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유창성의 비밀
영어 잘하고 싶다!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 한국인의 공통된 소망이라 생각한다. 영어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 봤다. 유튜브를 보기도, 빅데이터 영어 단어를 외워도 보고 미드를 보고 공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유창하게 말할 수 있는 영어 실력까지는 갈길이 멀다. 높아 보이는 영어 앞에 '더 효율적인 영어 공부법은 없을까?' 하며 어슬렁거리다 책 하나를 발견했다.
내 영어 실력으론 간단한 생각을 영어로 만들어 내는 것도 벅차다. 하지만 외국에서 생활하다 보면 내가 문법에 맞게 말을 해도 상대방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같은 의미라도 표현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어를 그대로 영어로 번역하는 것을 '한국식 영어'라고 하는데, 같은 의미라도 다르게 표현하는 것을 보면 원어민은 사고방식부터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면 '그 여자 눈이 이쁘다.'는 문장을 그대로 영어로 바꾸면 'Her eyes are beautiful.'이다. 틀린 표현은 아니지만 자연스러운 영어 표현은 'She has beautiful eyes.'이다.
우리가 영어공부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영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기 위함이다. 여기서 의사소통은 다른 이들과의 정보교환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영어를 잘하는 것은 단지 말을 이해하고 생각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상대방이 가진 다른 사고방식을 이해하고 다양한 상황과 문화에 맞는 표현들을 사용할 줄 아는 것이다.
영어를 잘하면 좋다. 왜 좋을까?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사용하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외국인끼리 소통할 때 쓰이는 플랫폼 언어를 '링구아 프랑카'라고 한다. 세계적 링구아 프랑카인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면 일단 받아들일 수 있는 정보의 양이 달라진다. 인터넷에 있는 정보 중 0.7%만이 한국어인 반면 영어로 된 정보는 60%가 넘는다. 회사에서 비슷한 주제의 자료를 조사를 할 때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90배나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사업을 할 때 한국어만 사용하는 한국시장보다 훨씬 넓은 세계 시장에서 자신의 능력을 펼쳐 보일 수 있다. 글 하나를 쓴다고 하더라도 한국어로 쓰면 5000만 명이 읽을 수 있겠지만 영어로 쓰면 10억 명이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이와는 다른 이유로 영어를 잘하려 한다. 토익점수, 수능 영어 점수가 좋으면 좋은 직장과 대학교에 입학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영어를 소통의 도구가 아닌 사회적 계급을 구분하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영어를 대하는 태도는, 식민지 수탈과 20세기에 부상한 대영제국 등 제국주의에서 비롯된 극심한 백인우월주의가 만들어낸 유색 인종의 열등감이 바탕에 깔린 태도의 답습이었다. … 문명을 '선진문명'과 '전통 문명'으로 나누는 낡은 프레임에 갇혀 영어를 도구가 아닌 동경의 대상, 계급의 표식으로 사용하는 기형적 언어관에 갇히게 된 것이다.
수능 영어나 토익 시험으로 측정하는 영어는 의사소통의 기능보단 문법을 맞는 것과 틀린 것으로 나누고 발음을 재단하여 점수를 매긴다. 영어단어를 외워 시험 보고 '다음 중 문법적으로 틀린 것은?' 하는 문제를 맞혀야 한다. 문법과 어휘 위주의 공부는 소통 능력에 중점을 둔 공부법이 아니다. 과연 하나의 정답이 있는 문법이란 게 존재할까? 세계에선 영국인보다 훨씬 많은 인구가 영어를 사용하고 있다.
영국의 언어학자 데이비드 크리스탈은 "인도 인구의 5퍼센트만이 영어를 유창하게 사용한다고 쳐도 그 수는 영국 전체 인구보다 많다"라면서 영어의 '원어민'은 규정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5 영어 종주국 사람들은 오히려 '영어의 원어민은 없다'라고 생각한다.
