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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스물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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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운 Nov 15. 2016

왜 여자는 둘 이상 모이면 비교되고 평가되어지는가.

"당신도 당신이라서 충분히 아름다워요."

왜 여자는 둘 이상 모이면 비교되고 평가되어지는가.

한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의 일이다. 출근 조회 때 '새로 들어 온 쌍커풀이 있는 여자알바생보다 못한 나의 외모'가 화두가 되었었고, 작은 웃음거리가 되었었다. '웃었다.'라는 것은 암묵적 동의를 뜻했다. 같이 조회를 선 많은 사람중에 나를 좋아한다는 동료가 있어서 내심 신경이 쓰였고, 뒤 끝이 있는지 웃음거리가 된 것이 창피했는지 조회시간이 끝났어도 나는 그 날 마음 속으로 몇 번 조회를 섰다. 역설적이지만 몇 번을 되돌아 가는 그 상황에서 매 번 넉살좋은 사람인양 나도 같이 웃었다. 그 당시엔 그냥 내가 오래된 알바생이기때문에 편하고 이런 장난도 웃어넘겨줄 수 있는 상대였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라며 나에게 망신을 준 직원을 너무나도 쉽게 이해했다.

왜 이렇게 종종 여자는 둘 이상 모이면 비교되고 평가 되어질까. 그냥 있는 그대로 봐주면 안 되는 것일까. '뭐를 좋아하고, 무엇무엇을 잘 하는 사람이다.' 이런 것들로 가득 채워도 한 사람을 표현해내기란 어려운데 말이다. 아니면 '누구 누구는 웃을 때 생기는 양쪽의 보조개가 사랑스러운 사람이야.' '누구누구는 집중할 때 생기는 미간의 작은 인상이 매력적이야.' 이런 식으로 외모를 표현하는 등 말이다.

스물 한 살에 러시아를 여행했을 때, 한 호스텔에서 스위스 가족을 만났었다. 한창 민낯으로 아이들이랑 술래잡기를 해주고 놀아주다가, 릴리의 엄마가 '내 '다운'이라는 이름은 한국에서 어떤 느낌이냐.'고 물어보셨다. 그래서 '내 이름은 딱히 느낌은 없고, 아름다운, 정다운, 나다운처럼 beautiful, wonderful에서 'ful'같은 느낌으로 쓰인다.'고 이야기를 해줬다. 그러고나서 아주 차분한 목소리로 '그래서 너가 아름다운가봐.'라고 이야기해줬다. 난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눈을 똑바로 응시하고 해준 그 한 마디에 뭔가 무너진 느낌과 동시에, 나는 2주 동안 힘든일을 다 버텨냈다.

아마 사람 한 명 한 명이 가진 고귀한 아름다움에대해 존중받지 못 했고, 한 가지 기준에 순위를 매기는 사회에 물들어 별 거 아닌 한 마디 말에도 쉽게 무너져내렸나보다.

흔한 일인지 아닌지는 내가 접한 경우가 몇 번 안 되어서 모르지만, 대학에와서 남학생들이 '소속된 집단 안의 여학생들의 외모 순위'를 매기고, 쉽게 성적 농담을 하는 것을 자주 엿볼 수 있었다. 그것도 너무 아무렇지 않게. 내가 '네 얼굴은 돌아보고 하는 소리냐.'고 돌직구를 날리면 '그건 본능'이라며. 말도 안 되지만, 그간 쉽게 합리화 해왔던 변명들을 늘어놓는다. 그 당시에는 '세상에 그런 인간쯤은 남겨줘야 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해서 놔뒀다. 그건 걔의 사고이고, 가치관이니깐. 나중에 그사람들이 어떤 뒷감당을 할 지는 나는 관심없다. 그건 본인이 선택한 언행들의 댓가니깐 말이다.

하지만 그런 부류의 사람들을 놔두면 더 큰 일이 생기는데, 저렇게 가진 사고가 더 견고해진 나이만 먹은 어른으로 큰다는 것이다. 그것도 어릴 땐 조용조용 저들끼리 이야기하기라도 했지. 이제는 그런 것에 부끄러움을 못 느끼는 상태로 말이다. 이런 작은 방치가 폭력을 낳는다.

대학에서 아주 나이가 많은 선배님들과 다함께 할 자리가 있었는데, 그 때도 난 그 소속의 총 대표였기 때문에 쉽게 그들의 어릿광대 혹은 안주거리가 되었었다. 큰 목소리로 '다운이 몸매좋고 진짜 매력적인데 어디어디 성형하면 더 좋겠다.' '아니면 차라리 남자애로 태어났어야했는데.'하고 저들끼리 한참을 낄낄대며 웃었다. 그 날도 분위기를 즐겁게 만들어야했던 주최 아닌 주최였으니 입다물고 웃었다. 그러고는 집에 가는 길에 가장 친하다는 친구의 번호를 눌러 술기운인척 울면서, 대신 욕을 해주는 친구의 음성에 기대어 현관으로 가 신발을 벗었다.

