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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딴생각 Jul 18. 2024

느껴봐, 하노이의 밤

① 계획이 없어야 여행이다

계획 없는 두 남자의 묻지마 하노이 여행기




어느 날, 신사동에 있는 갓포집에서 스키야키를 먹다가 초이가 말했다. "베트남 하노이로 여행이나 가볼까?". 30년 지기 불알친구 초이의 뜬금없는 여행 제안이 그렇게 설레진 않았지만, 여권이 어떻게 생겼는지 잊어버릴 지경이라 떠나고 싶긴 했다. 그러고 나서 한 달 동안 하노이행 항공 티켓을 끈고 호텔 숙박을 예약한 다음 특별한 여행 계획을 세우지도 못했는데 덜컥 그날이 와버렸다.


인천공항 제1터미널


7월 4일 목요일, 아침 6시 20분.

인천공항 제1터미널에 도착했다. 초이의 얼굴을 보자마자 나는 연신 하품을 해댔다. 3박 5일 하노이 여행의 시작인데 정말로 우린 계획이란 게 '1'도 없었다. 딱 하나, 10년 전 하노이로 떠난 초이의 대학 후배 규성이를 하노이에서 만나기로 했다. 딱 그것뿐이었다.


공항 한쪽 구석에 흡연이 가능한 공간에서 담배를 물었다. 초이에게 하노이에 가서 뭐 하고 싶냐고 물어봤더니 두 가지를 얘기했다. '쌀국수'와 '마사지', 나는 거기에 하나를 보탰다. '하노이의 밤'.

그렇게 공항 흡연실에서 이번 여행의 큰 그림을 구상한 우리는 출국심사를 위해 공항으로 들어갔다.



출국심사를 마치고 들어간 공항 라운지에서 파니니와 커피로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했다. 나에게 여행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나를 낯선 공간으로 이동시키는 것, 그리고 모든 것을 낯설게 느끼는 것. 그러려면 계획이 없어야 한다. 계획은 낯선 것을 무디게 만들기 때문이다. 작가 김영하도 '여행의 이유'에서 이런 내용을 썼다. "작가의 여행에 치밀한 계획은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여행이 너무 순조로우면 나중에 쓸 게 없기 때문이다." 계획에 없는 일을 하는 것, 그런 낯선 경험 속에서 '뜻밖의 사실'과 마주하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나의 여행이다.


어느새 하노이에 도착


하노이 시간 낮 12시.

한국보다 2시간이 느린 시간대에 맞춰 스마트폰의 시계가 자동으로 바뀌었다. 하노이 노이바이 공항에서 입국 심사를 마치고 나오자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젊은 베트남 여성이 보였다. 그녀는 초이의 이름이 적힌 표지판을 들고 있었고, 우리가 인사를 하자 카니발 승합차로 안내해 주었다.


한국을 방문한 적이 없는 그녀는 한국말을 곧잘 했다. 우리가 이것저것 물어봐도 또박또박 한국말로 답변해 주었다. 우리를 호텔까지 태워준 베트남인 운전기사도 한국말 대화가 가능했다. 그들은 전부 초이의 후배 규성이가 보내 규성이네 회사 직원들이었다. 이렇게 사적인 일에 회사의 공적 자원을 투입할 수 있다니, 규성이는 우리가 몰랐던 능력자라고 해야겠다.


오후 1시 20분, 우리는 롯데 L7호텔에 도착했다.


하노이 L7호텔 인피티니 풀


호텔 23층에 위치한 인피니티 풀로 올라가 보니 하노이에서 가장 큰 호수인 '서호(Hồ Tây)'가 눈앞에 펼쳐졌다. 이 광경을 보고 나서야 우리가 여행을 왔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초이와 나는 각 방을 쓰기로 했다. 남자끼리 방을 같이 쓰는 것도 좀 이상해 보이긴 하니까.


롯데 L7호텔 1117호


앞으로 내가 머물 공간 1117호, 일단 여장을 풀고 바로 나왔다. 오자마자 가보고 싶은 곳이 생겼기 때문이다. L7호텔의 바로 옆에는 최근에 개장한 롯데몰 웨스트레이크가 있었는데 그곳은 베트남에서 가장 큰 백화점이라고 한다. 일단 그곳에 가보기로 했다.


하노이 롯데몰 웨스트레이크


오후 2시, 하늘이 보이는 거대한 천장의 하노이 롯데몰 웨스트레이크.

우린 쇼핑을 싫어하는 편이지만 하노이 백화점의 상품 가격은 궁금했다. 여기저기 둘려봤는데 이곳은 일반적인 하노이 물가와는 거리가 멀었다. 나이키 운동화가 대략 2,700만동(15만원), 유니클로 와이셔츠는 500만동(2~3만원) 수준, 사실상 서울의 백화점과 차이가 없다.