하나의 기준이 되는 올바른 영어가 있는 것이 아니다. 흑인 영어, 인도 영어, 힙스터 영어처럼 영어는 각 그룹마다 사용하는 어휘나 문법이 조금씩 다르다. 영어를 공부할 땐 의사소통에 중점을 둬야 한다. 따라서 표준 문법 기준으로 다른 영어가 맞는지 틀린 지를 나누는 것보단 각 그룹의 영어들이 조금씩 다름에도 영어로 묶일 수 있는 틀을 공부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일 것이다.
표준 문법이라고 배운 것을 기준으로 정답과 오답을 가르면 이들의 영어가 '틀린 것'처럼 들려 이해하기만 어려워질 뿐이다. 그래서 영어 공부를 할 때 지문이나 대화를 교과서로만 보면 안 된다. 영어로 생산되는 다양한 글, 노래, 영화, 비디오 등등을 접해 보지 않고 책만 들여다보면, 마치 연애를 책으로 배운 사람처럼 실제 상황의 다양함 앞에서 당황하게 되는 것이다.
외국어 공부에서 문법보다 더 중요한 것은 머릿속에 살아 있는 언어의 데이터를 가능한 한 많이 모아두는 것이다. … 영어를 잘하려면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자기 생각과 의견을 영어로 전달하는지 의문을 품고 아주 많이 관찰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 문법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그 사람이 왜 그렇게 말을 하는지 알려주는 것이므로 '저 사람이 왜 이런 상황에서 저렇게 말을 하지?'라는 의문을 많이 품어보지 않은 사람은 문법 이해가 어려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왜 한국인은 영어 공부가 어려울까 책에선 5가지 이유를 말한다.
동양인은 '큰 것에서 작은 것' 순서로 말하고 서양인은 '작은 것에서 큰 것' 순서로 말한다. 단적인 예로 주소를 말할 때, 한국어는 나라-지역-도시-동네 순서이지만 영어는 정반대인 동네-도시-지역-나라 순으로 말한다. 또한 이름을 말할 때도 한국어는 집안의 성을 먼저 말하고 뒤에 자신의 이름을 말하는 반면 영어의 first name은 자신의 이름이며 성은 last name이다.
오스틴은 "사람이 말을 하는 것은 사실 일종의 행위"라고 말했다. 학자의 말이라서 조금 어려우니 차근차근 설명해 보겠다. "또 왔니?"라는 문장을 보자. 이 문장은 상황에 따라서 각기 다른 행위로 풀이될 수 있다. 친척이나 친구가 활짝 웃으면서 달려와 포옹하며 말할 때 이것은 '환영'이라는 행위다. 그리고 내가 자주 가는 음식점에서 같은 친구를 세 번째 만났을 때는 '진짜 자주 오네?'라는 '정보 수집'이라는 행위일 수 있다. 또는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듣거나 말하느냐에 따라서 '귀찮으니 다시는 오지 마라' 즉 '사양' 또는 '금지'라는 행위의 의미가 될 수도 있다. … 이처럼 말을 통해서 하는 행위를 오스틴은 '스피치 액트'라고 부른다.
한국어는 동사를 살짝 바꿔 여러 가지 스피치 액트를 표현한다. '먹으려고'(의도 표명), '먹을게'(복종/동의), '먹자'(제의), '먹어'(명령), '먹어봐'(권유), '먹는다면'(가정), '먹으려면'(조건) 등 간편하게 다양한 스피치 액트를 구사할 수 있다. 반면에 영어에서 동사를 변형시켜 만들 수 있는 스피치 액트는 'Eat'(명령), 'I eat this pie'(묘사) 'Do you eat this pie?'(질문) 이 세 가지밖에 없다. 나머지는 'Let's eat'(권유), 'I said I will eat it'(항복) 등 다른 단어를 빌려와 꼬아서 만든다. 영어는 태생부터 다양한 사용자가 최소한의 정보를 주고받기 위해 만들어진 실용적인 언어다. 따라서 깊은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선, 한 민족이 오랫동안 써온 다른 언어들보다 더 복잡하게 문장을 꼬아야 한다.
다음 중 '소'와 더 관련이 있는 것은?
