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방 Jun 29. 2024

생각 셋. 결혼하니 좋아?

“이번에 주제 내고 싶은 사람?“

“내가 해도 돼? 결혼에 대해서 친구들 생각 듣고 싶어!”


이쯤되면 쉬운 주제가 나올거란 희망을 버려야겠다.





결혼, 꼭 해야하는 걸까?


20대에는 꿈도 열정도 많은 청년이라 결혼이 나를 가두는 감옥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우리 남매의 육아를 전담하느라 일을 그만두신 우리엄마, 아기가 생겨 직장을 그만둔 친구, 일과 육아를 열심히 병행했지만 매번 승진하지 못해 만년 대리가 된 직장동료, 남자보다 더 굳세게 일하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늘 주요 보직에 밀려나 속상해 하는 선배까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해 결혼을 해야하나라는 의문을 가지고 20대를 지나왔다.


어느 날 엄마가 물었다.

“딸, 정말 결혼은 서른살 넘어서 하려고 그래?”

“지금 결혼해도 나 내일 모레 서른이야.”

“그러네? 벌써 네 나이가 그렇게 되었구나.”


도통 나의 미래에 대해서는 어떠한 간섭도, 질문도 하지 않았던 엄마가 이런 말을 하니 새삼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우리 남매가 중학생이 될 무렵, 엄마는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가족의 권유로 떠밀리다시피 해왔던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한 엄마는 즐거워 보였다.



“엄마는 결혼하고 우리가 생기면서 10년이 넘도록 바깥 일을 하지 못했잖아. 속상하지 않았어?”

“그게 뭘 속상해. 너희가 자라는 동안은 엄마로 집중하는거고, 다 자라고 나서 엄마 일 시작했잖아.”

“경력이 단절되면서 원래 하던 일을 못하게 되었잖아.”

“오히려 더 좋았어. 하루종일 바깥 일에 매여있지 않아 필요한 시간에 일하고 가정에도 집중할 수 있고. 그리고 엄마는 사실 지금 하는 일이 더 즐겁고 행복해.”



엄마의 마음 속 이야기를 처음 듣게 된 날이었다. 늘 집안일은 엄마의 전담업무였고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가족과 자식의 일에 밀려 뒷전이 되어버린 엄마의 삶을 보며 불만이 많았다. 하지만 나만의 착각이었다. 내가 가진 결혼에 대한 부정적 개념을 엄마의 삶에 투영시켜서 바라보며 스스로 합리화 시키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언제나 너의 선택을 존중해


남편은 연애를 시작하던 순간부터 늘 결혼을 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내가 결혼을 내켜하지 않는 여자친구였기에 재촉하지 않고 늘 기다려주었다. 공부를 하겠다하면 흔쾌히 도서관에서 데이트를 했고, 결혼이 하고 싶지 않다하면 자신의 의견과 다르더라도 가만히 듣고 있어 주었다.


결혼을 한 기혼 여성에 대한 생각이 점차 변해갈 시기에 내 인생에 큰 변곡점이라 말할 수 있는 사건이 생겼다. 두 차례에 걸쳐 수술을 하게 된 것이다. ‘인생은 늘 나의 계획대로 되는 법이 없다’ 라는 큰 깨달음을 얻고 생각이 180도 전환된 계기였다. 그리고 그런 나의 옆에는 아무 말없이 날 보살펴주던 지금의 남편이 있었다.


“입맛이 없어. 병원밥은 맛이 없고. 코로나라 외부인 통제도 심해.”

“그래? 먹고싶은거 없어?”

“과일? 유부초밥?”

“응 알겠어. 조금만 기다려.”


유부초밥과 과일이 담긴 도시락을 싸들고 병원으로 찾아온 나의 남편. 늘 자상했던 남자친구였지만 그 날의 모습에 ‘나 이 남자와 결혼해도 되겠다’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편은 그렇게 변해가는 나를 가만히 지켜봐주며 선택을 존중해주었다.



결혼에 대한 오해, 그리고 확신


내게는 결혼을 하기 위한 전제조건 같은 것이 있었다.


‘결혼 전에 좀 더 나은 회사로 이직해야 한다.’

