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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간이 MeganLee Dec 05. 2021

짠순이와 짠돌이의 나라

Let's go Dutch


GDP 20위 안에 드는 부자 나라 사람들이 이 정도일 줄이야. 



오래전이지만 때는 사무실이 아직 암스테르담 시내 정 중앙에 있을 적. 목요일은 많은 사람들이 동료들과 보렐(Borrel, 퇴근 후 다 함께 가볍게 한 잔 마시는 것)을 하는 날이다. 회사 앞에는 시끌벅적한 펍이 하나 있었는데 주로 그곳에서 친한 사람들과 얼큰하게 취하곤 했다. 지금 팀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도 네덜란드인은 거의 없었다. 10명에 한두 명 정도라면 상상이 될 것이다. 


재미있는 건 이 몇 안 되는 네덜란드인 동료들이 동행하는 날이면 보렐 분위기가 - 정확히 말하자면 보렐 드링크를 결제하는 분위기가 - 180도 달랐다. 펍에서는 보통 바에서 음료를 받아갈 때 결제를 하는데, 당연히 자기 음료를 가장 먼저 끝낸 사람이 그룹의 빈 잔이 몇 개인지 세어 주문하고 한꺼번에 결제를 해 온다. 액수가 많이 커질 경우에는 나중에 나누기도 하지만 보통은 눈치껏 돌아가면서 한다. 하지만 네덜란드인이 있을 경우에는 빈 잔을 든 채로 수다가 길어진다. 서로에게 '너 뭐 마실래?'를 먼저 묻지 않고, 제일 친한 두어 명한테만 슬쩍 가서 물어보고 소리 없이 사 온다. 


이렇게 된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네덜란드 동료들은 '나도 사고 너도 산다, 고로 결과적으로 똑같다'는 식의 사고방식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다 같이 가서 각자의 음료를 각자 주문, 결제하거나 다 같이 주문했더라도 따로 결제하기를 선호했다. 그래서 말하지 않아도 다들 아는, '돌아가며 사기'라는 그룹의 룰이 휘청였다. 그뿐 아니다. 본인이 결제한 날은 센트 단위로 쩨쩨하게 세서 청구하고, 남이 결제하는 날은 조금이라도 비싼 음료를 시키고 모른 척하는 그 인간 때문도 컸다. 비싼 암스테르담 물가를 고려하더라도 술값은 한국보다 싸서 맥주 한 잔에 고작 3-4유로 할 뿐인데 어쩜 이런 인심이. 



내 미국인 친구는 진지하게 만날 누군가를 찾고 싶다며 요즘 들어 아주 열심히 데이트를 하고 있다. 그러던 중 최근에 마음에 드는 더치 걸을 만났다고 하는데, 얘기를 들어보니 이분에게 푹 빠졌다는게 느껴져 친구로서 아주 기뻤다. 하지만 세 번째 데이트로 집에서 영화를 본 후 김이 샜다는데, 이유인즉슨 그 여자분이 가지고 온 10유로를 채 하지 않는 와인 한 병의 값을 정확히 반으로 나눠 티키(Tikkie)를 보냈다는 게 아닌가! (티키는 네덜란드에서 가장 잘 이용되는 앱 중 하나로, 서로의 계좌번호 없이 돈을 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카카오 페이의 '카톡 친구에게 송금'과 같다) 저녁도 직접 요리하고 간식도 음료도 종류별로 준비해 손님을 맞은 그의 마음은 산산조각이 났고, 좋긴 하지만 이렇게 상식이 달라서야 데이트해봤자 얼마나 가겠냐며 더 이상 만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초반이라 너무 얽히고 싶지 않았던 걸까'라고 이해해보려 해도, 그렇다면 본인이 대접받은 부분은 왜 나누자고 하지 않았는가 하는 의문이 남았다. 그저 문화 차이라고 여기고 넘어가기에도 부끄러울 정도로 치졸해, 당사자도 아닌 내 입에서 쓴 맛이 다 느껴질 지경이었다.  





데이트 씬에서 목격한 '더치스러움'은 비단 내 친구만 겪어야 했던 일은 아니다. 네덜란드 남자와 한 첫 데이트에 고작 드링크 한잔을 각자 결제해야 하는 상황에 짜증이 나서 그만 본인이 다 내고 집에 들어와 버렸다는 내 여자 사람 친구의 얘기는 발이 차이게 많다. 밥값도 아니고, 드링크라니? 유럽은 한국에 비해 외식비가 평균적으로 비싼 편이기 때문에 첫 데이트에 저녁식사를 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므로 저녁값이라면 이해를 하겠다. 하지만 드링크라니? 


다시 말하지만 암스테르담은 비싼 물가를 고려하고서도 맥주 한 잔이 정말 비싸 봐야 5유로를 넘지 않는다. 심지어 내가 싫어하는 동료라고 해도 다 같이 펍에 가면 그깟 맥주 한 잔은 사는데, 호감 있어 만난 이성에게? 정말 섹시하지 않다, 그렇지 않은가. 경제 활동을 하는 성인 남자가 5유로 이하의 드링크를 각자 계산하기 원한다는 건, 이유를 불문하고 당장 빨간불이다. 멀쩡히 경제 활동을 하는 성인 여자가 친구와 술 한잔 하면서 항상 더치를 원할 때의 상황도 내 생각엔 마찬가지다. 


물론 이 이야기는 계산대 앞 더치스러움을 논하고자 하는 나의 의도를 비껴가 다소 예민한 남녀 사이의 돈 문제라는 주제로 확장되기 때문에 이쯤에서 그만하도록 하겠다. 남의 얘기에 이렇게 짜증이 날 수 있나 싶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 얘기이기도 했다. 만나보고 싶다고 친구들에게 번호를 물어 나를 데리고 간 그 레스토랑, 계산대 앞에서 이상한 분위기를 조성하던 IT 회사의 그놈. 하도 옹졸해서 내가 그냥 다 내버린 디너 데이트의 기억이 아직도 나는 걸 보면, 나도 마음이 그리 큰 사람은 아니다. 



이쯤에서 더치페이라는 말이 대체 어디서 시작된 건지 궁금해졌다. 찾아보니 17세기 네덜란드와 영국이 무역 및 정치 문제로 사이가 좋지 않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짜다'는 뜻에는 이미 'stingy'라는 단어가 있다. 하지만 네덜란드 사람들에게 감정이 좋지 않던 영국인들이 네덜란드인의 구두쇠스러운 성품을 아예 '네덜란드인스럽다'라고 이름 붙여버린 것이다. 외국인인 내 입장에서 볼 때 아주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어휘 사용을 억울해하는 더치 친구들도 간혹 있다. 


사실 주머니 사정은 마음의 넉넉함과는 관계가 없다. 개개인의 성향 혹은 문화가 그러할 뿐. 

참, 물론 모든 네덜란드인이 그렇다는 건 아니니 큰 걱정은 마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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