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러브록 『가이아』
당신은 지구가 살아있다고 생각하는가? '지구가 생명을 가진 존재'라는 인식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자연에 존재하는 사물에 영혼이 있다고 믿는 애니미즘과 자연의 모든 것을 신이라 믿는 범신론은 그 중 하나다. 하지만 이런 믿음과 달리 과학계에선 지구를 생명을 가진 존재로 보지 않았다.
가이아 이론이 대두되기 전까지 과학계에선 지구를 '불활성적 고형체'로 인식했다. 그리고 그런 지구에 살고 있는 생물은 환경이 변할 때마다 새로운 환경을 견디며 생명을 유지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여겼다.
하지만 제임스 러브록은 기존 과학자들에게 도전하는 이론을 내놓았다. 그는 지구에 존재하는 생물 하나하나가 모여 변화하는 환경에 영향을 주고 생명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유지시키는, 즉 지구를 항상성을 가진 초 생물체로 보는 가이아 이론을 제시했다. 여기서 지구는 생물들과 더불어 생물들이 살아가는 생물권을 포함한다.
가이아는 이 지구 상의 모든 생물들을 위하여 스스로 적당한 물리. 화학적 환경을 조성할 수 있도록 피드백 장치나 사이버네틱 시스템을 구성하고 있는 거대한 총합체라고 할 수 있다. 능동적 조절에 의한 비교적 균일한 상태의 유지라는 것은 '항상성'이란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
제임스 러브록은 1960년대 초, 화성과 다른 행성에서 생물체를 탐지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는 연구팀의 자문을 맡았다. 그 당시 연구팀은 화성에 생명체가 존재한다면 지구에 존재하는 생명체와 같은 흔적을 남길 것이라는 가정을 바탕으로 연구를 시작했다. 하지만 지구에 존재하는 생명체를 기준으로, 화성에 존재할 확률이 높은 생명체들을 선별해 그 흔적을 찾는 방법은 한계가 있었다. 러브록은 생명이 존재함으로써 화성 전체에 미칠 수 있는 흔적을 찾는 방법을 고안했다.
어떤 행성에 생명체가 존재한다면, 생명체로 에너지가 들어오고 나가는 과정에서 행성의 환경에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에, 그 행성은 생명체가 존재하지 않는 행성의 환경과는 다른 환경을 가질 것이다. 저자는 화성에 생명이 있다면 화성 대기 조성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했다. 그래서 화성 대기 조성이 정상상태의 화학 평형상태와 다른, 비평형 상태를 유지하는 지점이 있는지 관찰했다. (하지만 화성에서 생물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같은 이치로 생명체가 존재하는 지구에서 정상의 화학 평형상태와 다른 비평형 상태가 유지되고 있는 지점을 보면 우리는 가기아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다. 대기와 해양에서 대표적인 지구의 비평형 상태 예를 하나씩 살펴보자.
만약 어떤 행성에 생물이 존재한다면 그들은 먹이 물질과 폐기물을 유동시키기 위하여 유체 매질 - 바다, 공기, 또는 그 모두 - 을 운반 통로로 사용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므로 생명체 속에서 집중적으로 엔트로피 감소가 진행된다면 그런 과정에 관련된 어떤 활동이 운반 통로의 부분에 영향을 미치고, 그 결과 유체 매질의 화학적 조성을 변화시킬지도 모른다는 데에 내 생각이 미치게 되었다.
지구의 대기 조성은 정상상태의 화학 평형상태와 다르다. 생물이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지구 대기에선 산소가 극미량 존재해야 하지만 산소는 지구 대기의 21%를 차지하고 있다. 21%의 산소 농도는 생명체가 살기 알맞은 수준인데, 산소 농도가 약간만 더 높아져도 자연발화 위험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산소 농도가 21%에서 1% 높아질 때마다 번갯불로 인한 산림화재의 확률은 70% 높아진다고 한다. 어떻게 가이아는 생물이 살 수 있는 일정한 수준의 산소 농도를 유지할까?
산소 농도를 조절하는 대표적인 기체로는, 메탄가스와 아산화질소 두 가지가 있다. 메탄가스는 해저, 습지 등의 탄소 화합물이 묻혀있는 곳에서 박테리아의 혐기성 발효에 의해 만들어진다. 메탄가스 산화로 매년 약 10억 톤의 산소가 소모된다.
반대로 아산화질소는 토양과 해저로부터 대기 중으로 산소를 운반하는 역할을 한다. 아산화질 소가 운반하는 산소의 양은 메탄가스와 같은 환원성 물질의 산화에 의한 산소 손실량의 두배에 달한다. 따라서 두 기체는 서로 상보적으로 작용해 지구 대기 중 산소 농도를 조절한다고 볼 수 있다.
즉 다른 어느 행성에서도 존재하기 어려울 것 같은, 유독 지구만이 갖는 독특한 대기 성분의 비밀은, 그것이 다름 아닌 지구의 생물들에 의해 하루하루 착실하게 만들어지는 데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엔트로피의 분명한 감소 - 또는 화학자들이 보통 말하듯 대기 가스들의 영속적 비평형 상태 - 는 생물의 활동을 나타내는 명백한 증거가 되는 것이다.
바다의 평균 염분 농도는 3.4%다. 바다 생물에게 바다 염분 농도는 육지 생물에게 산소농도만큼 생존에 중요한 요소다. 바닷물의 평균 염분 농도는 처음 바다가 만들어지고 생물이 탄생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일정하게 유지되어 왔다.
