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방 Jul 19. 2024

12화. 나만의 언어사전을 만들어 보는 건 어때요?


“한 주간의 주된 감정이 뭔지 생각해 보라고 하셔서 고민해 봤는데 ‘체념’이었어요. 상대방에게 어떤 기대감을 가지고 욕망을 투영했는데 원하는 바에 미치지 못했을 때 체념하는 저를 발견했어요.”


“체념이라는 감정을 느꼈군요. ‘수용’이라는 단어도 있었을 텐데 말이죠.“


‘수용’. 모르는 단어가 아니었음에도 전혀 떠오르지 않았던 단어다.


체념 : 희망을 버리고 아주 단념함

수용 : 어떠한 것을 받아들임


두 단어의 차이가 보인다. 내가 어떤 단어를 썼는지에서 나의 극단적인 생각이 엿보인다. 상대에게 바라는 마음이 되돌아오지 못할 때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단념하는 나의 모습. 정말 아는 단어가 없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단어에 대한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평소 내가 자주 쓰는 표현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선생님, 제가 자주 쓰는 표현 중에 ‘나쁘지 않다’라는 말이 있어요.”


“왜 그런 표현을 자주 쓰나요?”


“상대방에게 호불호를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싶지 않아서요. ‘싫다’라는 단어를 직접적으로 쓰고 싶지 않아 완곡한 표현을 찾은 것 같아요.”


“그렇다면 그 단어는 <나만의 언어>에요. 사실 나방님이 ‘나쁘지 않다’라는 표현을 쓰더라도 받아들이는 사람의 해석은 모두 다를 거예요. 어떤 사람은 좋다고 생각할 수 있고 또 다른 사람은 싫다고 생각할 수 있거든요.”


“그렇네요. 제가 뭐라 하든 상대는 본인 좋을 대로 해석하겠군요.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네요.”


나름대로 완곡한 표현을 찾아 썼지만 나의 의도가 상대에게 전달되지 않는다는 점이 허탈하다. 그럼에도 상대가 기분이 상할만한 표현을 쓰는 것은 싫다. 그리고 나의 생각을 너무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도 싫다. 나는 왜 이런 사람인 걸까?


“나방님이 섬세한 사람이라서 그래요. 사실 ‘섬세하다’는 표현 말고도 ‘예민하다’, ‘민감하다’는 단어가 있어요. 하지만 모두 어감이 다르죠.”


“맞아요. 예민하다고 하면 괜히 성격에 문제가 있는 것 같지만 섬세하다고 하면 자상한 느낌이 들어요. 민감하다는 그 중간 어딘가에 있는 느낌이고요.”


“나방님, 나만의 언어사전을 만들어 보면 좋겠네요. 내가 생각하는 단어마다 어떤 뜻과 느낌을 가지고 있는지 정리해 보는 거죠.”


자기만의 언어, 나만의 언어사전. 흥미로운 주제다. 내가 자주 쓰는 표현과 그에 대한 나의 생각. ‘나쁘지 않다’라는 말 외에도 내가 자주 쓰는 말이 있을까? 생각해 볼거리가 또 생겼다.



매거진의 이전글 11화. 나만의 관계이론 만들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