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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게츠 Mar 14. 2018

과학혁명의 구조

과학의 인간적인 면

「마음의 과학」이란 뇌과학 책에서 봤던 가설이 하나 있다. 그 가설은 어쩌면 수학 발전이 자연에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지식의 발견이 아니라 수학을 자연에 끼워 맞춰 온 우리 몸과 뇌의 산물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의아했다. 내 고등학교 시절 어렵다고 몸부림쳐도 눈 하나 깜짝 않던, 그 수학이 인간적인 면을 담고 있을 수 있다니.


수학과 비슷한 성격을 가진 학문이 하나 더 있다. 바로 과학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학 발전이 자연법칙을 발견하는 과정이며 합리적인 과정이라 믿는다. 하지만 과학 발전 역시 자연법칙을 발견하는 과정이 아닌 인간적 특성과 불합리한 면을 가진 변화 과정일 수 있다.

「과학혁명의 구조」가 나오기 전 사람들은 과학 발전이 직선적이라 생각했다. 과학자들이 기존 과학 이론을 토대로 새로 발견한 사실과 법칙들을 쌓아 올리며 과학은 점진적으로 발달한다고 믿었다. 이와 달리 토머스 쿤은 「과학혁명의 구조」를 통해, 과학은 혁명을 거쳐 다음 단계, 그다음 단계로 변화한다고 주장한다. 하나의 패러다임이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되고 발전되는 게 아니라 기존 패러다임이 유지되는 동안 아무 변화도 없다가 한순간 새로운 패러다임이 기존 패러다임을 대체하는 계단식 발전 과정을 거친다는 의미다.




과학 혁명의 구조

책에서 제시한 과학 발전 단계는 다음과 같다.

패러다임 → 정상과학 → 위기 → 혁명 → 새로운 패러다임   


이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선 패러다임과 정상과학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저자는 패러다임을 '경쟁하는 과학 활동의 옹호 집단을 이끌 만큼 놀랍고, 재편된 연구자 집단에게 많은 문제를 해결하도록 남겨 놓을 만큼 융통성 있는 과학적 성취'라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정상과학은 무엇인가? 책에서 정의하는 정상과학은 '과거에 있었던 하나 이상의 과학적 성취에 확고히 기반을 둔 연구 활동'으로 정의한다. 책 내용을 모르는 사람들은 정의를 봐도 정상과학이 무엇인지 머리속에 확실히 그려지지 않는다. 정상과학 전후 맥락을 모르기 때문이다. 과학 혁명 과정을 알아가다 보면 정상과학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전(前) 패러다임 시기

전(前) 패러다임 시기엔 모든 과학자가 저마다의 믿음을 가지고 있고 저마다의 저술을 펴낸다. 구성원을 묶어주는 정신적 틀이나 체계 없이 각자의 이론을 발전시켜 나가기 때문이다. 패러다임이 없으면 모든 사실들이 다 관련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현상의 같은 면을 보더라도 과학자마다 해석이 다르다. 각자의 연구와 이론의 발전 끝에 패러다임이 나타난다. 패러다임은 과학자 공동체 모두가 공유하는 정식적 틀이기 때문에 과학의 범위를 결정짓고 자연사의 선택이나 평가 그리고 비판의 기준이 된다. 따라서 전(前) 패러다임 시기의 사실 수집은 데이터 더미를 쌓는 데에 그치지만 패러다임은 수집한 사실을 기반으로 공통된 이론적 구조를 형성한다.




정상과학

전(前) 패러다임 시기를 지나 한 이론이 패러다임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패러다임이 되었다고 해서 그 이론이 자연의 대부분을 설명하거나 자연의 특정 부분을 완벽히 설명하지는 않는다. 그 이론은 자연 문제의 대부분을  수 있도록, 단일한 문제를 보다 완벽히 풀 수 있도록 개량돼야 한다. 실험과 연구를 통한 이 개량 과정을 '정상과학'이라고 한다. 그리고 저자는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정상과학에 평생을 바친다고 한다.


정상과학엔 3가지 종류가 있다.

1. 패러다임이 제시한 이론의 정밀화

2. 패러다임을 통한 예측과 실제 자연의 대조

3. 패러다임 범위의 확장과 명료화


정상과학은 개념적으로 또는 현상적으로 새로운 발견을 위한 시도가 아니다. 위 3가지 방법으로 자연을 패러다임에 맞추려는 시도다. 결론은 패러다임에 의해 예측되어 있고 정상과학 연구는 예측된 결론을 새로운 방법으로 성취하려는 시도다. 정해진 답을 향한 다양한 풀이법을 찾는다는 점에서 정상과학을 '퍼즐 풀이', 과학자를 '퍼즐 푸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책에 나온 예를 보면 과학자 개인에게 정상과학이 가지는 의미를 뚜렷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빛의 파장을 측정하는 기계를 고안하는 사람은 그것이 단지 특정한 스펙트럼선에 특정한 값을 매겨준다고 해서 만족해서는 안 된다. 그가 해야 할 일은 광학 이론의 정립된 개념에 입각하여 그의 장치를 분석함으로써, 그의 기기가 알려준 숫자가 이론에서의 파장과 같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패러다임이 나타나면 정상과학은 빠르게 발전한다. 전(前) 패러다임 시기에 과학자마다 달랐던 의견이 하나의 패러다임으로 통일되어 기본 원리를 만들기 때문이다. 공통된 믿음은 과학자에게 올바른 길로 가고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 준다. 또한 과학자는 자신의 이론을 기본부터 검증할 필요 없이 다음 단계의 연구를 진행할 수 있게 된다. 정상과학이 빠르게 발전하는 다른 이유는 패러다임은 과학자에게 집중해야 할 것을 제시해주기 때문이다. 과학자는 이를 위한 전문적인 장비를 개발하게 되고 전문적인 장비는 정상과학의 발전을 빠르게 이끈다.