정말 아끼는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다면, 개개인의 가치관과 생각은 내가 손댈 수 없는 범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한 마디 했었을 것 같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내가 아끼는 사람들이 아니었고, 내가 아끼는 사람들은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지극히 사견이지만, 위와 같은 예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에서는 '외모'와 '학업'이 서로 비슷한 것 같다.

둘 다 '획일화'라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는 관점에서 보면 말이다. 그러니 그 기준에서 벗어난 우리들은 모두 아웃인 것이다. 여기에 경쟁구도까지 갖춰지니, 내가 가진 것으로는 도저히 행복할 수 없다.

세상 사람들은 저마다 매력적인 부분이, 혹은 잘 하는 것이 다 다르기 마련인데, 하나의 기준에 자신을 빗대어 본다. 같은 뱃속에서 태어난 자식이라도 똑같지 않듯이, 세상 사람은 더욱 다양하고 제각각일텐데 말이다. 그러니 당연히 다른 것이 자연스러운일이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많은 사람들이 '다른 점'이 '틀린 점'인 줄 알고 보완을 하려한다는 점이다. 심지어는 그것이 극에 달해 '외부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말이다.

그 외부의 도움이 정형화된 미의 기준에선 ‘성형’이고, 좋은 성적과 입시에선 ‘학원이나 과외 같은 사교육’이다. 외부의 도움을 받는 것이 보편화 되어있는 것이 조금 걱정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획일화의 해결책이 결국은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점도 비슷하다.

수 천 만원의 성형을 한 조각 같은 얼굴도 ‘자존감과 자기애’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듯, 최고의 강사진의 고액 학원을 다녀도 ‘자기주도적학습’을 통해 자기 지식으로 습득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듯이 말이다.

이 생각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해온 생각이라 그 당시 청소년의 사례로서 출연한 '성형'에 대한 다큐멘터리에서도 이야기 했었다.

나는 사교육, 성형 열풍 대한민국에서 5만원짜리 단과학원 한 번 안 다녀보고 오로지 공교육만으로 학업을 이어왔고, 성형도 하지 않았다. 즉, 위에서 말한 '외부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 그저 스스로 해결하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을 일들이라고 여겨서 말이다. 물론 조금 많이 힘들긴 했지만 말이다.

사실 가끔은 중학교 시절에는 학원을 많이 다니다가, 고2, 고3때 학원을 끊고 공교육만 한 애들이 '자기는 사교육 안 받고 대학갔다.' 이야기 한다거나, 쌍커풀이나 간단한 이마시술, 코시술을 한 사람들이 '이런 건 성형축에도 안 끼니 본인은 자연미인이다.' 이야기하면 그사람들한테 보태준 것도 없지만, 정말 아무것도 안 한 입장으로서 좀 이상한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고등학교 때는 이런 사실을 숨기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세상의 한 가지 기준에 본인을 맞췄다.'는 사실이 부끄러워 그런 것일거라는 생각을 했다.

무엇이 이 세상을 이렇게 줄 세우고 경쟁붙이는가.
사람들이 본인이 가진 매력들을 자랑스럽게 뽐내고, 본인이 가지고 태어난 재능이나 살리며 산다면 모두가 행복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뭐든지 절대적인 것들이 상대적인 것에 비교되면 불행해진다. 돈이든, 재능이든, 외모든 모든 것들이 말이다.

나도 어릴 때 길거리를 걸으면 남녀 상관없이 조각같이 생긴 사람들에게 눈이 먼저 갔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여행을 하게 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니 본인의 개성을 뚜렷하게 가진 사람들에게 눈이 가기 시작했다. 눈이 간다는 건 나에게 '그렇게 되고 싶다.'는 것을 내포했다. 따라서 나의 시선이 옮겨진데에는 '저런 사람들은 어떻게 벌써 자신의 것을 찾았나.' 하는 경외심에서 비롯됐다.

이외수 작가는 < 코끼리에게 날개 달아주기 >라는 책에서

 「뛰어난 외모는 나이 들면 시들어버리지만
뛰어난 매력은 나이 들어도 시들지 않습니다.

미모는 외면에서 형성된 것이어서 시간의 제약을 받지만 매력은 내면에서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습니다.

하지만 매력은 어떤 경우에도 성형불가입니다.」
라고 이야기한다.

나도 이런 당연하게 줄을 세워 왔던 환경에 흔들릴 때도 있겠지만, 흔들리지않게끔 주관을 견고히한 후, 적당한 개성을 찾아 내적인 아름다움을 가꾸면서 살고 싶다. 시들지 않는 매력을 가진 사람으로 말이다. 그리고 나만 이렇게 찾을 것이 아니라, 주위의 사람들의 아름다움에대해 일깨워주는 일도 열심히 해야한다. '너 그거 알아? 너 수줍게 웃을 때 살짝보이는 앞니와 눈밑애굣살이 너무 사랑스러워.'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런 것만 보려하면 그런 것밖에 안 보이니, 쉽게 망각한 사실이지만 새삼 모두가 아름다워 보인다.

아름다움은 곧 나다움이니깐.

사진 : Issyk-kul, Kyrgyzstan, Dawn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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