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마트

by 김우주

우리 아파트 맞은편엔 오래된 마트가 하나 있다. 간판이 낡고 빛바래서 이사 온 지 3년이 됐지만 한 번도 가본 적은 없다. 길을 건너지 않아도 편의점이 2개나 있고 꽤 큰 대기업 브랜드의 마트도 있다. 에어컨이 365일 가동되고 눈이 찡그려질 만큼 쨍한 형광등을 쓰는 곳. 나는 그 브랜드 마트의 앱을 깔았고, 포인트로 5만 점이나 쌓았다.


그 낡은 마트를 처음 다녀온 건 우리 첫째 아이였다. 아이는 마트의 이름을 '할인마트'라고 불렀다. 내가 재차 이름을 물었지만 계속 '할인마트'라고 했다. 설마 했는데, 정말 가서 보니 마트의 이름은 '할인마트'였다. 사실 그마저도 희미해서 잘 보이진 않지만.


올해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첫째는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꼭 할인마트에 들른다. 아이스크림, 뿌셔뿌셔, 초콜릿과자, 한 번 쓰고 버려질 장난감, 젤리까지 다양하게 산다. 얼마 전까지 첫째가 가장 좋아했던 건 크보빵(지금은 단종)이었다. 한창 야구에 빠진 아이는 크보빵 안에 들어있는 야구선수 스티커를 모았다. 첫째의 텀블러 겉면에는 LG와 두산, 키움의 선수들로 꽉 찼다. (심지어 바이올린에도 붙여서 기함했다.)


아이가 그 마트를 왜 그렇게 좋아할까 싶어 본의 아니게 할인마트를 좀 관찰하게 됐다. 답은 너무나 쉽고 빠르게 또 명료하게 나왔다. 그곳은 마트가 아니었다. 일종의 초딩들의 만남의 장소이자 집합소, 휴식처 같은 곳이었다. 근처에는 초등학교와 3~4개의 작은 학원이 있었다. 출출한 아이들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할인마트의 문을 열었다.


그렇지만 또 궁금증이 올라왔다. 초딩들이 좋아하는 건 오히려 편의점이 아니던가? 편의점 앞 테이블에서 까르보 불닭볶음면과 제로콜라를 들이켜던 말간 얼굴들이 떠올랐다. 아이들 앞에는 매우 높은 확률로 자전거와 가방이 내팽개쳐져 있다. 의자가 뻔히 있는데도 가방은 바닥에서 뒹군다.


그래서 나는 테이블 하나 없는 낡고 작은 할인마트를 조금 더 관찰해 봤다. 대기업의 아성을 뛰어넘는 장사의 기술이 어떤 것일까. 사장님은 어떻게 이 동네 초딩들을 다 잡고 계실까.


예상되는 답이라서 적기 싫었지만, 그렇다. 사장님 내외분과 아드님은 정말, 정말, 정말 너무나 정말, 리얼리, 쏘 머치, 친절하셨다. 아이스크림 하나를 고르고 또 내려놓고 다시 고르고 또 내려놓는 아이들. 문을 열고 또 닫고 열고 또 닫는 아이들. 지갑을 찾기 위해 자기 가방을 샅샅이 수색하는 아이들. 그 아이 뒤로 어지럽게 늘어서 있는 줄. 그걸 비집고 들어와서 먼저 계산해 달라는 아이들, 고사리 손으로 꺼낸 지갑에서 하나씩 하나씩 올려지는 동전들. 그리고 바닥으로 떨어지는 동전들...아...


그 모든 수 천 가지의 계산방법을 아무 말 없이, 아무 재촉 없이, 그저 묵묵하게 기다려주는 곳이 바로 할인마트였다.


삼성페이로 5초 만에 끝내버리는 나는 할인마트에서 새로운 유형의 계산 방법을 많이 목격했다. 현금결제, 카드결제 따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정당한 결제를 하기 위해 들이는 초딩들의 노력과 시간들을 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와, 나는 절대로 할인마트를 운영하지 못할 것 같다.' 이와 비슷한 생각으로는 '와, 나는 절대로 어린이집 선생님을 하지 못할 것 같다.' 등등이 있다.


그래서 나는 할인마트를 이제 단순한 마트가 아니라 육아의 동반자 혹은 동네의 큰 어른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어쩌면 이런 친절한 어른들의 기다림이 아이들을 크게 해주는 거라고도 생각했다. 스쿨버스가 멈춰 섰을 때, 내리는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잠깐 기다려주는 것처럼. 아이들이 지나가는 모든 궤적에는 어른들의 기다림이 필요하다.


하지만 모든 어른들이 다 그렇지는 않았다. 3월과 4월, 두 달 동안 아이와 함께 등하교를 하면서 나는 아이를 기다려주지 않는 많은 어른들을 마주했다. 책가방을 메고 횡단보도에 서있지만 멈춰주지 않는 차 들. 처음에는 화가 났지만,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면서 결국에는 이것이 당연한 환경처럼 생각하게 됐다. 5월이 돼서 아이를 등굣길에 혼자 내보내게 됐을 때, 나는 마음이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들었다. 아이를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어른들을 믿지 못해서였다. 그리고 아이에게도 어른들을 믿지 말아야 한다고 말해줘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할인마트의 사장님이 더 고마웠던 건지도 모르겠다. 불안한 마음이 많은 첫째가 조급한 마음 없이, 걱정 없이, 그저 단정한 마음 하나로 편하게 들를 수 있는 곳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마음만큼 우리 첫째는 할인마트의 VIP가 된 것 같다. 오늘도 VIP께서 말씀하신다. 왜 매번 아침에만 그러시는지 모르겠다. 등굣길 앞에서 내 마음이 약해지는걸 벌써 파악하셨나.


"엄마 용돈 좀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