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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간이 MeganLee Mar 06. 2021

미국이 싫어서 간 아르헨티나 1

혼자 한 여행들


교환학생 시절이니 때는 2010년.


교양 수업이나 들으며 한량처럼 지내다가 친한 친구들 중 하나가 간다기에 따라서 지원한 교환학생이었다. 최종적으로 내가 고를 수 있는 대학교는 하와이 힐로 대학교와 미시시피 주립대학교 두 군데였는데, 나는 어디로 가게 되었을까? 바로 미시시피 대학교였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던 미국이었고 어렸을 때부터 본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속 모습이 미국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막연히 미국은 모두 로스앤젤레스나 뉴욕 같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특히 미시시피 주립대에서는 내 토플 성적으로 전액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별 생각도 없이 당연하게 그쪽을 선택했다. 어릴 때부터 나의 고질적인 습관 중 하나가 사소한 일에 오히려 고민을 많이 하고 큰 결정은 직감으로만 다짜고짜 선택해버리는 것인데, 지금 내 모습을 보면 사람이 잘 안 바뀐다는 말이 사무치게 맞다.


아무튼 대표적인 redneck state를, redneck이 무슨 말인지도 모른 채 가서 1년 남짓을 살았으니 별별 일이 다 있었을 거란 건 쉽게 짐작이 갈 것이다. 그러면서 점점 미국이라는 나라 자체에 대한 호감이 뚝뚝 떨어지게 되었는데, 때마침 1학기가 끝나고 겨울방학이 시작됐다. 학교에 있던 한국인 교환학생 대부분 미국 내에 있는 대도시로의 여행을 계획하거나 간혹 미국을 벗어나더라도 가까운 멕시코에 갔다 오겠노라고 했으나, 방학 동안만이라도 미국을 벗어나고 싶었던 나는 아르헨티나를 가기로 결정했다. 왜 아르헨티나였느냐고 묻는다면, 브라질보다는 안전해 보이는 큰 나라였고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Buenos Aires, 좋은 공기)라는 이름이 좋았기 때문이다. 미시시피 주립대를 선택했을 때처럼 별 생각도 조사도 없이 그냥 내린 결정이었다. 변명을 하자면 원래 고민되는 결정일수록 오래 생각해봤자 결과적으로 결정에 따른 만족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고민이 많이 된다는 건 가능한 선택지들이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경쟁력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럴 땐 아예 선택지 자체를 벗어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아르헨티나 여행도 무려 10년 전이기 때문에 기억이 아주 자세하지는 않다. 거기서 유명한 한인 민박집 도미토리에서 거의 한 달 정도 머물렀는데,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벗어난 건 이과수 폭포를 보러 다녀온 게 전부였다. 국경을 맞댄 볼리비아에 가서 유우니 사막을 보고 올까도 싶었지만, 한 학기 동안 미국인들과 무려 영문학 수업을 들으며 스트레스를 받아야 했던 나는 다양한 뭔가를 더 해보기에 좀 지쳐있었던 것 같다. 대신 거기서 만난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하릴없이 거리를 쏘다녔고 저녁에는 들어와서 음주가무에 인생 얘기나 잡담을 즐기며 뜨는 해를 보고서야 잠자리에 드는 일과를 반복했다. 남미가 워낙 거리상 한국에서 접근성이 떨어지는 곳이다 보니 이 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여행을 할 만큼 하고 왔거나, 남미에 미쳐있거나, 정말 이상한 사람이거나 였는데, 그 덕분이었는지 반복되는 일상이 하나도 지루하지가 않았다.


해 지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거리에서


내가 만났던 사람들 중에는 인도를 좋아해서 여러 번 다녀온 언니도 있었고, 잘 나가는 대기업 과장 자리를 박차고 나와 세계여행 중이던 아저씨도 있었고, 날라리 같은 비주얼에 바짝 볶은 머리 때문인지 아무도 서울대 졸업했음을 믿어주지 않던 서울대 출신 오빠도 있었다. 판에 박힌 허니문을 마다하고 몇 달간 배낭여행을 하며 평생 함께할 의리를 쌓는 중이라던 신혼부부도, 매사 너무나 진지한 모습이 귀여우시던 이모에 가까운 언니도, 입대를 앞두고 긴 여행 중이던 공부벌레 스타일의 동갑내기도 모두 가만히 앉아 생각하면 미소가 떠오르는 얼굴들이다. 좋은 사람들만큼 치 떨리게 이상한 사람도 두엇 만났던 것 같은데 그들은 이상하게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당시에는 그들의 기행으로 경악하기도 했고 밤에 술 마시면서 수군수군 뒷담화도 했었는데 지금은 떠오르지 않는 걸 보면 역시 인생은 좋은 기억만 만들고 되짚으며 살라고 있는 건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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