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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엠 Sep 08. 2023

자매들

<쇼펜하우어 아포리즘>

한 부모 아래 자라면서 모자라고 결핍된 것들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 찼던 못난이 어린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내 입에 하나 더 들어갈 수 있었던 고기 한 점이 아쉬웠고, 꼭 한 봉지 사주고는 셋이서 나눠 먹으라고 했던 땅콩 카라멜이 아까웠다. 나누기 쉽지 않은 쌍쌍바를 정확하게 반 갈라 주었거늘, 자긴 다 씹어먹고는 아까워서 혀끝으로 살살 녹여먹는 내게 또 한 입 달라고 아우성이던 동생들.


고대로 자라서 중년이 된 세 자매가 지금은 주말에 짬이 나서 모이게 되면 나눔을 하느라 바쁘다. 칫솔 치실도 최저 할인가로 넉넉히 사서 나눠주고 인스타그램 이벤트에 참여해서 받은 코코아 가루도 세 봉지로 가른다. 제철 과일이나 채소도 아낌없이 나눈다. 인터넷에서 허리치수 잘 못 보고 샀다며 나더러 입으라고 가져온 바지도 받아 입다가 조만간 살 빠지고 날씬해지면 돌려주기로 한다. 그렇게 애틋한 마음을 물질로 교환하여 옛날의 미안함을 지금의 감사함으로 전달한다.


<쇼펜하우어 아포리즘>에서 우정에 관한 영역을 읽을 때 문득 친구들에게 겪은 최근 일들이 떠올랐다. 우리 남편에게 연락해 큰 돈을 거리낌 없이 빌려달라고는 내게 일언반구도 없던 친구와 이혼을 앞두고 부부사이의 송사를 내게 하소연하며 한풀이하던 친구. 그들과의 아주 오래된 우정이 내 눈동자보다 연약하다는

것을 알았고, 그들에게 우정이란 의무가 아닌 편의였다.


버거운 그들에게서 한 발짝 뒤로 물러서자 한걸음 다가와 위로해 준 이들은 다름 아닌 자매들이었다. 쇼펜하우어는 “가족이 가족을 위로하는 것은 혈연이라는 숙명과도 같은 관계 위에 정립된 의무”라고 말했다지만, 그가 살았던 시대에는 저런 의무를 수행하는 가족이 존재했었나 보다. 가족이라도 결코 당연하지 않은 것을. 그래서 나의 자매들에게 오늘 더 고맙고 애틋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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