혼란 속에서 업무의 모든 걸 다시 배웠다. 어느 정도 내가 어떤 일을 마무리했고, 어떤 걸 하고 있는지, 어떤 걸 준비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을 때쯤 조직이 개편되었다. SW 개발부서의 기획팀에서 사업부의 B2B 상품기획팀으로 조직 개편되면서 기획의 성격 또한 바뀌게 되었다. 상품기획은 하드웨어, 원가, 시장의 흐름 등에 맞게 새로운 상품에 대한 기획안을 만들어야 했고 나는 또다시 배워야 했다.

 이때부터 내 정체성에 혼란이 오기 시작했다. 조직개편이 되면서 내가 하고 싶었던 서비스 기획은 우리 부서의 영역이 아니었고, 내 역할에 대해 감이 오질 않았다. 제안서/사업계획서 PPT디자인, 개발부서에서 오는 문서 정리 등... 기획 프로젝트를 담당하기보단 업무 지원의 일들이 늘어만 갔다. 내가 있는 부서는 기획 및 PM(프로젝트 매니저) 부서였다.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을 무엇일까. 내가 있어도 되는 부서인 걸까. 부장님, 팀장님, 차장님 등 팀원 모두 내가 매일 방황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다들 조언도 많이 해주시고 격려도 해주시면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셨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뭐였더라... 내가 잘하는 건 뭐였더라...' 그때부터 매 순간 나에게 그 질문을 던졌다. 다양한 직무를 경험하며 지금의 혼란 상태에 다다르다 보니, 나는 제대로 할 줄 아는 것 하나 없는 망한 인생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이렇게 지난날들을 글로 정리해보니 '나 참 하고 싶은 건 다 하며 살았구나-'싶다. 참 다행이다. 

그동안 원하는 것들만 하며 살아왔고, 모든 것은 내 자발적인 선택이었음에 안도감을 느꼈다. '이렇게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바로 해봤구나. 다양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구나-' 새롭게 경험해 본 그 길이 생각과 좀 다르다고 망한 인생이라 결론짓고 자책하며 힘들어했던 내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삶에는 걸어가는 과정만 있을 뿐인데. 지금의 방황도 안 그럴 수 있는 것을 굳이 나 스스로 선택한 방황임을 깨닫게 되었다. 


 <인생수업>의 저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말한다. 

 "인생의 시작에 있든 끝에 있든, 절정기에 있든 절망의 나락에 있든, 우리는 언제나 모든 상황을 초월한 존재이다. 당신은 당신이 앓고 있는 병이나 직업이 아니라 당신 자신일 뿐이다. 삶이란 무엇을 하는가가 아닌, 존재에 관한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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