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쉽게도 소재는 찾는 것이 아니다. 사실 찾는다고 찾아지지도 않는다. 에세이에서 소재는 나고 내가 곧 소재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렵다. 지금의 나는 정말이지 밋밋하기에.
내가 구독하는 어떤 작가님은 소방관으로 계시면서 글을 쓰시고 또 다른 분은 부기장으로 근무하면서 생긴 에피소드를 올린다. 가장 부러운 작가님은 연세가 좀 지긋하신 분들이다. 삶의 모든 궤적을 소재로 꿰어 글로 풀어내실 수 있으니까. 그런 분들의 글들을 보고 있노라면 넘을 수 없는 '소재의 장벽'이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이 가진 것 없는 비루한 자는,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두 가지 방법으로 소재를 찾고 있다. 먼저 첫 번째는 '대중성 한 스푼'이다.
더 글로리를 예로 들고 싶다. 학교 폭력 경험담이나 심리 분석류의 에세이는 많이 봐왔다. 더 글로리는 지금 핫하고. 나는 버릴 수 없을 뿐이고. 그렇다면, 내 이야기에 더 글로리를 딱 한 스푼만 톡 넣으면 된다.
이를 테면 이런 식이다. 나는 더 글로리를 보기 위해 넷플릭스에 가입했다. 더 글로리가 끝났다. 내 넷플릭스는 방치되고 있다. 처음 구독할 땐 뽕을 뽑겠다는 각오로 시작했는데. 생각해 보니 넷플릭스는 독서실과도 비슷한 놈이었다. 구독료가 아니라 작심이 필요한 거다. 고딩 때보다 작심이 더 절실한 요즘. 내 의지로 발동되어야 할 앱이 너무나도 많다. 몇몇 앱은 썩어 문드러지고 난리가 났다.
대중적인 소재와 결합한 에세이는 경쾌해진다. 혼자만의 소재로 풀기에 무겁거나 버거운 이야기도 조금은 읽기 쉽게 바뀔 수 있다. 공감을 얻기에도 좋다.
내가 아는 한 작가님은 시의적절한 뉴스 소재를 기가 막히게 활용한다. 이 뉴스가 어떻게 이런 이야기로 흘러들어 가지? 찬찬히 짚어보면 개연성이 촘촘하게 나있다. 허투루 버릴 문장이 하나도 없다.
대중적인 소재를 쓰면서 위험해지는 것은 글이 억지스러워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끼워 맞추기, 짜 맞추기식으로 풀 바에야 대중적인 소재를 지워버리고 내 이야기만 담담하게 풀어내는 게 더 낫다.
그리고 다시 한번 말하자면, 담담하게 적는 그 글, 그 소재는 좋은 소재다. 나도 그렇게 쓰고 싶지만 아직은 좀 빈약할 뿐.
그런 의미에서 소재를 찾는 두 번째 방법은 다음 편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없는 놈이 살아남는 법은 노상 이런 식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