위기와 혁명 그리고 새로운 패러다임

정상과학의 목표는 새로운 개념, 법칙 발견이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것을 억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정상과학은 혁명을 부른다.

패러다임 초기 정상과학은 통상적인 것을 발견한다. 하지만 어떤 패러다임도 자연을 완벽히 설명할 수 없다. 따라서 시간이 지나면 패러다임에 맞지 않는 사실, 변칙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어떤 변칙 현상은 기존 패러다임을 조정해 해결할 수 있지만 패러다임 조정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변칙 현상이 있다. 이런 변칙 현상이 누적되면 전(前) 패러다임 시기와 같이 이를 설명하기 위한 각기 다른 이론, 법칙이 대두된다. 결국 새로운 이론의 수용을 놓고 투쟁이 벌어지게 되는데 이 시기를 패러다임의 위기라 한다. 위기를 지나 하나의 이론이 과학자 공동체에 받아들여지면 새로운 패러다임이 탄생하게 된다. 새로운 패러다임 뒤에도 패러다임을 계량화하는 정상과학이 진행된다.

두 개의 패러다임이 양립할 수는 없을까? 새로운 이론은 기존 패러다임이 설명할 수 없는 변칙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다. 따라서 새로운 이론은 기존 이론과 다른 예측을 하기에 논리적으로 양립할 수 없다. 때문에 새로운 패러다임은 기존 패러다임을 대체하며 이 과정은 발전보다 혁명에 가깝다.


같은 현상을 보더라도 패러다임이 바뀌면 달리 보인다.


공약 불가능성

그렇다면 변칙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은 이전 패러다임보다 우수한가? 저자는 이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과학 혁명기에 경합하는 두 패러다임을 비교할 수 있는 객관적 기준이 없기에 비교 불가능하다는 '공약 불가능성'을 제시한다. 공약 불가능성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


1. 패러다임마다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의 목록'이 다르다.

패러다임은 자연 해석에 필요한 도구적, 개념적 수단을 제공한다. 이 수단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간주되는 문제만이 과학적이고 중요한 문제가 된다. 따라서 패러다임마다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의 목록'이 다르다.

운동 이론은 물질 입자들 사이에 작용하는 인력의 원인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가, 아니면 단순히 그러한 힘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히는 것으로 충분한가? 뉴턴의 동역학은 아리스토텔레스와 데카르트의 이론과는 달리, 그 질문에 대한 후자의 대답을 암시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널리 거부되었다.


2. 같은 용어라도 패러다임마다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은 기존에 사용하던 용어를 사용하지만 용어를 사용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기존 용어, 개념들은 전통적 방식을 벗어나 새로운 상관관계를 맺게 된다. 따라서 같은 용어라도 그 의미는 패러다임마다 다를 수 있다.


3. 같은 현상도 패러다임에 따라 다른 이론적 바탕에서 연구를 수행한다.

저자는 이를 '서로 다른 세계에서 그들의 연구를 수행한다'라고 표현한다. 그 예로 실에 묶여있는 돌이 좌우로 흔들리는 현상을 보고, 한 패러다임은 낙하하는 속박된 물체를, 다른 패러다임은 진자운동을 본다. 따라서 두 패러다임을 객관적 기준으로 비교, 분석하고 무엇이 더 우수한지 가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새로운 패러다임은 이전 패러다임보다 우수하다는 것을 입증할 수 없다. 이전 패러다임이 설명했던 현상 전부를 새로운 패러다임이 설명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그렇기에 저자는 과학 발전은 새로운 사실, 개념의 누적을 통한 직선적 발전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과학 발전은 벽돌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과정이 아니라 혁명을 통해 쌓던 성을 무너뜨리고 다시 처음부터 벽돌을 쌓는 형식이다. 그렇기에 과학은 진리와 같은 하나의 목표를 향해 발전하는 게 아니다. 과학 발전은 목적 없이 진행된 과정의 산물이다.




진화론과 과학 혁명의 구조

패러다임이 모든 자연 문제에 완벽한 풀이가 될 수 없듯 「과학혁명의 구조」에 대한 반대 의견도 많다. 모호한 패러다임의 정의나 공약 불가능성에 대한 반론이 제기됐다. 「과학혁명의 구조」는 완벽하지 않지만 나에게 큰 의미를 남겼다. 다윈이 「진화론」을 통해 생명진화 과정에서 목적론적 관점을 걷어낸 것처럼, 과학발전의 목적론적 관점을 반박했기 때문이다. 과학은 하나의 진리를 향해 가고 있는 게 아니다. 정해진 목적이나 목표 없이도 과정 자체를 통해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은 외부에서 정해진 기준 없더라도 내부에서 행해지는 가치판단이 유의미하다는 뜻과 연결될 수 있다.

이 관점에선 「진화론」 보다 「과학 혁명의 구조」가 가지는 의미가 더 크다. 왜냐하면 「진화론」은 변화하는 환경에 대한 생명의 '적응'을 말했지만, 「과학 혁명의 구조」는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늘어가는 명백한 과학의 '발전'을 담아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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