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한 여행들
쟁쟁한 여행자들 속에 나는 가방끈이 짧은 축이었다. 그때까지 가본 나라로는 이탈리아와 터키, 공부하던 미국 미시시피가 전부였으니 술을 홀짝이며 대륙을 넘나드는 여행 무용담을 듣느라 천일야화 속 왕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내가 더 크면(?) 다음에 꼭 가봐야 하는 곳을 정해주겠다며 서로의 최애 나라를 꼽다 우격다짐이 벌어지기도 했고, 김광석이나 김현식이 부른 오래된 노래들을 들으며 슬며시 찾아오는 향수를 달래기도 했다. 그 민박집 거실, 술과 얘깃거리로 얼큰해 동이 트도록 끝나지 않는 밤들 속에서 나는 대학에서 보낸 몇 년의 시간보다 더 많은 것을 배웠다.
많은 이십 대에게 그렇듯, 나에게 배낭여행은 대학 시절의 로망이었다. 부모님은 이런 나의 생각을 잘 이해하지 못하셨는데, 외국 가서 돈 쓰고 그룹 관광 다녀오는 것과 다를 바가 무어냐는 게 그 지론이었다. 그래서 내가 여행에서 돌아오면 배운 게 뭐냐고 종종 물어보셨는데 대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혼자서 문제를 해결하며 배우는 용기? 서툰 영어? 다 맞는 말이지만, 이건 굳이 배낭여행을 가지 않고도 배울 수 있는 점 아닌가 싶어 대답으로 내놓기에는 왠지 주눅이 들었던 것 같다. 시간이 흐르며 내가 느낀 점을 생각으로 정리할 수 있게 되어서야, 누가 묻더라도 이 세 가지 정도는 배웠노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첫 번째로 세상이 정말 크다는 것, 배웠던 대로 정말 크다는 것이었다. 비행기로 14시간이 걸린다거나 버스로 20시간이 걸린다는 걸 듣거나 말하기는 쉽다. 하지만 그걸 직접 경험해 보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잠실 경기장에 25,000명이 수용 가능하다는 것을 숫자로 보는 것과 직접 경기장에 가서 빼곡한 사람들을 보며 그 25,000명이 실제로 어느 정도인지를 피부로 느끼는 것이 천지 차이인 것과 같다. 머리로만 아는 것과는 달리 이러한 경험은 절대 책상머리에 앉아서 얻을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며 한 번 겪고 나면 평생 몸으로 기억하게 된다.
나의 두 번째 배움은 이렇게 세상이 크다는 것을 알게 됨에 따라 내가 얼마나 작은 지를 깨닫게 된 것이다. 나의 존재뿐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희로애락의 객관적인 크기를 얼마간 회복하게 되었는데, 이는 감정에 오히려 압도당하지 않도록 돕는 큰 힘이 되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감정의 폭이 크고 일희일비하는 아이였다. 화가 날 때면 그 화가 내 세상의 전부를 채웠고, 기쁠 때면 그 기쁨에 휩쓸려 도저히 진정할 수가 없었다. 더욱 다양한 감정과 경험을 품고 있는 큰 세상을 알게 되면서 내가 느끼는 것이 비교적 얼마나 작은 지를 깨달았고, 감정이 격앙될 때면 좀 더 차분하게 큰 시야를 가지려는 노력을 시작하게 되었다.
셋째로는 미친 듯 살아도 인생이란 것이 결국 살아진다는 교훈이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와 닿지 않을 수 있겠지만, 엄한 집에서 자라온 나는 조금이라도 정도를 벗어나면 죽기라도 하는 줄 알았다. 매년 반장을 하지 못하면 세상이 끝나는 줄 알았고, 평균 85점 이하로 내려가면 굶어 죽는 줄 알았고, 재수라도 하면 영원히 남들보다 인생에서 뒤처지게 될 줄 알았다. 직장 다니면서도 (늦추고 늦춘) 밤 11시 통금이 있었고, 속상한 일에 친구와 초저녁 차라도 한 잔 마시려 하면 통화하지 뭐하러 밤에 나가냐는 부모님 때문에 옴짝달싹할 수 없었던 게 나의 이십 대였다. 여행 와서 본 이 사람들은 대체 뭔가. 통금은 문제도 아니었다. 인생의 중요한 결정에서 응당 "옳아 보이는 답"이 아니라 원하는 걸 턱턱 선택하며 사는데 웬걸, 길거리에 나앉거나 뒤쳐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각자의 속도와 인생의 순서로 내가 보기에 너무 멋지게 잘만 살고 있었던 것이다. 너 그러다가 죽도 밥도 안된다, 하는 부모님의 협박 반 조언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특히 이 세 번째 배움은 내가 앞으로 인생을 개척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되었다. 현재 '나'라는 사람의 근간을 이룬 생각이나 선택의 기준점을 곰곰이 되짚어보면, 교과서나 선생님이나 주변 어른들의 조언에서 나온 것은 사실 하나도 없다. 멀리 떠나온 여행길에서 만난 사람들, 말이 아닌 그들의 행동에서 본 용기와 고민, 자신에게의 솔직함, 이해, 열린 마음 등이 나를 키웠다. 그 여행길 중에서도 내가 가장 많이 배웠던 곳이 바로 이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민박집 마루였던 것이다. 남미 절반을 볼 수도 있었던 한 달의 시간 동안 이과수 폭포 한 번 본 채 한 곳에만 붙박여 있던 이 아르헨티나 여행이, 그래서 나는 하나도 아깝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