1. 풀 / 2. 닭
무엇을 골랐는가? 동양인의 경우 대부분 '풀을 고르고 서양인의 경우엔 닭을 고른다고 한다. 어떤 차이점이 있는 것일까? 동양인이 '소'라는 단어를 들으면 보통 초원에서 풀을 뜯고 있는 한 마리의 소를 떠올린다. 그래서 소와 관련 있는 것으로 풀을 선택한다. 하지만 서양인이 cow라는 단어를 듣는다면 '소 한 마리'처럼 특정 개체를 떠올리지 않고 '동물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있는 소'와 같이 추상적인 카테고리를 떠올린다. 따라서 소와 관련 있는 것으로 같은 동물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있는 닭을 선택한다. 동양 언어는 직관적이고 영어는 추상적이다. 그래서 영어로 특정 소를 가리킬 때에는 그냥 cow라고 말해선 안되고 the cow, a cow 등 관사를 붙여줘야 한다. 일반적인 개념과 특정한 개념이 분리되어 있어 특정한 개체를 지시하지 않는다면 추상적인 일반적 개념을 지칭하는 것이다. 명사뿐만 아니라 동사도 추상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run'이라는 동사는 '달리다'라는 동사이다. 영어에서 동사를 명사 형태로 바꾸기 위해서는 to 부정사를 사용한다. 부정사는 영어로 infinitive라고 하는데, 번역하자면 '제약이 없는'으로, 'run'이라는 동사가 '달리다'라는 것만을 의미했다면 'to run'은 동사의 제약을 벗어나 달리는 것 그 자체를 의미한다. 달린다는 동사를 부정사로 추상화하여 새로운 개념을 만든 것이다. 다른 예로는 형용사나 명사에 ~ness, ~hood,~tion, ~ity를 붙여 새로운 개념을 만드는 것으로, mother에 hood를 붙여 만든 motherhood는 '사회 통념상 어머니는 이러해야 한다는 관념'으로 풀이될 수 있다. 그래서 motherhood에 정확히 대응하는 한국어 단어를 찾기 힘들다. 더 나아가 The society must fight against loneliness.라는 문장을 보자. 해석해보면 '그 사회는 외로움에 대항하여 싸워야 한다.'인데 이처럼 서양인들은 loneliness라는 추상적인 관념에 대항해 싸운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추상적인 개념을 명확하게 인식한다. 서양인은 직관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동양인에 비해 추상적인 개념을 다루는데 익숙하다.
'우리 회사는 담배를 피우면 안 돼'라는 문장을 그대로 영어로 바꿔본다면 'Our company should not somke'라는 이상한 문장이 된다. 의미에 맞게 번역하면 'We do not somke in our company'라고 해야 한다. 이렇듯 한국어는 문장의 주어가 꼭 동사를 행하는 주체여야 할 필요 없이 '문장 전체의 주체'면 의미가 통한다. 하지만 영어 문장의 주어 자리에 오는 것은 '문장 전체의 주체'가 아니라 동사를 행하는 주체여야 한다. 한국어는 주어가 문장의 주인인 반면 영어는 주어보다 동사에 문장의 힘이 실려있으며 동사가 문장의 방향을 결정한다.
우리나라 단어 중 한문으로 만들어진 단어는 한 글자씩 뗐다 붙였다 해서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만약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는 단어를 만든다면 '한국'에 '사람'을 더해서 (한국+사람) '한국사람'을 만들어 낸다. 이와 달리 영어는 단어의 의미와 역할이 바뀌면 모양이 살짝 식 휜다. 예를 들면 broad (넓다 - 형용사), breadth (넓이 - 명사), broaden (넓게 하다 - 동사) 이런 식이다. 따라서 영어를 할 때 단어를 잘 휠 줄 알면 꽤 긴 의미의 문장이라도 짧게 쓸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영어식 사고방식의 결에 익숙해지기 위한 공부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
영어 문장에서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동사다. 그래서 동사를 많이 알게 되면 표현할 수 있는 문장이 훨씬 많아진다. 따라서 평소에 주어+동사 형식의 문장을 말하고 쓰는 연습을 해보자.
