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략을 세워본 적 없다. 미래에 대한 고민 보단 지금 당장 내 관심을 끄는 것에 집중한다. 열심히 하던 것도 지루하거나 중요하지 않다고 느껴지면 고민 없이 그만둔다. 내 관심사는 약 3개월 단위로 바뀌며 관심사가 바뀔 때마다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살짝씩 건드려본다. 책장에 눈을 돌려보면 '버트런드 러셀처럼 뇌섹남이 되고 싶다'며 읽었던 서양철학사, '앙리 브레송 같은 사진가가 되고 싶다'며 샀던 카메라, '그레이처럼 음악을 만들고 싶다'며 두드려 봤던 키보드가 나란히 놓여있다.
3개월이란 시간은 전문적인 실력이나 노하우를 기르기엔 짧은 시간이다. '어, 나 그거 해봤어'라고 말할 수 있지만 특정 분야에 대해 잘 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순 없다. 그래서 나는 다양한 관심을 하나의 목표로 집중시키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선 전략이 필요했다. 어떤 전략을 어떻게 세워야 할까?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눈에 들어온 책이 신시아 A. 몽고메리의 「당신은 전략가입니까」다.
이 책은 기업 경영 전략을 다룬다. 기업 경영은 마케팅, 디자인, 재무, 인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략을 수립해 실행에 옮겨야 한다. 여러 분야를 하나로 묶어 내야 하는 내 상황과 비슷하다고 하자. 다양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경영자는 어떻게 전략을 수립할까?
먼저 자신이 속한 산업이 어떤 조건을 가졌는지 파악해야 한다.
기업 간의 경쟁이 심한지, 진입과 퇴장의 장벽이 높은지 낮은지, 대체 상품의 이용 가능성이 얼마나 높은지, 부품 공급업체의 세력이 강한지 등을 따져봐야 한다. 이렇게 산업 경쟁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을 산업 경쟁 요인이라고 한다. 경영 전략은 이 산업 경쟁요인에 대응하는 방법이다.
책 속에 예시로 매스코가 등장한다. 미국에서 수도꼭지, 자물쇠, 건축용 철물 등을 판매해 대규모 이익을 창출한 매스코는 1986년 가구산업에 진출했다. 하지만 그 끝은 6억 5000만 달러의 손실을 감수한 가구사업의 매각이었다. 왜 가정용품 산업에서 이름을 떨치던 매스코가 가구산업 진출에 실패했을까? 실패에 하나의 이유만 있는 건 아니지만 저자는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을 가구산업의 불리한 경쟁요인을 매스코가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매스코는 수도꼭지 산업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손잡이 하나로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수도꼭지를 처음으로 상용화했고 당시 수도꼭지 고장의 주원인이었던 고무 워셔를 없앤 특허제품을 출시했다. 수도꼭지 산업에선 기능성이 중요했고 이점에서 매스코는 다른 기업에 비해 명백한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반면 가구산업은 기능성 보단 패션 중심이었지만 매스코는 패션에서 우위를 갖지 못했다.
또한 매스코의 전략은 가구산업의 저가, 중가, 고가의 브랜드를 매입 후 다양한 가격대의 제품을 동시에 생산해 규모의 경제를 이루는 것이었다. 하지만 저가 가구는 대량 생산, 대량 판매를 하는 반면 고가의 가구는 수작업, 소량 생산을 하기 때문에 규모의 경제를 이루기 어려웠다.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집중도 중요하지만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대응도 중요하다. 도전이 있는 곳에 언제나 기회가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속한 환경을 파악하고 환경에 따른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영민하기로 명성 높은 경영진이 나쁜 경제상황으로 명성 높은 사업과 씨름할 때 그 사업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명성은 그저 손해를 면하는 것이다. - 워런 버핏
목적은 중요하다. 목적은 기업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해주기 때문이다. 목적이 분명할 때 기업이 해야 할 일에 집중할 수 있고 다른 기업과의 차이를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그 목적을 중심으로 잘 짜인 가치 창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이번엔 구찌 이야기를 살펴보자. 1970년대 구찌는 샤넬, 에르메스와 같이 명품 중에서도 높은 가격대의 핸드백과 가죽제품을 만드는 브랜드였다. 하지만 1979년부터 구찌는 구찌 액세서리 컬렉션이란 신규 사업을 론칭하면서 무분별한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돈을 벌었다. 총 2만 2000개의 상품에 구찌 로고가 부착되면서 구찌는 어디서든 볼 수 있는 로고가 되었다. 브랜드의 값은 떨어졌으며 가품이 판쳤다.