‘경력이 단절을 대비해 전문 자격을 취득해야한다.’

‘결혼하고 살 집이 없는데 집부터 마련해야한다.’

‘노후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결혼해야 한다.’


이 외에도 여러가지 이유를 붙이며 결혼을 차일피일 미뤄왔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되는 이유였던 것 같다. 준비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결혼을 미루기엔 결혼을 한 지금도 해결된 문제는 거의 없다.




(사진출처 MK스포츠뉴스)


남편은 가끔 이런 우스갯소리를 한다.


“바깥일 열심히 해 가장! 나는 너의 셔터맨이 될거야!”


우리집의 가장은 나라고. 자신은 열심히 가정을 돌볼테니 돈 많이 벌어오라고. 나는 셔터맨이 될거라고, 내 꿈은 너의 운전기사라고.


결혼을 하면 내가 하고싶은 일을 모두 포기해야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아마도 나는 남성과 여성에 대한 전통적인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고 이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 결혼을 거부해왔던 것 같다. 그리고 이런 내 고정관념을 깨준 것은 지금의 남편이었다.



결혼은 현실이야. 조건을 따질 수 밖에 없어.

결혼을 하기 전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삶은 현실이고 남은 생을 함께할 동반자를 찾는 일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좋은 직장에 다니고 돈을 많이 모아두었다는 것은 결혼하기 위한 충분조건일 수 있다. 그런데 이 조건이라는게 보통 있다가도 없어질 수 있는 것 아닌가? 정말 이게 필요한 조건일까?


때가 되었기 때문에 결혼을 해야하는 것도, 여러 조건이 부합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에게 있어 결혼은 남은 생을 ‘함께’ 그리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눈 앞에 보이는 조건만으로 상대를 고르고 미래를 예상하는 것은 너무 근시안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일을 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돈은 많다가도 없을 수도 있는 것인데 이런 조건때문에 결혼한다면 반드시 불행이 찾아 올 것만 같았다.



나의 단짝친구, 선배, 그리고 반려자


(사진출처 pinterest)

그는 나의 애인이었고, 내 인생의 멘토였고, 내가 가야할 길을 먼저 가는 선배였고, 우상이었고, 삶의 지표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이 욕조에 떨어지는 물보다 더 따듯했다.   - 노희경, <그들이 사는 세상>


남편은 나의 애인이었고, 내가 갈피를 못잡고 방황할 때마다 나를 지탱해주던 인생의 멘토였으며, 내가 가야할 길을 먼저 가는 회사 선배였다. 그리고 즐거울 때도 힘들 때도 나를 안아 줄 수 있는 커다란 품을 가진 따듯한 사람이었다.



추신. 이 글을 읽고 있을 친애하는 짝꿍에게

줄곧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해결하는 삶을 살아온 내가, 네게 많은 역할을 준 것 같아. 늘 곁에서 수많은 존재로 있어 줄 것이라 생각하며, 앞으로도 잘 부탁해!




요즘 싱글인 친구들이 제일 많이 물어보는 말이 있다.

“결혼하니까 좋아?”


내 대답은 늘 한결같다.

“응 너무 좋아! 너도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해!”





나방의 글을 읽은 다른 친구들의 생각


켱니 : 나방네 부부를 보면 결혼을 잘한 부부란 어떤 모습인지 배우게 되는것 같음. 내 인생의 롤 모델.


리솜 : 글이 너무 따듯하다. 현명한 나방네 부부의 생활, 내가 언젠가 결혼하게 된다면 많이 닮고 싶다!


오이미 : 진짜 너무 예쁜 부부. 결혼에 대해 부정적이 었던 딸이 엄마를 통해 들은 결혼의 의미에 뭉클했고, 부부의 다정하고 따뜻한 일상에 흐뭇했다.


레삐 :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는 일이 발생했을때 옆에 있어준 사람은 정말 큰 의미를 가지게 되는데, 그런 사람이 평생 옆에 있을 수 있다니 너무 행복한 일이다. 역시 서로에게 안정감을 주는 예쁜 부부도다!

매거진의 이전글 생각 둘.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