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이 어느 수준을 넘어가면 돈은 행복과 비례하지 않는다"라는 논리로 자주 인용되는 것이 '이스털린의 역설(Easterlin's Paradox)'이다. 정작 이 연구를 했던 경제학자 리처드 이스털린은 자신이 그런 논리로 말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그의 연구 논문을 인용한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해석하는 바람에 유명해진 이론이다. 이스털린이 원하든 원치 않든 그는 '재산이 곧 행복'이라는 믿음을 최초로 깨버린 선구자가 되었다.
이스털린의 역설은 돈이 행복을 위해 중요한 건 맞지만 어느 수준 이상을 갖게 되면 다른 것을 원하게 된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돈이 필요하지만 돈을 어느 정도 벌게 되면 돈이 아니라 다른 것 때문에 또 다른 가난을 느끼는 아이러니가 인간의 욕구다. 그렇다면 돈 다음엔 무엇이 중요해 질까? 시간적 여유?
재산이 어느 정도 있다면 시간적 여유를 바라게 되지 않을까? 급여가 같다면 주 5일 근무보다 주 4일 근무를 당연히 선호할 것이다. 시간의 여유가 곧 행복이니까. 그런데 그렇지 않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2014년에 '여가 시간이 증가하면 행복은?'이라는 주제로 9,000명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여가 시간이 하루 평균 3시간까지 주어지면 사람들은 행복지수가 올라가지만 4시간이 넘어가면 행복지수가 떨어지기 시작하고 7시간이 넘어가면 오히려 불행해지는 역설적인 현상을 보였다. 재산과 마찬가지로 여가도 역시 '이스털린의 역설'이 적용되는 셈이다.
왜 그럴까? 여가 시간이 너무 많아지면 그 시간을 보내는 것도 스트레스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물론 하루 종일 넷플릭스와 유튜브를 시청한다든지, 게임을 하고, 쇼핑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그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런 식으로 시간을 보내봤을 때 오히려 무기력과 공허함만 증가한다는 사실 또한 경험해 봤을 것이다. 여가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쉽지 않다. 그냥 시간이 남아서 하는 활동은 여가가 아니다. 시간을 내어 정성껏 활동하는 행위만이 진정한 여가가 된다.
1993년, 독일 볼프스부르크의 폭스바겐 공장에서 노사합의를 통해 근무시간을 단축했던 흥미로운 사례가 있다. 당시 주 36시간이던 근무시간을 28.8시간으로 줄이면서 근로자들은 풍족한 여가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 이후, 폭스바겐 공장 근로자들은 이혼율이 증가했다. 신기하게도 너무 많은 여가 시간이 부부관계를 악화시켰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