쇼핑몰을 돌아다닌 지 겨우 30분이 지났는데 허기가 느껴졌다. 일단 쇼핑몰 안에 보이는 동남아 음식점(이름은 SOM Tum Thai)으로 들어갔다. 메뉴판이 전부 베트남어로 되어 있어서 파파고로 번역을 하고 나서야 주문을 할 수 있었다. 우리는 똠얌꿍과 파인애플 볶음밥, 계란 요리, 면 요리 등을 시켰다. 시키고 보니 전부 태국 요리였다. 베트남에 오자마자 태국 요리부터 먹다니 하여간 둘 다 개념이라곤...


SOM Tum Thai


대략 이렇게 먹었더니 550만동(3만원 수준), 나쁘지 않은 가격이지만 이것도 일반적인 하노이 음식 가격에 비하면 비싼 편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오후 3시쯤 호텔로 들어온 우리는 잠시 부족한 수면을 취하기로 했다.

그리고 저녁 8시에 호텔 로비에서 다시 만났다.


초이야, 나 눈이 안 떠진다


저녁 8시, 드디어 하노이의 밤.

5시간 정도 자다 일어났더니 눈이 잘 안 떠졌다. 하지만 우린 낯선 경험을 위해 '하노이의 밤'을 즐기기로 했다. 사전에 우린 어디로 갈지 결정하지 않았기에 즉흥적으로 결정해 버렸다. 그곳은 바로 '타히엔 맥주거리(Ta Hien Beer Street - Honoi Old Quarter)'


타히엔 맥주거리


그랩으로 택시를 불러 타고 20분쯤(8km) 이동했을 때 타히엔 맥주거리에 도착했다. 사실상 이 거리 안으로 택시가 들어갈 수 없을 만큼 복잡하기 때문에 근처에 내려서 걸어가야만 한다. 이곳에선 골목마다 거리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이 작은 의자에 걸터앉아 술을 마신다. 구시가지답게 낡고 허름한 건물 사이에 온갖 가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우리나라엔 을지로 맥주거리가 있다지만 그보다 훨씬 레트로 감성을 풍긴다. 위생적이고 깔끔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곳이 비호감이겠지만, 우린 첫눈에 반해버렸다.



우리는 해물 안주를 파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맥주 한 병을 다 마신 초이가 종업원을 부르는 모습.

초이야 너 되게 잘 어울린다.


어서와, 나미소주는 처음이지?


메뉴판에 참이슬이 보이길래 시켜 봤더니 '나미소주'라는 놈을 주었다. 어쨌든 소주는 소주겠지 하고 마셔봤더니 단맛이 느껴지는 낯선 소주였다.


얼큰하게 취한 내 모습


베트남 맥주인 '비아비엣(Bia Viet)'을 시켰더니 갑자기 비아비엣 유니폼을 입은 베트남 여성이 나타나 나를 보고 웃는다. 그리곤 내가 맥주잔을 비울 때마다 그 여성이 내 술잔을 채워주었다. 옆에서 계속 웃어주니 나도 따라 웃는다. 우리 옆에 가게에선 중국인 관광객들이 술을 마시며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고, 가끔씩 지나가던 구두닦이들이 내 신발을 닦아 주겠다며 가격을 흥정하기도 했다. 이곳이 서울 강남이라면 짜증이 날 법도 한데 하노이라서 그런지 모든 것이 낯설고 흥미롭기만 했다.


Coffee A의 2층 테라스에서 보이는 풍경


밤 10시, 타히엔 맥주거리를 지나 500미터쯤 걸어갔을 때 보이는 베트남 커피전문점 Coffee A. 이곳 2층에 올라가서 거리를 내려다볼 수 있는 발코니에 앉았다. 오토바이와 자동차가 뒤섞여 다니는 길거리에 신호등 하나 없는데도 모든 것이 조화롭게 교차하고 있었다. 질서가 없는데도 있는 것처럼 보이는 묘한 풍경을 감상하며 우리는 매우 진한 베트남 커피를 들이켰다.


L7호텔 발코니에서 보이는 밤풍경


어느덧 밤 12시, 그랩으로 택시를 불러 타고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내 방 발코니에서 내려다보이는 하노이의 야경이 아름다웠다. 베트남 커피의 강렬한 카페인 때문일까? 흐리멍덩한 내 눈빛이 야경의 불빛만큼 강렬해진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하노이의 첫날밤이 지나갔다. 내일은 어떤 밤이 펼쳐질까?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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