앞서 말한 것처럼 한국어는 동사를 살짝 바꿔 다양한 스피치 액트를 표현할 수 있는 반면 영어는 이를 위해 다른 단어를 가져와 복잡하게 꼬아야 한다. 그래서 꼬인 문장을 풀어서 분석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책에서 나온 예시대로 'I have to go to the supermarket'이라는 문장을 보자. 우리는 'have to + 동사 = ~ 꼭 해야 한다.'로 외웠기 때문에 앞의 문장을 '슈퍼마켓에 꼭 가야 한다.'라고 해석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 문장은 'I + have to + go'가 아니라 ' I+ have + togo'의 구조로 볼 수 있다. 'to go'는 '가는 일'이기 때문에 '나는 슈퍼마켓에 가는 일을 가졌다' → '나는 슈퍼마켓에 가야만 한다.'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문법 규칙을 그냥 외우기보단 아래와 같은 3단계의 과정으로 이해하게 되면 문법을 훨씬 기억하기 쉬워진다. 또한 규칙만 외운 게 아니라 규칙을 논리적으로 이해함으로써 새로운 표현을 만들어 쓰는 단계의 실력까지 도달할 수 있다.
a. 그 문장의 표면적 의미는 무엇인가?
b. 그 문장의 관용적 용도는 무엇인가?
c. 왜 그렇게 쓰이는가?
영어를 VO(동사 + 목적어) 언어, 한국어를 OV(목적어 + 동사) 언어라고 한다. VO에는 큰 문제점이 하나 있는데 바로 '동사가 필요 없을 때 어떻게 문장을 만들어야 하는가?'하는 문제다. 동사가 나와야 목적어가 나오기 때문에 영어에선 동사가 필요 없는 문장을 만들 경우 큰 의미가 없는 be 동사를 사용한다. 따라서 be동사와 함께 문장을 구성할 경우 뒤에 나오는 단어를 꼬아서 문장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휘어지는 영단어를 연습할 수 있다. 예를 들어 be 동사 뒤에, ~less, ~able 등을 붙여 형용사를 만들고 ~ness, ity 등을 붙여 명사형을 그리고 뒤에 나오는 동사의 수동태 형식 또는 진행형을 사용해 다양한 문장을 만들 수 있다.
고도화를 이우려면 언어의 기저 논리가 몸에 완전히 배서 더는 생각하지 않아도 저절로 알 정도로 자신의 머리에 영어식 사고의 결을 만들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문장의 레벨에서 생각하기 전에 단어의 레벨에서 생각해 질감부터 머리에 새겨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영어단어를 열심히 외운다. 하지만 문제는 외웠던 영어단어를 막상 쓰려면 생각나지 않는다. 또한 영어는 타 언어에 비해 단어 체계가 자유로워 체계가 지속적으로 변한다. 98분마다 새로운 단어가 하나씩 생겨나 하루 평균 14.7개의 신조어가 태어난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모든 단어를 외울 순 없다. 하나의 단어가 품고 있는 의미도 복잡하고 다양한데, 계속해서 새로운 단어가 생성되는 상황에서 우리는 단어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할까? 단어의 뉘앙스를 파악하면서 처음 보는 단어라도 의미를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사전에는 한 단어에 10개 이상의 의미 풀이가 적혀 있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은 한 단어가 갖는 뉘앙스나 느낌을 말로 다 담아낼 길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대략 7~10개 정도의 주관적 기준으로 의미를 잘라놓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무지개에는 무한대의 색이 들어 있지만, 이것을 묘사하기 위해서 빨, 주, 노, 초, 파, 남, 보로 잘라서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영한사전을 찾아보면서 거기에 나와 있는 해석이 고정 불변의 진리라고 생각하지만 사전을 만드는 사람 역시 그 단어를 어떤 문장 속에서 접할 때 주관적인 감을 '추출'해서 적어놓은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만약 지금 내가 영어를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면 영어에서 가장 많이 쓰는 200개 단어 이해에 1년 정도 시간을 투자할 것이다. 이 단어들의 패턴을 파악하면 이를 토대로 복잡한 단어를 만들어 쓸 수 있는 '어휘 능력'이 발달한다.
