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의 사전적 의미는 ‘이야기하기’이다. 구어적으로는 ‘거짓말하기’란 뜻도 있다. 따라서 ‘이야기=거짓말’이라는 공식도 성립할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이야기는 엄밀히 말하면 거짓말이다. 역설적이게도 그것이 이야기의 매력이다. 우리는 진실을 알고 싶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거짓말이며 어쩌면 그럴싸한 이야기로 자신을 기만하고 현실도 외면하고 싶은 욕구가 더 큰지 모르겠다.
대부분의 진실이란 골치 아픈 일이다. 가끔은 진실을 가리는 허구적 이야기가 자신을 보호하고, 사람들을 보호하는 일이 되기도 한다. 허구적 이야기, 어떻게 하면 그 이야기를 믿게 할 수 있을까? 수천 년 전부터 사제와 무당 또는 정치인은 그 답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의식(儀式)’이다.
의식이란 골치 아픈 진실을 어떤 이야기로 덮은 다음 그 이야기가 현실화할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하는 행동 양식이다. 가령 옛날에는 하늘에서 돌덩어리가 떨어지면 그것이 운석이라는 현상임을 몰랐기 때문에 민심이 흉흉해지곤 했다. 그러면 그것은 ‘신의 분노’라는 이야기를 만들어 덮은 다음 정성껏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의식으로 민심을 달래야 했다. 행여나 비가 오지 않아 가뭄이 들면 ‘기우제’라는 의식을 치르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역사적으로 공자만큼 의식의 중요성을 강조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는 의례를 엄격히 준수하는 것이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고 정치를 안정시키는 열쇠라고 봤다. 공자가 쓴 『예기』, 『주례』, 『의례』 같은 고전을 보면 국가 의식에서 따라야 할 절차를 기록해 놓았다. 의식에 사용되는 그릇의 수, 악기 종류와 참가자 의복의 색상까지 상세하게 나열되어 있다.
이것은 모든 문제의 정치적 해법을 수월하게 만들어 주었다. 예를 들어, 어떤 국가적 위기가 닥치게 되면 정치인들은 곧장 의례를 소홀히 한 탓으로 돌리곤 했다. 마치 군대가 전투에서 패배했을 때 주임원사가 군기 빠진 병사들이 군화에 광을 내지 않아 패배했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돌이켜 보면 우리는 이런 의식이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서 벗어나 현대의 대중에게는 먹히지도 않을 얄팍한 술수임을 안다. 하지만 그 옛날 혼란스러운 춘추전국시대를 살았던 공자는 우매한 인간의 본성을 꿰뚫어 보고 내린 탁월한 비책이었다. 그 당시에 진실이란 국가가 통제할 수 없는 골칫거리였으며 때론 의식(意識)이 없는 대중을 의식(儀式) 속으로 가둬야 평화가 유지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가 오지 않는다면 기우제는 비가 올 때까지 지속됐다.
시대는 변했고 의식은 사라졌지만, 이제는 다른 것이 이야기를 수월하게 만들어 준다. 우리는 그것을 의식이 아니라 ‘정치공학’이라고 부른다. 비가 안 온다면 여전히 골치 아픈 문제지만 오늘날은 그것보다 훨씬 복잡하다. 예컨대, 코로나 바이러스와 백신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또는 실패한 부동산 정책과 투기 문제는 어떻게 수습해야 할까?
이 와중에도 다가올 선거를 대비해 민심을 움직이려는 정당과 후보들의 정치공학이 꿈틀거린다. 그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정책적 방안은 하나도 없고 공허한 비방과 기묘한 통계만 난무한다. 그리고 선거철마다 이상한 용 또는 영웅 이야기가 등장한다.
의식도 필요 없지만, 영웅도 필요 없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고 나는 믿는다. 가당치 않은 언론 기사와 꾸며진 이야기, 통계로 여론을 선동하는 정치공학도 이제는 기우제만큼이나 철 지난 느낌이다. 언론에서 쓰레기 뉴스를 생산하는 ‘기레기’를 선별하는 일이란 인터넷 쇼핑만큼이나 쉽다. 그리고 시대가 변했다. 옛날 같으면 영화처럼 ‘남산의 부장들’이 출동할 일이지만 때로는 정부도 비판하고 대통령도 비판하고 여야 모두를 비판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더 건강한 사회라고 나는 믿는다.
우리는 항상 이야기에 목말라 있다. 하지만 대부분 거짓말이다. 이야기도 거짓이고 이야기를 바라는 마음도 거짓이다. 사실은 진실을 덮어두고 싶은 마음이 더 큰지도 모르겠다. 이야기하는 사람이나 이야기를 듣는 사람 모두.
다 큰 어른이 되어서도 어린아이처럼 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있다. 그런 어른이라면 아직 이야기가 필요하다. 기우제도 필요하고 정치공학으로 길들여야 한다. 어쩌면 조작된 이야기를 직접 하거나 듣기를 원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이야기는 ‘남 이야기’이고, 가장 힘든 이야기는 ‘내 이야기’이다. 그런 이유로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쉽게 내뱉는 말이 ‘내로남불’이며 ‘유체이탈’ 화법이다. 내 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이 가장 진실에 가깝지만, 사실은 그렇기 때문에 가장 피하고 싶기도 하다. 자신을 마주할 수 있는 때, 비로소 진실도 마주할 수 있게 된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이야기는 단연코 신화다. 신화 속의 신은 하나같이 인간이 이해하기 힘든 운명과 우주의 삼라만상을 대변해야 했다. 왜냐하면 진실은 너무나 멀고 그것을 마주한 사람은 두려워만 했으니까. 신이라는 보호 장치가 필요했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가 말했던 것처럼 호모 사피엔스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스토리텔링으로 신화를 창조하고, 의식을 만들고, 종교를 만들고, 국가를 건설하고, 거기에 이념과 사상이라는 이야기를 뒷받침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진실은 중요치 않았다.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지금 이 이야기하는 사람도 결국 호모 사피엔스니까. 만약 진실을 가린 이야기라면 음모가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이야기는 듣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하는 사람의 의도를 보는 것이다.
간혹 누군가가 통계로 우리를 속이려고 할 때, 숫자에는 진실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안다. 숫자는 단편적 현상만을 보여주니까. 안목을 가진 자라면 숫자의 뒤를 본다. 진실은 항상 숫자 너머에 있으니까. 이야기도 마찬가지, 진실은 이야기 뒤에 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