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생일은 11월 26일. 트리를 꺼내기 딱 좋은 날짜다. 크리스마스를 한 달 앞둔 그의 생일에 나는 매년 이벤트를 연다. 몇 해 전에는 현수막을 걸었었고 알전구를 사서 거실책장을 덮기도 했다. 풍선 불기는 기본이고, 마분지에 글자를 잘라 벽에 붙이기도 했다.
시크하고 도도한 남편은 매년 피식 웃고 끝났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고(신경 쓰지도 않고) 꿋꿋하게 강행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할 예정이고.
사실 내가 이렇게 하는 데는 2009년, 그해 가을과 겨울 사이에 일어났던 일들 때문이다.
택배가 도착했으니 옥상으로 올라오세요.
0000? 이 밤에? 이상한 번호로 온 이상한 문자였다.
나는 침대에 누워 뒹굴거리다 대충 옷만 걸치고 현관문을 열었다.
근데 뭐지 좀 이상하다.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어른 어른하다.
우리 집은 3층인데 4층을 지나 옥상으로 가는 길에 촛불길이 깔려있다.
옥상 문을 열고 나가니 옥상 바닥에도 하트모양으로 촛불이 깔려있다?
하트 촛불 안에 들어서니 보이는 포스트잇 한 장.
뒤를 보세요.
???
그였다.
그가 꽃을 들고 웃고 있었다.
2009년 가을, 9월의 밤, 나는 스물다섯, 그는 스물셋이었다.
핸드폰에서 인터넷도 안 되던 시절이었다. SNS는커녕 아이폰도 등장하기 전이다. 대구에 사는 그가 부산의 우리 집 주소를 알아낸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어떻게 알고 왔냐는 놀라운 마음보다 기쁜 마음이 더 컸다. 어쩌면 내가 바라왔던 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옥상에서 그의 프러포즈를 받아들였고 우리는 그렇게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시작할 수 없게 됐다.
그를 기차역까지 데려다주면서 갑자기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현실의 모든 것들이 망치가 되어 머리를 두드리는 것만 같았다. 장거리 연애, 연상연하, 사귀다가 깨지면 나가지 못하게 될 모임, 백수인 내 신세...
결국 나는 대구로 돌아가는 그의 얼굴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줬다. 도저히 안 되겠어... 미안해... 아까 사귀자는 말은 없던 걸로 하자...
기차 유리창 너머로 비치던 그의 얼굴에 쓴웃음이 가득했다. 몰랐다. 그 얼굴이 이토록 오래 기억에 남을지.
그때 우리는 썸 타는 관계였는데, 그는 정말로 모든 연락을 뚝. 끊어버렸다. 매일매일 연락하던 그와의 모든 시간이 사라졌고. 나는 처음에 좀 의아해하다 나중에는 비로소 알게 됐다. 내가 이 사람을 많이 좋아하고 있었구나. 보고 싶다. 근데 어쩌지. 나 정말 최악이구나.
그때 그의 생일이 떠올랐다. 생일 축하는 핑계고 나는 고백을 할 작정이었다. 무작정 대구로 가는 기차에 올라타서 그에게 연락을 했다. 나와달라는 꽤 거친 부탁을 던졌고 그는 다행히 나와줬다.
그는 촛불과 꽃, 아름다운 얼굴로 이벤트를 해줬지만 나는 그러하질 못했다. 그저 일그러지고 초조한 얼굴로 다시 만나줄 수 없냐 물었을 뿐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착한 내 남편은 지랄맞고 변덕 심한 나를 따뜻하게 받아주었고 우리는 그렇게 시작했다.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의 생일에 매년 이벤트를 연다. 2009년 가을밤, 그날의 나만큼 그도 기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면서. 혹은 기쁘지 않더라도 조금이나마 미소 지을 수 있길 바라며. 내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듬뿍 담는다.
올해도 슬슬 그의 생일이 다가오고 있다. 이번에는 또 뭘 하지. 일주일 전부터 고민하고 있는 아이템이 있긴 한데 극인티제 남편이 치를 떨 것 같긴 하다. 올해 생일도 내가 책임질게. 늘 고마워 여보!
얼마 전 내 생일을 맞아 다시 맞춘 커플링. 두드릴 수록 단단해진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 특별한 반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