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상담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방어기제에 대해 열심히 찾아보았다.
방어기제(defence mechanism) : 받아들일 수 없는 잠재적 불안의 위협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실제적인 욕망을 무의식적으로 조절하거나 왜곡하면서 마음의 평정을 찾기 위해 사용하는 심리학적 메커니즘
용어의 정의도 어렵지만 방어기제 종류의 의미도 매우 어려웠다. 생각보다 많은 방어기제가 있었고 여러 종류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어떤 방어기제를 작동시키는지 고민해 보다 어느덧 상담일이 다가왔다.
“선생님, 3가지 숙제에 대해 고민해 봤어요.”
방어기제에 대해 열심히 공부한 종이를 펼쳤더니 선생님이 놀라셨다.
“이렇게 공부해 온 사람은 처음이에요.“
“다들 이렇게 고민하고 공부하지 않나요?”
“학생들도 잘 안 하는걸요.”
내가 생각보다 상담에 진심인 걸까. 생각해 보자는 숙제를 내주셨기 때문에 해온 것일 뿐인데.
“저는 용어가 생각보다 날카롭게 느껴져 거부감이 들었어요. ‘신경증적 범주’ 같은 단어들을 보니 왠지 제가 문제가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달까요?“
“최초에 정신과 의사들이 심리학 이론을 만들었기 때문에 용어가 조금 날카롭게 느껴질 수 있죠. 하지만 진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병적이라는 표현을 써요.“
“신경증이라는 단어는 흔한 표현일 수 있겠네요. 방어기제 종류를 알아가다 보니 모든 사람이 하나 이상의 방어기제를 쓰고 있다는 점을 알았어요. 저는 그중에도 주지화, 전위, 예측, 유머 등의 방어기제를 쓰고 있다는 생각도 했고요.“
"나방님, 처음에 상담하러 왔을 때 스트레스를 받아서 아프다고 했었죠?“
“네. 그때는 몸이 너무 아팠어요.”
“<신체화>라는 방어기제를 쓰고 있었던 거예요."
<신체화>는 정서상태가 신체적으로 표현되는 과정으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원인을 알 수 없는 고통이 지속될 수 있다고 한다. 늘 스트레스를 받으면 신경성 위염과 소화불량, 이명, 두통 등의 증상이 나타났는데 무의식적으로 방어기제를 쓰고 있었다니.
“선생님, 그런데 제가 어떤 방어기제를 쓰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조차 주관적인 판단이지 않을까요? 타인이 볼 때는 제가 생각하는 것과 다른 방어기제를 쓰고 있을 수 있잖아요.“
“그럴 수 있죠.”
“제가 상대방이 발현시키는 어떤 방어기제 때문에 힘들 수 있지만, 상대방도 마찬가지로 저 때문에 똑같이 힘들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방님은 자기 기준이 높은 사람인 것 같아요. 'must, 반드시 ~해야 한다'라는 기준치가 높고 자기 기준이 타인에게 확장되고 있어요."
"저는 제 기준을 타인에게 적용한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요. 스스로 기준이 명확한 사람이란 건 알고 있지만 그걸 타인에게 강요하진 않았는데...."
"기준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게 아니라 본인의 기준으로 상대를 판단하는 거죠. 사람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는 거예요."
'지나가다 부딪혔으면 사과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부탁하는 상황인데 공손한 태도로 요청해야 하는 거 아닌가?'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이런 생각은 많이 했다. 이게 다 자기 기준이 타인에게 적용된 것임을 알았을 땐 정말 소름이 돋았다. 그동안 내가 나를 잘못 알고 있었구나!
+번외이야기
“선생님! 사실 제가 상담받은 내용을 <브런치>라는 플랫폼에 연재하기 시작했어요.“
“정말요? 내용이 너무 궁금하네요!”
“부끄럽지만 완결이 되면 선생님께 꼭 보여드릴게요.”
선생님께 상담일기를 연재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누군가에게 내면의 이야기를 공개한다는 건 많은 용기가 필요하기도 했지만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에 시작한 글쓰기였다. 최근에 가장 나를 성장시키고 변화를 이끌어 주신 분이기에 꼭 말씀드리고 싶었다. 연재가 마감되면 보여드려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