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보타 '탐의 숲' - '블루' 편 (글, 낭송 : 오민수)
매우 이상한 교육이 있다. 기업에서 이 교육을 진행하겠다고 하면 갑자기 퇴사자가 발생한다. 그것은 '저성과자 교육'이다. 만약 이 교육 대상자가 20명이라면 실제로 교육에 참여하는 인원은 5명 수준이고, 나머지 15명은 퇴사를 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이 교육의 목적은 성과가 낮은 직원들을 위해 역량을 향상시키고 필요하다면 다른 업무를 할 수 있도록 전환시켜주기 위해서다. 매우 이상적인 목적을 가졌지만, 의외로 다른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그것은 기업의 속내와 같다. 그 속내를 구체적으로 말하면 '저성과자'라는 낙인이다. 이 낙인은 대상자들에게 수치심을 유발한다. 회사에서 저성과자 교육이 당신에게 통보되는 순간, 이러한 낙인의 고통이 따라오게 된다.
설사 그 통보가 개별적으로 이루어진다 해도 교육이 진행되는 모든 과정에서 비밀이 유지되기란 어렵다. 이런 소문은 의외로 빨리 퍼지기 마련인데 그로 인해 발생하는 현상들, 즉 나의 성과가 나의 발목을 잡은 게 아니라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이 나의 발목을 잡게 되는 일이 벌어진다. 결국 저성과자 교육이란 타인의 시선으로 낙인을 찍고 편견을 만들어 그 사람을 더욱 부정하게 되는 현상이 교육보다 먼저 일어나게 된다. 이러한 낙인의 효과를 '스티그마 효과'라고 말한다.
이 스티그마 효과가 저성과자 교육의 실상이다. 이 교육을 거부할 권리는 대상자에게 없다. 따라서 스티그마를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발적 근로계약 해지', 즉 사직서 제출이다.
코로나 이후, 기업의 경영이 악화되면서 가장 많이 증가한 교육이 이러한 저성과자 교육이다. 기업 입장에서, 성과가 악화되었을 때 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다. 직원들의 역량을 향상시켜 성과를 개선하는 방법, 그리고 직원들의 숫자를 줄여서 인건비 부담을 줄이는 방법. 이 두 가지는 서로 다르지만 공교롭게도 '저성과자 교육'은 이 두 가지의 모든 해법이다.
기업에서 말하는 저성과자란 어떤 의미일까? 정말 개인의 노력에 따라 결정되는 성과를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회사의 성과가 부족한 부분을 마치 사다리 타기처럼 타고 내려와 개인의 성과로 책임을 물어야 하는 일종의 인사고과 프로세스인가. 그렇다면 코로나로 인해 발생한 기업의 손실은 누가 잘못해서 생긴 것일까? 잘못된 의사결정으로 시장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손해가 발생했다면 누구의 잘못이 가장 클까? 애당초 회사의 경영이 잘못되어 실적이 악화되고 인력 감축이 불가피하게 되었다면 이와 같은 책임은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
안타깝게도 그 책임이 가장 큰 사람은 저성과자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저성과자를 지목하는 입장이 된다. 만약 개인의 성과가 유일한 이유가 되고 그에 따라서 교육이 진행된다면, 이 교육은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해고를 시키지 않으려는 노력'으로써 인정을 받게 되며 이후에 근로계약 해지가 진행되더라도 법적인 타당성을 갖는다.
하지만 현실은 근로기준법이나 논의할 만큼 이상적이지 않다. 기업이라면 어떤 이유에서든 구조조정이나 인력감축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반드시 오게 된다. 회사의 실적이 앞으로의 재무 계획에 턱없이 부족하게 되면 설사 우수한 직원이라도 해고 리스트에 올려야만 한다. 이것은 그 직원이 저성과자이기 때문이 아니다. 회사가 재무 계획상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회사 차원의 문제며, 경영진의 책임이다.
만약 이 책임을 어떠한 방식으로든 해명하지 않고 저성과자 교육을 통해서 정리해고를 단행하고자 한다면, 그것을 바라보는 임직원들은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진정한 저성과자는 누구라고 생각하게 될까?
앞서 말했듯, 기업이 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다. 나는 간혹 저성과자 교육을 의뢰하는 기업과 미팅을 하게 된다. 그러면 그 기업 책임자의 표정을 살펴야 한다. 둘 중 어떤 것을 원하는 것일까? 속내를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 명분은 있지만 속내는 감춰져 있다. 속내는 언어를 쓰지 않는다. 언어와 언어 사이에, 그리고 맥락의 흐름 속에서 느껴지는 이물감을 곱씹으며 생략된 언어를 감지해야 한다. 그것은 회의실에 감도는 공기의 촉감과 표정에서 느껴지는 뉘앙스의 미묘한 차이로 대화한다.
그리고 둘 중 하나를 결정해야 한다. 나는 직원들의 역량을 향상시키기 위해 온 교육 컨설턴트인가 아니면 낙인을 찍으러 온 저승사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