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포스터 신드롬
나의 엑스는 종종 말했다.
"헤드 미팅을 하고 나면 내가 사기꾼인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능력이나 하고 있는 일에 비해 과분한 직함과 연봉을 받고 있는 것 같고, 사실은 내가 이만큼 잘난 사람이 아니라는 게 들통날 것 같은 거 있지. 같은 레벨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나보다 훨씬 뛰어나 보이는데, 나는 별 볼일 없는 어린애 같이 느껴진단 말이야. 그걸 숨기려고 더 똑똑하고 능력 있는 척하는데 사람들은 내가 정말 그런 줄로만 알아."
그는 취업정보 검색엔진 회사인 Indeed를 다녔다. 더블린 유럽 본사에서 일하면서 벌써 두어 번 커리어 점프를 했고 암스테르담으로 발령 신청을 해서 모국으로 돌아온 케이스였다. 일한 지 4년밖에 안된 서른한 살이었지만 그보다 열 살, 때로는 더 나이 많은 사람들을 매니징 하는 디렉터였다.
네덜란드에서 알아주는 법대를 졸업한 후 로펌을 다니다가 적성에 맞지 않다며 관둔 그는, 갈등이나 언쟁을 버거워했다. 변호사는 그것을 매일같이 마주해야 하는 직업이니, 당연히 즐거울 리 없었다. 다행히 곧 Indeed에서 기회를 잡았는데, 부사장인 직속 상사가 일찍이 그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앞에서 끌어 주어 초고속 승진을 할 수 있었다. 그는 내 눈에도 다른 많은 이의 눈에도, 똑똑하고 사회생활 잘하는 사람이었다.
임포스터 신드롬 Imposter Syndrome
자신의 성취가 노력이 아니라 단순한 행운이나 우연의 탓이라고 생각하는 심리. 본인의 실력이 드러나는 것을 꺼리며 언젠가 외부에 자신의 실체를 들킬까 봐 두려워한다. 가면 증후군이라고도 한다.
그와 한창 연애를 하던 2020년은 코로나 때문에 네덜란드 내 거의 모든 회사가 사무실을 폐쇄했을 때였다. 하루 종일 집에 갇혀 혼자 일하는 지루함을 덜기 위해 반은 그의 아파트에서, 반은 내 아파트에서 돌아가며 함께 일했다. 옆에서 지켜본 그는 멋졌다. 부드럽게 때로는 단호하게 팀을 이끌며 유능한 리더로서의 모습을 보였고, 복잡한 프로젝트도 심플하게 정리해 시원스럽게 쳐냈다. 나는 그런 면이 부러웠다.
동시에 나는 내 안의 임포스터 신드롬과 싸우고 있었다.
우리 팀은 전략팀 산하다. 경영진이 옳은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사업 상황을 업데이트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의논하고, 실행할 전략을 제시한다. 타겟 청중이 경영진이기 때문에 책임이 무겁다. 우리 업무에서 도출된 결론과 제안으로 많은 것이 결정지어지기 때문이다. 당연히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되고, 회사 안팎으로 모르는 게 없어야 한다. 예를 들어 전년대비 마진 성장률 타겟을 1.0%p 로 설정했다고 생각해보자. 제외해야 하는 세일즈 채널의 데이터까지 끌어온 바람에 틀린 계산을 한 거라면? 아시아 벤더들이 원재료 수급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시장 전반적으로 생산비가 오르고 있는데 그 사실을 몰랐다면? 타겟은 당연히 유효하지 않고 이것을 피칭하는 플래너의 말 또한 신빙성을 잃을 것이다.
하지만 실수는 일어난다. 모르는 게 있는 것도 당연하다. 플래너가 되고 나서 내 일과는 처음 하는 일, 그래서 어려운 일 투성이었지만 나는 다 할 줄 아는 양 행세했다. 모르는 게 있다고 하는 것은 마치 내가 팀에 있을 자격이 없다고 인정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팀에는 금융권 경력이 있는 동료, 딜로이트에서 컨설턴트를 하다 온 동료, 매니지먼트 트레이닝을 마치고 온 동료 등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내가 갖지 못한, 그래서 더 커 보이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작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만큼 되는 '척'을 하느라 나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곱절의 노력을 했다. 이렇게 똑똑한 팀에 들어왔으니 내가 그럴 만한 자격이 있음을 증명해 보여야 한다고 스스로를 압박했다.
