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살이 되면서 나는, 마흔아홉에 죽는 상상을 했다.
이 상상을 하게 된 건 엄마 덕분이다. 엄마는 마흔아홉에 쓰러졌다. 그날 밤 응급실에서 의사는 엄마의 병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10명 중에 5명은 그 자리에서 죽고, 2명은 병원에 오다가 죽고, 2명은 수술을 하다가 죽고, 1명은 살아도 평생 후유증과 싸워야 한다고.
다행히 엄마는 이 친절하고도 잔인한 예시를 모두 벗어났다. 건강하게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 나는 엄마에게 운이 있다면, 10년 전 당첨된 김치냉장고가 아니라 그날이라고 생각했다. 아빠와 내가 있었던 그날에 부엌에서 쓰러진 것. 가운을 벗고 퇴근하려던 의사가 콜을 받고 다시 뛰어왔다던, 그날의 늦은 저녁이라고.
큰 수술을 끝내고 중환자실에 있던 엄마는 의식이 있다가 없기를 반복했다. 1시간만 주어진 면회시간이었다. 나는 무슨 말이든 듣고 싶었다. 엄마가 아무 말이라도 해야 그 의사가 말한 지독한 예시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였다.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 건. 엄마는 눈을 반쯤 뜬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가 시 썼던 숙제, 그거 교수님한테 메일로 보내줘. 숙제 꼭 해야 돼..."
나는 그때 엄마가 헤맸던 사경에서 엄마를 건져 올린 건 바로 엄마의 청춘이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늦깎이 학생이었다. 부산에서 최초로 개설한 중. 고등학교 만학도 성인반의 학생이었다. 그 학교는 여고였다. 엄마는 더 좋다고 했다. 여고생이 된 엄마의 반 친구는 60대, 70대 언니들. 그 언니들과 엄마는 교과과정을 모두 이수했다. 시험도 치고, 수학여행도 가고, 술도 마시고, 반장도 뽑고. 하여간 정식으로 할 거는 전부 다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더 열심히 공부하는 빡센 언니들이었다.
엄마의 성적은 우수했다. 엄마는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국문학도가 되고 싶다고 했다. 대학을 결정하기 전, 마침 집 근처 다른 대학의 시 특강이 열렸다. 일주일에 한 번 시를 써내면 교수님이 첨삭을 해줬고, 그걸 모아 시집을 내는 수업이다. 시집이라는 말을 듣고 반짝이던 엄마였다. 세 번째인가 네 번째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엄마는 출석을 하지 못했다. 엄마의 언니들은 다음날부터 중환자실로 우르르 몰려들어왔다. "제일 젊은 니가 이러면 우짜는데. 빨리 일어나라 가시나야. 뭐하는데." 엄마도, 나도, 언니들도 다들 같이 울었다.
엄마의 청춘을 모르지만, 내가 정의하는 엄마의 청춘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때였다. 중환자실에 누워 시를 이야기를 하는, 갓 졸업한 동창생들과 울고 웃는 그때였다. 동생들의 학비를 벌어야 했던, 길에서 만난 초등학교 동창생의 여고 교복을 부러워하던, 하여간 내가 잘 몰랐던 그 시절은 아닌 것 같다. 아니, 그러길 바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 덕분에 청춘이 꼭 시절일 필요가 없다고도 생각했다. 짧은 찰나의 순간이 청춘이 되기도 한다. 얼마 전 TV로 보았던 선발투수는 자기 인생 최고의 투구를 던졌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중간한 유망주라는 평을 듣는 투수였다. 역사의 대기록, 노히트 노런을 간 발의 차로 놓친 그는 의외로 싱그럽게 웃었다. 그 웃음이, 부인할 수 없는 완벽한 청춘의 순간이었다.
나의 40대에도 중간중간 어느 틈엔가 청춘이 껴있다. 육아와 집안일을 비집고 들어오는 청춘과 낭만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마흔아홉에 죽는다고 상상하니 고마움은 배가 된다. 글을 쓰면서도 청춘의 바람결을 느낀다. 타닥타닥 키보드 소리에 심장이 두근거린다. 이때만큼은 분명한 나다. 청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