구찌가 위기인 이때 마우리치오가 등장한다. 마우리치오는 예전 구찌의 명성을 되찾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이를 위해 브랜드를 통합하고 구찌 로고가 부착된 2만 2000개의 상품을 7000개로 줄였다. 1000개의 구찌 매장 중 800개가 넘는 매장을 패쇠하고 구찌 액세서리 컬렉션을 없앴다. 핸드백 스타일도 350개에서 관리하기 쉬운 100가지로 축소했다. 마우리치오의 목적은 흠잡을 데 없었고 그에 따른 과감한 결정은 올바른 선택인 듯했다. 하지만 브랜드 제품과 매장을 축소하면서 생긴 매출의 공백을 메울 방안은 없었으며 원가 관리, 재고조사, 제정 계획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결국 1992년 총수입 2억 달러에서 5000만 달러의 손해를 보고 마우리치오는 경영에서 물러났다.
다음 구찌를 맡은 사람은 도메니코 드 솔레였다. 드 솔레의 목적은 마우리치오와 조금 달랐다. 그는 구찌에서 최근 거둔 성공작들을 분석했다. 최근의 성공작들은 고정된 스타일이 아니라 최신 유행 부문에서 나왔다. 이 점에서 착안한 드 솔레의 목적은 예전 구찌의 명성을 되찾는 것이 아니라 구찌를 대중을 겨냥하며 유행을 선도하는 명품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목적 자체로는 마우리치오의 목적과 드 솔레의 목적 두 가지 중 어떤 게 맞다 틀렸다 판단할 수 없다. 드 솔레가 구찌를 부활시킬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목적을 실행하는 전략에 있었다.
드 솔레는 목적을 중심으로 다양한 변화를 일으켰다. 브랜드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최신 유행을 따르는 기성복을 만들었다. 입소문을 내기 위해 광고비 지출을 2배로 늘렸으며 현대적인 분위기로 매장 인테리어도 바꿨다. 기업 내의 변화도 있었다. 구찌는 상품 제조를 납품 업체에 의존했기 때문에 상품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상위 25개 납품 업체를 선정하고 업체가 성장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원을 했다. 또한 가족 기반의 경영 체제를 직원의 능력과 실적에 따라 평가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이렇듯 드 솔레는 경영의 다양한 분야를 철저히 목적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조정했다.
발생 가능한 이익을 조금이라도 포기하지 않으려는 마음에 어려운 결정을 피하거나 뒤로 미루고 쉬운 길을 택하는 리더들이 너무나 많다. 많은 리더들이 "새로운 고객을 영입하는 동시에 전통적인 고객도 포기하지 말자."라고 이야기 하지만 드 솔레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하나를 얻기 위해 기꺼이 다른 하나를 희생하려 했다.
나는 기업을 경영하진 않지만 앞서 말했듯 다양한 관심사를 조율해야 한다. 역시 내가 해야 하는 것은 내 상황을 파악하고 명확한 목적을 만드는 것이다. 간단하게 내 상황을 종이에 적어봤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명확하진 않지만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렇담 완벽히 통제할 수 없어도 어떻게 대응할까 끄적여본다. 목적을 정하고 각 관심사를 어떻게 목적에 맞게 이용할지 고민해봐야겠다. 오, 벌써 전략가가 된 느낌이 든다. 뻔하긴 하지만 어떻게 전략을 세워야 하는지 알게 된 신시아 A. 몽고메리의 「당신은 전략가입니까」였다.