염분은 다양한 경로로 바다에 축적된다. 보편적인 경로는, 비와 강물을 통해 육지에서 바다로 염분이 바다로 흘러들어 오는 것이다. 그렇게 염분과 함께 바다에 추가된 빗물과 강물은 증발하지만 염분은 바다에 축적된다. 또 다른 경로는 바다 밑바닥의 갈라진 틈이다. 대양 밑바닥의 틈에서 흘러나오는 용암은 바다에 염분을 추가한다.
가이아는 일정한 농도의 바닷물을 유지하기 위해, 바다에 염분이 추가되는 만큼 제거하는 방법을 가지고 있다. 염분을 제거하는 방법 중 하나는 규조류다. 규조류는 바다 표층에서 짧은 생을 마치고 죽을 때 규산염을 흡수한채 바다 밑으로 가라앉는다. 육지에서 투입되는 규산염의 양이 증가하면 규조류도 번성하기 때문에 제거되는 규산염의 양도 증가한다. 반대로 투입되는 규산염의 양이 감소하면 규조류도 같이 감소한다. 이는 생물이 살기 적당한 환경을 유지하기 위한 가이아의 유기적 조절 메커니즘이라 볼 수 있다.
무기질의 탄산칼슘 골격과 규산염 껍질이 가라앉을 때에는 일부 유기 물질들도 한께 가라앉게 되는데, 이것들은 해저에 묻혀서 황산 화합물의 광석으로 되며, 때로는 순수한 황광석을 형성하기도 한다. 이런 전체적인 과정은 생물들에 의해 조절되는 융통성이 많은 메커니즘이다.
그렇다면 가이아는 정말 생명체로 볼 수 있을까? 생명체의 특징을 몇 가지 꼽아보자면, 물질대사 / 항상성 유지 / 자극에 반응 / 생식과 유전 / 적응과 진화가 있다. 이 특징들을 기준으로 가이아가 생명체인지 아닌지 판단해 보자.
가이아가 외부환경으로부터 자신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예는 앞의 단락을 통해 설명했다. 지구에 생명체가 처음 나타났던 35억 년 전부터 지금까지 다양하게 발전해온 가이아의 생명 유지 시스템은 환경에 대한 적응과 진화로 볼 수 있다. 또한 가이아는 여러 화학반응을 통해 대기에서 육지로, 육지에서 바다로 원소들을 옮겨가며 물질대사를 한다.
가이아는 환경변화(자극)에 대한 반응을 할 수 있는가? 지구에 일어난 환경 변화 중 하나는 지구에 생명체가 처음 나타난 무렵 야기되었을 급격한 온도 변화가 있다. 저자는 지금보다 30% 약했던 태양광선과 온실기체인 이산화탄소가 줄어들면서 일어났을 지구의 기온 변화에 대한 가이아의 대응 방법을 밝혀내진 못하고, 두 종류의 가능성을 제시할 뿐이다. 생식과 유전은 어떤가? 현재까지는 가이아에겐 DNA와 같은 유전정보가 없으며 다른 행성으로 번식할 수 없다. (미래에 인류가 다른 행성에 정착하게 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인류가 다른 행성에 생태계를 구현한다면 인류를 가이아의 DNA로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기에 가이아를 생명체로 여기기엔 무리가 따른다. 유전자 정보인 RNA를 포함하고 자기복제를 하지만 세포 활동은 없는 바이러스를 생물로 분류할 수 없듯이 말이다.
따라서 가이아를 보편적인 생명체와 같이 적극적으로 주변 환경을 변화시키고 환경에 적응하는 존재로 생각하기보단, 무생물적 환경 변화와 함께 지구에 영향을 끼치는, 항상성을 가진 시스템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p.s 무생물과 생물 사이의 경계는 과학적 발견이 거듭될수록 모호해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선 다음 영상을 추천한다. 마틴 핸치크 : 생명체와 생명체가 아닌 것의 경계
가이아 이론은 아직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가설에 불과하다. 또한 가이아 이론으론 생명체가 왜 다른 행성들엔 나타날 수 없었는지 설명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이아 이론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이유는 우리에게 지구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유기체적 관점에서 바라본 지구에대해 아직 모르는게 많다.
가이아는 항상성을 가지기에 환경오염에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주장이 인상 깊었다. 저자는 한때 뜨거웠던 오존층은 우리가 인식하는 만큼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같은 맥락으로 하구, 습지에 있는 미생물들처럼 가이아 시스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우리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영역을 조심해야 한다고 한다. 또한 지구과학, 생물학 등을 결합해 만들어진 가이아 이론은 수많은 전문 분야로 나눠져 각자의 영역만을 연구하는 과학계에 통합의 필요성을 알린다.
오염은 현대 기술의 가장 큰 종양이며, 이는 조만간 우리 인류의 생존까지도 위협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다. 그러나 현재 수준의 산업활동이나 또는 가까운 미래의 공업 발달이 가이아의 생명성을 전반적으로 위험에 처하게 한다는 판단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사실상 대단히 적은 편이다.
가이아 가설은 자연을 반드시 우리가 정복해야만 하는 본원적 힘을 가진 대상으로 간주하는 이제까지의 독선적 견해에 대한 대안이 될 것이다. 또한 이 가설은 행성 지구를 아무런 목적 없이 태양계 주위를 방황하는 애달픈 우주선으로 표현하는 비관적 견해에 대한 대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