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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방 Jul 03. 2024

9화. 극단적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사람들과 관계가 틀어질 때마다 ‘사람에게 곁을 주지 말아야 겠다.’ 이런 생각을 하게 돼요. 선생님은 대인관계에서 어떤 기준을 가지고 계세요?”


“저는 제 감정이 제일 중요해요. 내가 감정이 상했다면 ‘여기까지만 하자’라고 멈추는거죠. 그게 아니라면 ‘사람에게 곁을 주지 말자’처럼 극단적인 답으로 향하게 되는거죠.”


“제 감정대로 해서 상대가 언짢으면 어쩌죠?”


“그래도 자신의 감정이 중요하죠. 내가 괜찮아야죠.”


“이야기를 하다보니 친한 친구가 생각났어요. 그 친구는 자기 기준이 확실한 친구예요. 만나서 잘 놀다가도 본인의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양해를 구하고 집에 돌아가는 일도 종종 있었는데, 어려서는 그게 상대에게 배려가 없는거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지금은 그 친구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됐어요. 그 어떤 순간에도 내가 중요하고 스스로를 지킬 사람은 나뿐이란걸 알게됐거든요.“


“그 친구분은 자기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이라 그래요. 자기 기준이 있는 사람이라서요. 그래야 그 상대와 다음에도 즐겁게 관계할 에너지를 만들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그 친구가 그렇게 단단해 보였던거군요? 저는 그 친구가 외형은 가녀리고 조금만 건드려도 부러질 것 같은데 친구들 중에서 가장 단단하고 뿌리가 깊게 내려 있는 느낌이 들거든요. 자기 기준이 있어서 그랬군요.”


“나방님도 할 수 있어요. 철학자들이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이론을 만들었죠? 나방님도 관계에 대해 자기 이론을 만들어 보는거예요.”


“자기이론이요? 너무 흥미로운 개념이네요.”


“상대가 어떤 행동을 하면 나는 어떻게 해야겠다. 내 감정을 기준으로 이론을 한 번 만들어 보세요.




“저의 기준으로만 살아도 정말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


“그럼요. 심리학에 방어기제라는 용어가 있어요. 자기합리화도 방어기제 중에 하나에요. 내 감정을 살펴보고 ‘이 사람은 이러하기 때문에 나는 상처 받지 않기 위해 이렇게 할거야.’ 하고 자기 합리화를 하는거에요. 방어기제는 나쁜게 아니에요.”


“그렇다면 저는 자기합리화라는 방어기제는 안쓰고 있나봐요.”


“분명 나방님이 쓰고 있는 방어기제가 있을거에요.”


“저는 어떤 방어기제를 쓰고 있는지 고민해볼게요."


“좋아요. 여기에 나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어떤 감정이 드는지 살펴보는거에요. 감정에도 여러가지 이름이 있어요. 그런데 그 이름들을 붙이지 못해 가장 큰 상위개념인 불안으로 가는거에요. 그래서 내가 불안한 사람이다라고 생각하게 되는거죠.”


“제가 불안하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그래서였군요? 예전에 어떤 프로그램에서 김영하 작가가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어요. 여러 감정들이 있는데 그 감정들의 이름을 몰라 '짜증난다'라는 말로 통칭한다는 것. 짜증난다는 말을 쓰지 말고 내가 왜 이런 기분을 느끼는지 다른 단어로 표현해보라고요.”


“맞아요. 여러가지 감정이 있고, 이 감정들이 모인 상위개념의 감정이 있어요.“


“선생님, 저는 감정의 이름들을 몰라서 그동안 불안이라는 단어로 대체하고 있었나봐요. 아는 단어가 적으면 세상을 크게 느낄 수 없다는 말이 이 말이네요. 나를 불편하게 하는 감정들에 대해 하나씩 이름표를 붙여보겠습니다.”


“여기에 하나 더, 욕구도 넣어보세요. 내가 상대에게 바라는 욕구가 있었을거에요. 어떤 욕구가 있었는데 상대의 어떤 행동으로 인해 어떤 감정을 느꼈다. 이렇게 정리해보는거죠.”


“너무 재밌을 것 같아요. 선생님이랑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뒤죽박죽 이야기를 내뱉게 되는데 그래도 대화가 흘러가서 신기하고 재밌어요. 저 원래 이렇게 정리없이 막 말하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저도 너무 즐거워요. 1시간이 너무 빠르게 간다고 느끼는걸요? 우리 다음은 언제 만날까요?”


그렇게 나는 선생님과의 다음 시간을 약속하고 왔다.



이번에는 많은 숙제가 생겼다.

하나, 관계에 대한 자기이론을 만들기.

둘, 내가 쓰는 방어기제는 무엇인가.

셋, 나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 그 사람에게 느끼는 감정과 욕구.


오랜만에 책상에 앉아 차분하게 생각할 시간을 가져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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