우리는 처음 보는 한국어라도 뜻을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책갈피'라는 단어를 처음 봤다고 하자. 그렇다면 우리는 '책+갈피'로 단어를 나눌 것이고 '갈피'는 '갈피를 못 잡겠다.' 할 때 쓰이는 그 단어이기에 '책에서 방향을 잡아주는 것' 정도로 생각한다. 이런 방법은 영어에서도 가능하다. 여러 단어에서 나오는 공통된 소리를 수집해 족보를 그려보면 많은 도움이 된다. 또한 공통된 소리의 뿌리를 찾아가다 보면 하나의 접점을 찾을 수 있다. 같은 뿌리의 단어를 한 번에 외울 수 있어 효율적인 단어 공부가 가능하다.
단어 생성 규칙을 체화하기만 하면 외우지 않고도 수많은 단어의 얼개를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단어마다 각각 의미 영역을 족보를 그리라는 것이 아니라, 처음 2~3년 정도만 이런 방식으로 공부하면 새로운 단어를 보는 순간 의미를 정리하는 프로세스가 머릿속에 새겨져 일일이 단어를 외우지 않아도 자동 처리가 된다.
나는 학교에서 배웠던 영어 공부법이 잘못되었다고만 생각했지 '왜 그 방식으로 공부하게 되었을까?'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저자는 20세기 제국주의와 백인 우월주의의 영향으로 상대적으로 약소국이었던 한국에선 영어가 '선진문명'이라는 인식이 생겼으며 때문에 그 당시 영국 하층민이 흔히 저질렀던 문법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한 문법 위주의 교육이 도입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이제 한국은 더 이상 약소국이 아니다. 또한 세계에는 다양한 집단의 영어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따라서 다양한 공부법 중 어떤 것이 구시대의 산물이고 어떤 것이 소통을 중심에 둔 영어 공부법인지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내가 살고 있는 뉴질랜드에서는 다양한 인종이 살고 있으며 영어를 하는 모든 사람이 학교에서 배웠던 정확한 5 형식의 문장을 구사하지 않는다. 하지만 대화를 나누는 데에 있어 문제가 없다. 감정을 표출하고 내 의견을 잘 전달하기 위해선 정확한 문법보다 상대방의 문화와 사고방식, 예절을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책에선 위에 정리한 공부법 외에도 문맥을 파악하는 방법으로 다양한 공부법을 제시했다. 영어로 된 시를 해석하고 암기하는 방법이라던지 고전 읽기, 영어 철학책 읽기 등이다. 하지만 하루 종일 영어 공부를 할 수 있는 환경이 되지 않는다면 실천하기 힘든 이상적인 방법이라 느꼈고 영시를 읽고 고전을 읽을 수 있을 정도라면 내가 만족할 만한 영어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그 시점에서 영어를 더 잘하고 싶다면 영어로 된 고전을 읽고 시나 철학책을 읽는 것은 자연스러운 단계이지 않을까?
「플루언트」는 영어를 읽기, 쓰기, 듣기, 말하기의 4가지 분야로 나눠 각 분야별로 구체적인 공부 방법을 제시하는 다른 영어 공부법 책과는 다르다. 지금 대한민국의 영어 공부는 어떤 문화적 맥락에서 문제가 있는지 설명하고 문제점을 탈피할 수 있는 영어 공부의 방향을 제시한다. 한국어와 영어의 근본적인 차이점을 알려주고 이를 체화할 수 있는 방법을 보여준다. 단순히 영어를 이해하고 내 생각을 표현하는 수준을 넘어 책에서 말한 언어를 통한 '두 개의 영혼'을 가지고 싶다면 읽어봐야 할 책이다.
두 개의 문화 사이에 기마병처럼 걸터앉아 있는 언어학자들은 글로벌 세계를 살아야 하는 우리에게 훌륭한 선배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우리는 영어 공부를 통해 더 이상 절대적인 가치관이 존재할 수 없는 새로운 21세기에 필요한 유연한 철학을 배워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