돌아보면 다행히 큰 실수도 없었고 모르는 게 공공연히 들통난 적도 없다. 운 좋게도 나는 떠날 때까지 일 잘하는 플래너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터무니없이 높은 기준을 스스로에게 들이댔기에 끊임없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잘했다는 평가를 들어도 속으로는 '그 프로젝트에 내가 시간을 얼마나 쏟아부었는데. 그러니까 이 정도지 안 그랬으면 볼품없었을 걸'이라고 생각했다.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 자진해서 일했던 주말 같은 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노력해서 결과를 만들었다는 게 자랑스럽기보다 초라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다른 이들은 긴 다리로 우아하게 걷는 플라밍고인데 나는 촌스럽고 짧아 종종걸음 쳐야 하는 닭 같았다. 나무로 만든 가짜 다리를 신고서라도 저들과 비슷해 보이고 싶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다 할 수 있는 척, 다 알아들은 척. 나서서 거짓말하지는 않았지만, 물어보면 굳이 뭘 못하겠다거나 모르겠다고 하지 않았다. 최대한 조용히 있다가 남들이 보지 않을 때 혼자 공부하며 연습했고, 덕분에 사람들은 내가 뭐든지 다 쉽게 잘한다고 믿었다. 그 믿음은 나를 기쁘게도 했지만 감옥 같기도 했다. '뭐든지 다 쉽게 잘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열심히 해서 좋은 결과가 나왔어도 별로 힘 들이지 않은 것처럼 굴었고, 먼저 나서서 결과를 축소하거나 운이 좋았다고 했다. 힘은 한껏 써 놓고 내가 한 노력을 스스로 인정해주지 않으니 뭔가를 새로 하는 게 점점 더 힘에 부쳤다.
"Fake it till you make it"이라는 말이 있다. 될 때까지 '척'이라도 하라는 뜻이다. 이는 반대로, '척'이라도 하다 보면 결국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 또한 '척' 하다 보니 정말로 할 수 있게 되고, 잘하게 된 것도 많다. 하지만 나에게 그 과정은 별로 즐겁지가 않았다. 매일이 조마조마했고 스트레스가 많았다. 결과가 아무리 좋아도, 행복을 결정하는 것은 과정이다. 대단한 성공을 거둔다 해도 과정에서 즐거움을 찾지 못했다면 실패나 다름없다. 나를 꾸며내는 데는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된다. 그러고 나면 진짜 중요한 것에 집중할 힘을 잃는다. 진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내가 누구인지를 알고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는 것이다. 완벽하지 않은 그 자체로도 이미 충분함을 아는 것이다.
할 수 없는 것은 못 하겠다고, 모르는 것은 모르겠다고, 잘못한 것은 실수했다고 인정할 줄 아는 삶의 태도에는 두말할 것도 없이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보다도 나는 현실을 잘 보고 객관화하는 능력이 더욱 중요하다고 본다. 내가 못 하는 것, 모르는 것, 잘못한 것은 단지 일부일 뿐이며, 나를 대변하는 전체가 아니다. 이는 객관적 사실이다. 부족한 점은 지금의 현상이므로 언제든 변할 수 있다는 것 또한 그렇다. 이 둘을 알면 내가 아닌 더 나은 무언가로 보이기 위해 '척'을 할 필요가 없다.
상황에 따라 어느 정도의 가면은 필요하다. 내가 못생긴 닭처럼 느껴져도 플라밍고 사이에서 우아하게 춤을 춰야 하는 경우는 누구에게나 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한다. 닭은 결코 나 혼자만이 아님을. 그들도 사실 플라밍고가 아님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