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로나 휴일
오늘 새벽, 목 안을 철수세미에 긁히는 듯한 아림과 따끔함을 느꼈습니다.
또다시 코로나가 찾아왔습니다.
또로나가 왔습니다.
corona는 왕관이나 화환/화관을 뜻하는 말이었다죠.
이참에 푹 쉬라는 위로들을 듣습니다.
하지만 마무리지을 프로젝트와 써야할 자료들에 마음이 무겁습니다.
어렵게 잡은 미팅들과 병원 진료도 밀려서 속이 더 상합니다.
그래도 일단 나아야 합니다.
원기를 모으려면 잘 먹고 잘 쉬어야 합니다.
그래서 평소 거르던 아침을 욱여넣고 잠시 눈을 붙였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헛소리를 해댔다더군요.
염소라도 한 마리 고아 먹어야 할까 봅니다.
한숨 자고 일어나 페북에서 벗들의 글을 읽습니다.
친구가 50명 남짓이라, 금세 한 바퀴 둘러봅니다.
숲과 나무에 관한 서적을 출간하는 분의 글에서, 수분(受粉)에 관한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그동안 식물의 번식은 씨를 뿌리는 파종(播種: 뿌릴 파, 씨 종)이라고만 여겼습니다.
하지만 진짜 번식은 수술의 꽃가루가 암술에 전해지는 과정이었습니다.
움직이는 동물은 액션으로 짝짓기를 치르고, 뿌리 심긴 식물은 배달의 종족이 꽃가루를 날라줍니다.
새삼 벌과 나비와 새들에게 고맙습니다.
수분(受粉: 받을 수, 가루 분)보다는 가루받이란 말이 대중적 공감을 이끌어내기 좋겠단 생각이 듭니다.
영어로는 ‘pollination’입니다.
pollen이 ‘꽃가루’를 의미합니다.
가루란 말에 불현듯 ‘가루지기’가 떠올랐습니다.
네, 짝짓기 몬스터 변강쇠와 옹녀가 등장하는 그 가루지기가 맞습니다.
식물번식의 핵심인 꽃가루와 번식능력자 강쇠형 사이에 연결고리가 있을 거라 짐작했습니다.
가루지기는 ‘가로로 진다(橫負: 가로 횡, 질 부)’는 뜻이네요.
가루가 가로의 옛말이랍니다.
시체를 가로로 져서 날라 붙은 말로 ‘(시체)가로지기’로 이해하면 편합니다.
마을 장승을 뽑아 땔감으로 쓴 탓에 저주를 받아 병으로 죽어가던 변강쇠.
부인 옹녀에게, 새서방을 들이면 그를 죽이겠다는 저주를 남기고 세상을 떠납니다.
옹녀는 변강쇠의 시신을 집에서 내가려고 도와줄 사람을 찾지만, 오는 사내들이 모두 저주로 죽고 집안은 시체들로 가득찹니다.
이 시체들을 옮기는 ‘시신 나르기(가루지기)’가 작품의 제목이고 핵심 사건인데, 그동안 이대근 옹과 원미경 누나만 떠올렸네요.
2008년 봉태규가 주연을 맡았던 ‘가루지기’도 변강쇠의 육체능력에만 초점을 맞춰, 가루지기의 원뜻은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그냥 ‘정력 몬스터 변강쇠’였을 뿐이군요.
또로나로 시작해, 가루받이를 거쳐 가루지기까지 갔군요.
이런 서술방식도 ‘의식의 흐름(the stream of conciousness)’이나 ‘일련의 생각(a train of thought)’에 포함될까요?
모처럼 글을 끄적거렸는데, 시간이 금세 훅 흘러버렸습니다.
손가락도 눈도 뻐근합니다.
아이패드 하나 사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